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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서신 2강 빛이신 하나님과의 사귐 ~ 1장 빛 생명 피 자백 2장 삼대 정욕 적 그리스도
26.07.28(화)
요한일서 1장 3절에서 5절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네 반갑습니다. 오늘 요한 서신 두 번째 강의입니다.
두 번째 강의 제목은 빛이신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요한일서 1장과 2장에 나오는 내용들을 여러분하고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포인트는 뭐냐하면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과의 사귐이라는 관점으로 본문을 관찰하고 정리하는 겁니다.
그게 이제 요약되고 정리되면 거기에 메시지가 있겠죠.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귕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에게 적용해야 될 것은 어떤 것인가 이렇게 오늘 강의가 진행될 것입니다.
요한일서의 핵심 단어는 바로 코이노니아입니다.
우리말로 사귐 교제 이렇게 해석을 해놨죠
이 코이노니아라는 말은 사궘 그 다음에 사랑하는 자와 결혼해서 사귀는 그런 어떤 교제 동참하는 것 나누는 것 이런 내용들이 코이노니아라는 말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이 코이노니아라는 이 사귐이라는 것을 갖고서 신앙을 전체로 꿰고 있죠. 요거를 보면 우리가 요한 일서를 이해하는 데 굉장히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것도 이렇게 정의를 해요.
믿음으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가 되는 것 로마서에서는 이것을 의로워졌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가 의로워진 거예요.
의로워졌기 때문에 정상적인 관계도 되지만 의로운 관계 자체가 의로운 것이죠. 그 다음에 영생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 이 용어도 요한 일서의 굉장히 중요한 용어들 중에 하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영생永生을 한자어로다가 한자로다가 이렇게 쓰잖아요. 영원한 삶이다. 영원한 생명 이렇게 말하는데 이게 영생의 한 반 정도밖에는 설명하지 못하는 뜻이거든요.
지옥에 가며는 영생해요. 안 해요. 지옥도 영원히 살아요. 그러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영생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예요. 관계를 누리는 그런 삶 전체가 영생이고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삶의 차원이 달라지고 삶의 질이 달라지는 거죠. 그게 영생을 사는 겁니다.
이 땅에서도 영생을 살까 안 살까요? 사는 거죠. 그 다음에 영생을 온전히 풍성하게 사는 곳이 어디예요.
나중에 천국에 갔을 때 영생을 하나님하고 온전하게 누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천국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 천국을 경험하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과의 사귀면서 뿜어져 나오는 것들이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넘어가십시다.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통해서 영생을 누리는 것 그게 코이노니아다 이 용어를 정의하고 본문을 대하면 더 쉬워질 것 같습니다.
자 사귕의 기초는 무엇인가에서부터 살펴보죠. 요한일서 1장 1절에서 4절인데 모든 책들을 볼 때 서론을 잘 읽어야 돼요.
서론을 잘 읽어야 풀어질 수가 있고 전체 그림도 거기에 나오거든요.
하나님과의 사귐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 여기서 조금 짚고 넘어갈 건 뭐냐하면 하나님과의 사귐은 거추장스럽거나 부담스럽거나 의무감이 아니고 하나님과 사귄다라는 거는 피조물이 최고의 영광을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대통령하고 잘 사귄다 영광이 아니에요. 엄청난 영광이잖아요. 근데 하나님하고의 관계를 맺었다는 겆 하나님하고 내가 친밀한 사귐을 갖는 자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영광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신앙을 교리적이거나 어떤 형식적으로 대하며는 율법적으로 대하면 굉장히 부담이 돼요. 그런데 실제적으로 그분을 알아가고 대하면 그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영광이며 감당할 수 없는 정말 엄청난 복인가 은혜인가를 알게 되죠.
그렇다면 이 하나님하고 사귀는 것이 큰 영광이고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복인데 그럼 우리가 그런 어마어마한 분하고 어떻게 사귈 수 있는가
첫째가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귈 수 있다고 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절을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요
여기서 1장 1절을 보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한
이러한 요한복음 1장 1절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생명의 말씀이 있었다.
여기서 생명의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요. 왜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말씀이라고 그랬을까요?
그분은 생명의 창시자이시고 생명 자체세요.
그래서 예수님을 소유하고 관계를 맺으면 생명이 생겨버려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방법과 도구가 뭐예요? 말씀을 전하시고 말씀을 받아드릴 때 그 복음을 받아드릴 때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진다는 거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사귐이 시작되어지고 그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랑 사귈 수가 없는 것이죠.
이렇게 요약하면 좋겠어요. 생명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그걸 나눠주시는 분이다.
그 다음에 우리가 생명의 말씀을 믿고 영접할 때 생명이 창조되고 거듭난다 그러니까 엄청난 거지 이 말 자체가 그분은 생명의 근원이세요.
그리고 생명을 나눠주는 분이세요. 생명의 주관자세요. 생명 대신 그리스도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두 번째는 이 생명이 나타나셨어요.
생명이 계시긴 계신데 그런 능력도 있으세요.
그런데 그분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모른다면 그 생명은 그냥 하나의 지식으로만 있는 것이고. 내꺼가 될 수 없겠죠.
그런데 그분이 글쎄 어떤 일을 하셨다고요. 생명이 계신 분이 우리에게 오셨어요. 말씀으로 오셨어요. 육신으로 오셨어요. 이것이 그래서 엄청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거는 다른 종교와 기독교에 굉장히 중요한 차별을 가져다주는 건데 다른 세상에 수많은 종교들이 있는데 신을 설정해 놓고 인간이 다 그 신한테 가야 돼요.
구원을 받거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근데 기독교는 뭐죠 그런 것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이전에 그 신이 인간에게 은혜와 구원을 베풀러 내려오셨다
이게 우리 기독교의 가장 큰 그런 특성 중에 하나이고 우리에게 과분한 은혜로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같은 그 요한께서 좀 젊었을 때 조금 이 요한 일서 쓰기 전에 이 말씀을 먼저 하셨어요.
어마어마한 진리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
오늘 사도 요한은 일관성 있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교제할 수가 있다. 이렇게 기초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사귐과 하나님과의 사귐을 여기서 서론에서 언급을 하는데 하나님과의 사귐과 우리 성도들의 사김은 의무나 책임을 넘어선 뭐냐하면 누림이라는 걸로다가 설명을 해요.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굉장한 그 뭐라고할까요? 은혜가 되었습니다. 큰 충격적인 은혜가 있어요. 하나님과의 사귐은 그분이 날 부려 먹으려고 그다음에 못살게 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어떻게 해요. 누리게 한다.
뭘 누리죠 그분을 만나서 사랑을 누리고 평화를 누리고 자유를 누리고 또 뭘 누려요 그분 자신을 누리죠 그게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주어지는 가장 큰 은혜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서 이런 누림을 얼만큼 가지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되고를 넘어서서 하나님 자신을 누리는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겼을 때 그 평안함을 누리는 안정감을 누리는 그러한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관계가 누리는 거니까 하나님과의 사귐은 우리와의 관계에 어떤 걸 갖다 주냐하면 누림이 기쁨이 되죠. 누릴 때 기쁨이 특징으로 다가온다라는 거예요.
이 기쁨의 근원이 하나님하고의 사귐에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그 무엇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그러한 기쁨이 우리에게 오게 되는 것이죠.
2~2강
빛이신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한 7가지 정도가 나와요.
그래서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어떤 것인지를 오늘 사도요한은 우리에게 7가지 정도로다가 요약을 해주는데 이 7가지를 통해서 그 사귐이 더욱더 풍성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첫째는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하나님하고 사귈 때 하나님이 누군가를 아는 건 중요한 것이죠.
누군가를 사귈 때 그 사람을 알고 사귀어야 되겠죠.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렇게 말해요.
그 다음에 요한 일서에서는 빛이시면서 하나님은 사랑이신다 이 두 가지의 하나님의 큰 속성을 갖고서 끌고 가거든요.
근데 그분하고 우리가 사귀는 거예요.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빛 가운데 있어야 돼요.
이 빛 가운데 있다라는 말은 하나님 자체가 빛이시니까 그분 곁에 있어라
다시 말해서 도망가지 말아라 피하지 말아라 숨지 말아라 그분하고 하루하루를 동거하면서 살아라 그런 내용입니다.
빛 가운데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서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겠다. 이렇게 1장 7절에서 말씀하고 있어요.
빛 가운데 행한다라는 것은 여기 말한 대로 우리가 숨지 않고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고 하나님께 나올 때 빛이 우리의 모든 것들을 빛을 주잖아요. 다 폭로하잖아요.
그때 우리의 죄도 드러나겠죠. 그래서 죄가 드러날 때 숨기거나 도망가지 말라는 거여요. 하나님께 나오라는 거예요. 그게 이제 사귐의 적극적인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빚 가운데 있을 때 죄가 노출됐을 때 도망가지 말고 어떻게 해라 자백해라 그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죄를 갖고 나오는 사람들을 귀찮아하거나 번거롭게 생각하지 않아요. 굉장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믿음의 반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뀌벌레처럼 빛이 딱 비치면 숨지 말고 하나님께 나오고 빛이 노출됐을 때 우리의 죄를 비춰줬을 때 죄를 인정해라 시인해라 그게 바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 회개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께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시고 변호자가 되세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갖고 나가면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그 고백은 맞습니다. 죄를 지은 건 맞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의 희생제물이 되고 대속을 했기 때문에 저를 믿은 것을 근거로 해서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죄를 사해 준
주신다는 것이죠. 깨끗하게 해주신다는 거예요.
자 세 번째는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누구랑 사귀기에서 가장 좋은 사귐의 수단은 뭐냐하면 사김의 질을 높이는 건 뭐냐면 그 사람의 말을 받아주는 거죠.
거절하거나 그 사람의 말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그러지 않고 내가 하기 좋은 것도 있고 하기 싫은 것도 있을 수 있겠으나 나를 부인하면서까지 그분의 말을 받아들일 때 엄청난 사귐에 풍성함을 가져다주죠
그래서 오늘 요한일서 2장 5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 안에 있는 줄 안다
계명을 지킴으로 인해서 사귐이 친밀해집니다.
성경에서 구약 신약을 전체를 통해서 가장 많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명령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말씀을 순종해라 그 말이죠.
성경 전체를 어떤 분은 이렇게 요약합니다.
말이나 잘 들어라 그게 성경 전체 요약이라는 거예요. 약간의 일리가 있어요.
그거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가지고 어떻게 하신다는 거예요. 사귐을 좋게 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네가 내 말만 잘 듣는다면 나는 너와 엄청나게 내가 아주 잘 사귈 수 있다.
그러한 하나님의 어떠한 요구이면서 바램이면서 부탁입니다. 제발 내 말을 잘 들어라 그런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잘 들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그 사귐이 풍성해진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오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이렇게 요한복음에서도 미리 말씀하셨죠. 이거와 사상이 딱 통하잖아요. 같은 요한이 말씀을 한 것입니다.
자 네 번째는 형제를 사랑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지키고 하는 것도 하나님하고의 굉장히 중요한 사귐에 보탬이 되는데 하나님하고 직접적인 게 아니고 형제를 사랑할 때 하나님하고의 사귐이 풍성해진다는 거예요.
그게 당시 이단들은 깨달음과 지식만 있었지 이웃을 사랑하는 그런 계명이 없었어요. 여기에 대한 정면적인 반박이면서 그 다음에 하나님의 바램과 그 다음에 신 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에게 지금 말씀하는 것이죠.
하나님을 사랑할 때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할 때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하고의 관계가 깊어진다는 겁니다.
자 다섯 번째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귄다고 하면서 세상을 사랑할 때에는 이게 양다리를 걸치는 격이 되거든요.
여기서 물론 세상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하는 어떤 문명이나 어떤 사상이나 어떤 태도나 이런 것들을 말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이런 말을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면 많은 분들이 어떻게 세상을 하나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세상에 대한 개념이 학교 다니고 결혼하고 경제생활 하고 이런 것이 아니고 우리가 어떠한 욕구를 넘어선 탐욕 수준까지 가가지고 그거를 사랑해버리는 그걸 섬기는 그런 데로 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죠.
어떤 자매가 형제랑 결혼을 했어요.
그랬을 때 관계 부부관계를 맺잖아요. 부부의 연을 맺으면 자매가 형제한테 이런 요구를 해요.
나외에 지구상에 어떤 여자도 사랑하면 안 돼 그 말이 과격하나요? 그 말이 잘못된 말인가요? 아니에요. 그거는 너무 당연한 말이죠.
하나님도 그래서 우리에게 말하는 거야 너 날 사랑하지 사귐에 굉장히 중요한 거는 사랑인데 너는 내가 싫어하는 세상을 사랑하면 안 돼 그렇게 바람 피우면 안 돼 그런 얘기예요.
나를 사랑해 그 말을 뒤에서 다른 것을 사랑하면 안 된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을 여기서도 약간 언급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쪽으로 그러한 방향을 잡고서 가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을때 그 사랑의 대상인 세상은 뭘 말하는가? 오늘 여기 세 가지로 나왔죠
육신의 정욕이 있어요. 이거는 욕구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욕구를 넘어서서 그 범위를 넘어선 거예요. 그걸 탐욕이라고 그래요. 그러면 그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욕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규율 안에서 그것을 쓸 때 그것이 축복이 되는 것이지 그걸 넘어서면 타락이 되는 것이고. 죄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굉장히 큰 금을 가게 만드는 것이고. 안목의 정욕이라는 게 있어요. 눈으로다가 보아서 하는 것들 눈으로 보아서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서 안목의 정욕에 쌓여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던 것처럼 뭐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생의 자랑인데 사람의 욕심들 중에 자기를 높이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하는 그런 욕구들이 있죠.
이생의 자랑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려고 하는 교만이에요. 허영심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하나님하고의 관계에 굉장히 어려움을 가져다 준다.
자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해야 될 가장 큰 하나님과의 관계 어려움 중에 하나는 뭐냐면 세속주의입니다. 교회가 세속화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굉장히 나빠져요
오늘 사도요한은 이단을 먼저 말하지 않아요.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귐을 할 때 경계해야 될 것들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단이고 하나는 육체 정욕을 따르지 않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교회가 무너질 때를 보면은 이 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욕구를 쫓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욕구를 쫓아서 탐욕으로 가가지고 타락하고 해서 교회가 무너지는 일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거는 우리가 예나 지금이나 가장 경계해야 될 것 중의 하나입니다.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치명적인 일을 가져다 준다.
그 다음에 정욕을 멀리하고 세상을 멀리하라는 것
다음으로 정욕의 세대와 사귀지 말라 이거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죠. 하나님을 반대하고 하나님을 훼방하고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과 교류하면서 사상의 영향을 받는다든지 자연적으로 금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될 것입니다.
적 그리스도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이렇게 말하면서 당시에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했던 자들 이런 자들이 당시에 적 그리스도였었죠.
오늘날에도 그 이단과 사이비들이 횡행하고 있는데, 하나님과 사귄다고 하면서 이단하고 접촉을 해서 영향을 받는다든지 사이비의 어떤 가르침을 따른다든지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은 그걸 너무나 싫어한다는 것 그것을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일곱번째는 아버지와 아들 안에 거해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사귈 때 도움이 되는 그 사귐을 풍성하게 하는 것들 중에 마지막은 그들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예배 때만 하나님 안에 거하고 나머지 개인적인 생활은 취미생활이나 직장생활은 하나님 밖에서 일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말고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머물러라 하나님 임재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해라 그것이 오늘 마지막 하나님과의 사귐에 있어서 풍성케 하는데 우리가 해야 될 그런 말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적용할 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과 사귀기 위해서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그분하고 잘 사귀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에요. 무엇을 하고 안 하고보다 하나님을 알아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나는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가?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그와 사귀면서 그분을 더 알아가고 있는가 이 부분을 우리가 꼭 점검하고 적용할 필요가 있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어떤 관계성을 지금 맺고 살아가고 있는가 요한 사도는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지금 얘기하고 있는데
나는 어떤가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 그분이 펼쳐주시고 만들어가는 그런 생생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세 번째는 빛이신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위해서 내가 힘써야 될 건 뭔가 7가지가 나왔었죠. 7가지 중에 어떤 것들은 되고 있고 어떤 건 안 되고 있는 것들이 있고 어떤 건 굉장히 잘하는 게 있고 어떤 건 미미한 것들이 있는데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사귐이 신앙의 근간이고 나의 모든 것이라면 하나님과 더 사귀는 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고 신앙의 목적이죠.
그래서 일곱 가지를 여러분이 한번 보시고 내 편에서 하나님과 더 사귀기 위해서 그 일곱 가지 중에 적용할 것이 어떤 것인가를 점검하시고 적용하셔서 하나님과 더 풍성한 사귐을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3장 4장입니다. 3장 4장은 사귐의 특성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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