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99) 뛰는 주유, 나는 공명
조인을 패퇴시킨 주유가 군사를 몰고 남군성 앞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성벽을 올려다 보니, 성루 꼭대기에는 어둠 속에서 보도 못하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며 휘날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굳게 닫힌 성루에는 무장(武將) 한 사람이 엄연히 서서 어둠 속에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주유가 놀란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 다가가니, 주유를 발견한 성루위에서 큰소리가 들려온다.
"대도독, 살아계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조운? 당신이 여길 어떻게?...."
주유가 깜짝 놀라며 대꾸하였다.
그러자 조자룡이,
"우리 군사께서 말씀하시길, 동오군이 매복에 걸려 타격이 큰 데 다가, 대도독 마저 전사 했으니, 조조군이 오기 전에 남군을 속히 점거하라 하셨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발끈 대노한 주유가 소리를 지른다.
"우린 혈전을 치르며 예까지 왔는데, 네 놈들은 우리를 배신하고, 이런 식으로 우리 성지를 가로채?"
"말씀이 지나치시오! 전에 한 말이 있지 않소? 동오에서 한 달 이내에 남군을 못 취하면, 우리 주공께 넘기겠다고..."
"뭐, 뭐라구?..."
"대도독! 대도독!"
조운의 말을 듣고 크게 노한 주유가 마상에서 피를 토하며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지자, 측근의 장수들이 말에서 뛰어내려 주유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면서 여몽이 분연히 말한다.
"대도독, 하명하십시오. 제가 남군을 치겠습니다!"
그러나 간신히 정신을 차린 주유가 말한다.
"아니다, 저들은 힘을 비축했고, 우리는 그동안 혈전을 벌인 탓으로 모두 지친 상태 아닌가? 더구나 남군성은 견고한 곳이다. 싸워도 승산이 없다. 진영으로 돌아가자..."
수하 장수들에 의해 진영으로 돌아온 주유는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다.
주유는 공명에게 기선(機先)을 당한 것이 통열했지만, 이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손을 써서, 형주와 양양을 유비에 앞서 먼저 빼앗겠다고 생각하고, 병석에서 수하 장수들을 불러, 감녕으로 형주를 치게 하고, 능통으로 양양을 치도록 명하였다. 형주와 양양을 취한 뒤에는 남군성으로 들이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감녕과 능통은 각각 형양과 양주를 치러 가서, 급사를 보내어 주유의 군령을 물어왔다.
"형주성은 이미 장비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양양성은 이미 관우가 점령하고 유비의 깃발을 높이 매달았습니다."
주유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며 그 연유를 물어보니, 각각의 급사가 아뢰기를,
"남군성을 점령한 유비가 조인의 병부(兵符)를 이용하여 싸우지도 아니하고 형주성과 양양성을 무난히 점령해 버렸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주유는 크게 놀라고 크게 실망하였다.
"도대체 공명이 어떻게 조인의 병부를 손에 넣었단 말인가"
정보가 경황없는 어조로 대답한다.
"대도독,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아군이 조인과 혈전을 벌이는 동안, 제갈양이 조자룡과 군사를 남군성으로 보내, 비우다시피 한 남군성을 손쉽게 취하면서 진교(陳矯)를 사로잡아 가지고 조인의 병부를 탈취했습니다. 그리고 그 병부를 이용해 밤새 영양과 형주를 접수했다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들은 주유는 통분을 금치 못해 큰소리로 외치다가 연이어 기침을 해 대더니,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푹 고꾸라져 버렸다.
이번에는 금창병이 제대로 재발한 것이었다.
"흥분하시면 안됩니다!"
정보를 비롯한 장수들이 주유의 노기를 만류하며 몰려들었다.
"이런 치욕을 ... 이런 치욕을 당하다니!...복수하기 전에는 절대로 눈을 감지 못 한다!...제갈 공명!..내 언젠가는 반드시, 널 찢어 죽이고야 말겠다!? 으윽!"
"흥분하지 마십시오! 제발!"
여몽이 주유에게 하소연 하듯이 말한다.
그러나 주유는,
"정보 장군, 주공께 상신하여 삼만 군사를 보내달라고 하시오. 스무 날 안에 형양을 다시 되찾아 오겠다고 하시오. 실패하면 군법에 따른다는 말도 함께 전하시오."
"엣?"
"지금 당장 실시하시오!"
주유가 발악을 하듯이 명한다.
"알겠습니다."
정보와 입시한 장수들은 분위기 상, 주유의 명을 거역하거나 이유를 달 수가 없다고 판단하여 명을 접수하는 예를 표하며 대답하였다.
...
한편, 공명의 지혜로써 형주와 양양성을 싸우지 아니하고 접수한 유비는 제갈양과 장비, 조운 및 수하 장수들과 함께 형주성으로 입성하였다.
유비가 장중 앞에서 감격에겨워 선듯 입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장비가 말한다.
"형님! 뭐하슈, 어서 들어가시오!"
유비는 장비의 말을 듣고서도 잠시 더 형주성 성주의 권좌를 올려다 보다가 이윽고 단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옛날 유표가 앉아던 자리를 한 바퀴 돌아보고도 선듯 권좌에 앉지 아니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공명이 입을 열었다.
"유표가 별세한 후, 이 자리는 줄곧 비어있었는데, 드디어 진정한 주인을 찾았습니다."
"으하하하핫!? 음! 수년을 떠돌아 다니면서 만날 남에 밑에만 있었는데, 오늘, 드디어 우리 집을 찾았구만요! 형님! 자, 앉으시오! 어디 위풍 좀 봅시다! 예?..."
장비가 신이 나서 공명과 유비를 번갈아 보면서 걸걸한 소리로 외치듯 말하였다.
유비가 알듯 모를 듯한 얼굴을 하며,
"음!... 공명 선생, 주유의 헛점을 틈 타 얻기는 했지만, 왠지 마음이 편치는 않소."
하고, 말하였다.
"뭘 염려하십니까?"
"강동은 병력이 반 토막 나고, 주유는 중상을 입었는데, 승기는 우리 손에 있으니, 조조의 보복은 두렵지가 않으나 주유가 분(憤)을 못 참을까 염려되오."
"형님! 뭔 걱정이슈, 이 장비가 있질 않소! 주유 그놈이 복수를 하겠다고 나서면 내가 이번 기회에 아주, 아작을 내버릴 테니, 하나도 걱정마슈!"
장비가 말을 받고 나섰다.
"셋째, 기세도 명분이 필요하고, 명분은 인심에 있네, 더구나 동오는 십만 대군이나 , 우리는 모두 해야 이만 군사 뿐이니, 맞부딪친다면 우린 적수가 못되지...보다 중요한 것은 대업을 이루려면 군사력만 가지고만 되는 것은 아니고, 인의로 민심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네,"
"인의를 잃을까 그러십니까?"
공명이 말을 받고 나섰다.
공명은 이렇게 묻고나서,
"근심을 덜어드릴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가요?"
"주유가 원망하는 것은 주공이 아니라 접니다. 그러니 주공께서 저를 주유에게 넘기신다면 분노는 기쁨으로 바뀌고 , 전 성벽에 매달리겠지요."
"그게 무슨 소리요. 형양을 포기할 망정, 선생을 잃을 수는 없소."
유비의 공명을 귀하게 여기는 말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러자 공명이 감사의 예를 표하면서,
"염려 마십시오. 앞으로 이 년 이내에는 그 누구도 형양을 넘보지 못할 겁니다. 또, 이년 후에는 아군이 더욱 강해지고, 세력도 커질 것이니, 그 때는 넘보고 싶어도 넘보지 못할 겁니다."
"선생, 주유의 군마가 지금 남군성 지척에 주둔하고 있소. 무장을 한 채로 버티고 있소."
"며칠만 있으면 동오로 돌아갈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조조가 비록 적벽에서 패하였지만 그 세력이 모두 꺾인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북방의 네개 주는 조조의 휘하에 있으며 군사력과 물자며, 영토 또한 가장 큽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가장 세력도 작고 군사력도 제일 약하지요.
따라서 조조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가장 큰 적이 아니라, 바로 강동의 손권입니다.
손권의 세력이 천하의 둘째이기 때문이죠.
이것은 손권도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손권이 제일 두려워 하는 적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조조인 겁니다.
주유가 수모를 당해 분 해 하는 건 분명히 우리 때문이고 특히 저 때문입니다.
허나, 손권과 노숙은 주유와는 달리, 현명합니다.
두 사람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천하의 대세를 직시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주유가 아무리 우리를 치려해도 두 사람은 주유와 우리의 교전을 저지하고자 노력할 겁니다.
더구나 우리가 형주에 주둔하면 조조의 우환이 될 것이고, 이는 동오의 위험을 분담하는 셈이 되죠.
때문에 형주 문제는 동오에 있어서는 실(失)이지만, 우환이 줄어들어 결국에는 득(得)으로 여길 것입니다.
득과 실이 모두 공존하고 있으니, 주유와는 달리, 손권과 노숙, 두 사람은 우리를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 자명 합니다."
"그러나 조조는 적벽에서 대패 한데다가 남군에서 패해, 노기가 충천했을 텐데, 우리를 그냥 두고 보려고만 하겠소?"
"그건, 생각일 뿐, 염려하실 건 없습니다."
"그건 또 왜요?"
"저도 생각해 보았지만, 적벽 전투 이후, 조조는 북으로 철수해 합비 일대에 방어진을 펼치고, 형주 일대에는 이만 군사만을 남겨 조인에게 지키도록 했습니다. 왜 그랬을 까요?"
"그 말은?... 조조가 형주를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알아냈습니다. 조조는 나름대로 속셈이 있었지요. 조조는 <손유 동맹> 앞에서 형주를 잃을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이왕 잃을 바에야 뭔가 가치있게 잃고... 그게 뭘까 생각해 보니, 형주를 미끼로 손유 동맹을 와해 시키고 둘 의 싸움을 구경하려 했던 겁니다. 그리하여 양쪽이 피해를 보면, 그때 가서 공격하려 했을 겁니다. 그러니 손유가 서로 교전을 하지 않고, 동맹을 유지한다면 조조는 수 년 내로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허!.... 과연, 뛰는 주유에 나는 공명 선생이오!"
장비가 감탄사를 내지른다.
아울러 유비도 얼굴에 근심도 사라진다.
그러면서 공명에게,
"그렇다면 선생, 이 자리에 앉아도 되겠소이까?"
하고, 조심스런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공명이 소리내어 웃으며,
"허허허!... 물론 입니다. 여긴, 주공께서 앉으실 자리입니다."
공명은 손으로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음!..."
유비가 형주의 관장이었던 유표가 앉던 자리로 다가 가서 잠시 바라보다가 드디어 좌정하였다.
장비가 그 모습을 뿌듯한 얼굴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운도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장수들을 돌아 보았다.
"허!... 평생 전장에만 떠돌아 다녔는데, 오늘에야 발 붙일 곳이 생겼군요."
유비가 공명을 돌아 보며 감격에 겨워 말하자, 장비와 조운, 그리고 입시한 모든 장수들이 두 손을 모아 올리며,
"감축드립니다!"
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이었다.
유비의 감격은 자리에 앉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공명, 내가 과거에 삼고초려로 선생을 모실 때, 선생이 나한테 뭐라한 줄 아시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공명은,
"글쎄요...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짐짓 사양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미소를 띠며 말한다.
"대업을 이루려면, 첫째, 형주를 근거지로 삼고, 둘째, 서천을 취해 정적지세(政敵之勢)를 이루며, 셋째, 때를 찾아, 거병하여 북벌하라, 하셨소."
"하!... 제가 그랬던가요?"
공명은 삼고초려 마지막 날에 유비에게 말했던 내용을 주군인 유비가 아직도 잊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보람과 긍지를 느꼈지만, 짐짓 모르는 일이었던 듯이 대답하였다.
공명의 대답을 듣고, 유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연다.
"오늘, 그 첫 발을 완성시켜 주셨으니, 이 유비가 감격하는 바이오."
유비는 이렇게 말을 함과 동시에 두 손을 모아 올리고 공명을 향하여 깊숙히 허리를 굽혔다.
"하! ..."
느닷없는 유비의 절을 받게 된 공명이 두 손을 맞잡고,
"주공께서는 하늘이 내려주신 영웅이시니, 대업을 이루실 겁니다."
하고, 대답 하며 유비를 향해 마주 절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