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민수기 21장 11-20절「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을 떠나 오봇에 진을 쳤고 오봇을 떠나 모압 앞쪽 해 돋는 쪽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을 쳤고 거기를 떠나 세렛 골짜기에 진을 쳤고 거기를 떠나 아모리인의 영토에서 흘러 나와서 광야에 이른 아르논 강 건너편에 진을 쳤으니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의 경계가 된 곳이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전쟁기에 일렀으되 수바의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와 모든 골짜기의 비탈은 아르 고을을 향하여 기울어지고 모압의 경계에 닿았도다 하였더라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그들은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맛다나에서 나할리엘에 이르렀고 나할리엘에서 바못에 이르렀고 바못에서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렀더라」
오봇(히브리어 오보트)은 물병을 뜻하는 오브의 복수형으로“물 담는 가죽부대”를 뜻한다, 여기에 진을 쳤다는 것은 광야를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첫 진지로서 시작을 의미한다. 물은 하나님 말씀으로 물을 담은 가죽 부대는 하나님 말씀에 충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예아바림은 모압 동남편의 변방 불모지였고 모압과 에돔이 만나는 장소로서, 교차로의 폐허라 지칭한 대로 사람에 생존할 수 없었던 곳이다. 하나님 말씀에 충만한 자라도, 물없는 곳(말씀이 없는 곳)을 지날 때가 있는 것이다.
해 돋는편 광야란 요단 동쪽에 위치한 광야라는 뜻이다. 세렛 골짜기에서, 세렛은 긴 시내를 형성하는 지역으로 모압의 남동쪽을 지나 사해의 남동쪽으로 물줄기를 이룬다. 이스라엘은 이 세렛 시내를 건넘으로 비로소 광야 38년간의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진입 여정에 돌입할 수 있었다. 물없는 것을 지나 다시 생명의 물이 흐르는 곳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성도는 세상에서 말씀의 충만과 고갈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족속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창세기 15장 15-16절「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모든 인간들이 원래는 영으로 하나님 나라에 존재했었으며, 하나님 나라를 떠나 세상에 살다가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데, 세상에서 죄악을 회개하지 않고 살다가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아모리 족속의 죄악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세상 사람들의 죄악을 의미한다. 모든 인간은 죄악 속에 살아가는 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은 생명의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아르논은 급류란 뜻의 강으로서, 북부 아라비아 산지에서 가파른 골짜기를 타고 진행하여 사해 동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긴 강이다. 당시 아모리와 모압은 이 강을 경계로 대치하고 있었다.
“여호와의 전쟁기에 일렀으되” 이는 야살의 책과 함께 성경에 그 이름만 알려진 고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여호와께서 베푸신 영광스러운 사역들을 찬양하기 위하여 모세 자신의 시대에 기록된 송시 모음집이다. 이 책의 내용이 가나안 여정 중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주로 출애굽 여정을 하나님의 구원 역사라는 관점에서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수바의 와헙(와헤브 베수파)에서, 수바는 아르논 지역에 위치한 아모리인의 영토였고, 와헙은 그 지역에 있는 요새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르는 아르논 강을 끼고 발달한 모압의 성읍인데, 정치,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이었다. 이 짧은 서사시가 지닌 역사적 가치는 아르논 강이 모압과 아모리족의 경계선이었다는 점을 보여 주는 데 있다.
강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세상에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물이 된다. 영적으로는 생명의 말씀과 비진리의 말이 전쟁을 하는 것이다. 생명의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을 바탕으로 하므로 반드시 비진리를 이기게 한다.
여호수아 12장 1절에서 여호수아가 요단 동편을 점령할 때 아르논 강 이북 지역 전체를 정벌하였다.「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쪽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쪽 온 아라바를 차지하고 그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여호수아는 이곳을 점령하고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를 한다. 여호수아가 이곳을 점령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였다. 신명기 2장 36절「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모든 땅을 우리에게 넘겨주심으로 아르논 골짜기 가장자리에 있는 아로엘과 골짜기 가운데에 있는 성읍으로부터 길르앗까지 우리가 모든 높은 성읍을 점령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초에 이들의 땅을 점령하지 않고 지나갈려고만 했다. 신명기 2장 26절 「나를 네 땅으로 통과하게 하라 내가 큰길로만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그들이 길을 막았다. 하나님이 그들을 치게 하셔서 정복하게 하신 것이다.
신명기 2장 30-31절「그러나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를 통과하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네 하나님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넘기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셨고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렸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이제 시혼과 그의 땅을 네게 넘기노니 너는 이제부터 그의 땅을 차지하여 기업으로 삼으라 하시더니.」
브엘은 우물, 물웅덩이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시하여 땅을 파게 함으로써 물을 주신 곳이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노래하라는 것이다. 이 노래를 우물의 노래라 한다. 이 노래는 죽음의 땅 광야에서 생명의 샘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격스럽게 찬양한 것으로서, 38년의 광야 생활이 끝난 환희와 생동감을 다른 두편의 시와 더불어 인상깊게 묘사하고 있다. 여호와의 전쟁기는 바로 이같은 서사시의 모음집이다.
죽음의 땅, 세상 가운데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어야 할 존재임을 깨닫고 믿을 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부활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 찬양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일어나는 전쟁도 이와 같은 모습을 나타낸다.
“이 우물은 지휘관(사르)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나디브)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사르는 지방 수령을 의미하고, 나디브는 중앙 정부의 장관을 의미한다. 잘 짜여진 권력관계를 보여준다. 성도에게 있어서 영적 권력관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되시고, 성도는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생명의 물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관계가 된다.
“규와 지팡이”에서, 규(메호케크)는 지휘봉 등의 뜻으로서 통치자의 권능을 상징하는 것이며, 지팡이(미쉐아노탐)는 권능의 손으로서 권능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도자들의 권위있는 명령에 따라 우물 파는 작업이 진행 되었으며, 결국 생명의 말씀이 그들에게 임하게 된 것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노래가 된다. 그 생명의 말씀은 부활생명으로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된다.
“그들은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맛다나에서 나할리엘에 이르렀고 나할리엘에서 바못에 이르렀고 바못에서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렀더라”
맛다나는 선물이란 의미를 갖는다. 나할리엘은 하나님의 급류 골짜기란 뜻의 지명으로, 생명으로 넘치는 것을 의미한다. 바못은 바알의 산당이란 뜻이다. 바알과 아세라 신을 짓밟고 정복하는 것이다.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는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 정상에 가까운 모압들의 골짜기이다. 비스가 산은 깍아 새긴 것이란 뜻을 지녔으며, 아바림 산맥의 한 봉우리였다. 이 산 정상에 오르면 모압 평지 전부와, 서쪽으로는 사해까지 굽어볼 수 있는 높은 산이었다. 모세는 후일 이곳에서 아득한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도 했다.
신명기 3장 27절에서「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