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곱슬의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묶은 귀여운 외모를 가진 여자아이가 한 손에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아버지의 손을 잡은 채 행복한 표정으로 걷고 있다. 아버지가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인영이는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인영은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나중에 커서 아빠 같은 경찰관이 될 거야.”
아버지는 인영을 잡고 있던 손을 풀더니 그 손으로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아빠가 더 좋은 경찰이 되어야겠구나.”
인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응!”
인영의 아버지는 높은 직위를 바라며 고위직들과 갖은 자리를 가지며 가족에게 소홀해져 갔고, 인영의 어머니는 남편을 의심하고 집착을 하다가 정신병을 앓게 되었다. 어느 정도 높은 직위에도 인영의 아버지는 만족하지 못했고, 그의 승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영의 아버지에 의해 직장도 가족도 잃은 한 남자가 인영의 집에 쳐들어왔다. 인영의 어머니는 인영을 옷장 안으로 숨겼다. 옷장의 틈으로 인영은 모르는 아저씨가 자신의 어머니를 성폭행하고 죽이는 장면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범인이 떠나고 인영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빠, 으흑으흑”
“인영이니?”
“아빠, 엄마가 엄마가 으흑으흑”
“엄마가 또 전화하라고 시킨 거니? 아빠는 바빠서 못 가니까 엄마하고 있으렴. 뚜뚜뚜”
끊겨진 전화를 붙잡고 한참을 울던 인영은 죽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음날 이웃의 신고로 인영과 어머니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병원으로 달려 온 아버지는 인영을 안고 말했다.
“괜찮니? 인영아. 아버지가 늦어서 미안하다.”
아버지 품에서 한참을 울던 인영은 지쳐서 잠들었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 아버지의 전화내용을 듣게 되었다.
“검찰 간부의 집에서 부인이 살해되다니,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어. 그 여자 정신병원이나 넣어버리는 건데 말이야.”
인영은 입술을 깨문 채 소리죽여 울었다. 어머니의 죽음보다는 자신의 체면손상에 더 신경 쓰는 아버지가 너무도 미웠다. 몇 일 후 담당 형사가 인영을 찾아왔다. 체크무늬 바지와 넥타이가 눈에 띄는 중년의 아저씨였다. 형사는 말했다.
“내가 꼭 범인은 잡아주마.”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은 인영은 말없이 그저 형사를 바라보기만 했다. 일주일 후 병원을 돌아다니던 인영은 피를 흘리며 간의침대에 누워있는 형사를 보았다. 형사는 인영에게 말했다.
“약속한대로 범인을 잡았단다.”
범인에게 당한 상처라는 것을 안 인영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저씨도 이제 죽는 거야?”
형사는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인영에게 주며 말했다.
“예쁜 아가씨가 우는 거 아니야. 윽!”
형사는 피를 토했고, 간호사들이 달려와 서둘러 그를 수술실로 옮겼다. 인영은 형사에게 받은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피 맛이 섞인 달고도 쓴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결국 형사는 살지 못했다. 인영은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 범인을 잡아준 형사를 존경하기로 했다.
인영은 우수한 성적을 받으며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후 경찰대학으로 진학하였다. 딸이 판사나 검사가 되길 바라던 아버지는 매우 화를 내셨지만 인영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경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인영은 희망에 의해 강력계 형사가 되었다. 3년쯤 되었을 때 인영의 파트너로 새로 들어온 신참이 뽑혔다. 그의 이름은 도혁진으로 강력계에 어울리지 않게 여리게 생긴 모습 이였다. 밤늦게 잠복수사에서 범인을 잡지 못하고 다친 둘은 가까운 혁진의 집으로 가서 치료하기로 했다. 치료를 대충 마치고 출출해진 둘은 라면을 끓여서 먹고 있었다. 그때 집 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들어왔다. 청순한 모습의 그녀에게 반한 인영은 물고 있던 라면을 바닥에 흘렸고, 그 모습을 본 여성은 피식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혁진은 인영이 흘린 라면을 치우며 말했다.
“선배, 그런 거였어요? 어쩐지 남자선배들이 고백했을 때 매정하게 차시더니.. 에잇! 나도 선배 좀 좋아했는데 실망이다.”
인영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미안하다..”
갑자기 혁진이 인영의 손을 잡았다. 인영이 깜짝 놀라서 그를 보며 말했다.
“왜, 왜이래?”
혁진은 인영의 손을 더 꼭 잡으며 말했다.
“선배라면 저희 누나를 맡길 수 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인영은 혁진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혁진은 슬픈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희 집은 어릴 적에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누나를 어머니대신으로 여겼나 봐요.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에야 누나는 치료를 받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누나는 남자를 사랑할 수가 없데요...”
인영은 혁진의 등을 세게 치며 말했다.
“걱정마라. 나라도 괜찮다면 너희 누가 책임져 준다.”
혁진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정말이죠? 그럼 여긴 누나가 잘 가는 바이고, 이런건 누나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고, 또 ...”
혁진은 스토커처럼 자신의 누나에 대한 걸 다 알고 있었고, 인영은 혁진의 정보력에 무서움과 고마움을 느꼈다. 몇 일 후 인영은 혁진이 조언해준 대로 꾸미고 혁진의 누나인 가영이 잘 가는 바에 앉아있었다. 문만 노려보고 있는데 가영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긴장해서 술만 벌컥벌컥 삼키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가영이였다. 그녀는 인영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랑 같이 갈래요?”
인영은 수사이외에 처음 와보는 모텔의 분위기에 당황할 틈도 없이 가영의 리드에 휩쓸렸고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가영은 이미 떠난 상태였다. 화장대 한편에 작은 메모가 남겨져 있을 뿐이였다.
‘마음에 들었어. 다음에 또 봐.’
혁진에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인영은 혁진의 갑작스러운 사직통보를 받았다. 떠나는 혁진에게 인영이 물었다.
“왜 그러는 거야?”
혁진은 웃으며 말했다.
“저한테는 형사가 잘 안 맞는 거 같아요. 친구가 좋은 사업을 제안해서 같이 하려구요. 헤어진다고 서운해 하지 말아요. 선배는 우리 가족이 될 거잖아요.”
인영이 부끄러움에 붉어진 얼굴을 식히기도 전에 혁진은 떠나갔고, 그 후 몇 일이 지나고 혁진은 시체가 되어서 발견되었다. 인영은 혼자 남은 가영이 걱정되어 집으로 찾아갔다. 혼자 있고 싶다며 집안의 물건들을 던지며 자신을 거부하는 가영의 모습에 인영은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인영은 혁진을 죽인 범인을 잡기위해 조사하여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냈지만 워낙 함부로 체포하기에는 권력가의 아들이라는 것이 걸렸다. 인영은 범인이 누구인지만이라도 알려주기 위해 가영을 찾아가서 자신이 모은 정보들을 넘겨주며 말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서 체포하기 힘듭니다.”
가영은 아무 말 없이 범인의 정보를 읽고 또 읽었다. 그 후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온 가영의 모습에 인영은 안심을 했다. 하지만 가영은 ‘윤여진’ 이라는 여성의 모습으로 강태진에게 접근했고 결국 강태진의 죽음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인영은 직감적으로 가영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저지른 범죄를 지울 수는 없기에 인영은 가영의 죄를 밝히고 그녀의 죄값을 같이 안고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인영은 경찰배지와 총을 반납하며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강력계 반장은 그런 인영으로 보며 말했다.
“혁진이 때문에 이러는 건가? 그렇다면 난 이 사직서를 받을 수 없네. 당분간 휴가를 보낸다고 상부에 말하도록 하겠네.”
그러며 반장은 인영에게 배지를 던져주었다. 인영은 배지를 손에 꼭 쥔 채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다시 못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반장은 인영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그땐 보내주도록 하겠네.”
인영은 권력가들의 비리를 캐내어 그걸 통해 협박하고 거래를 하며 탐정으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강태진의 아버지도 자신에게 의뢰하게 되었다. 인영은 대저택으로 떠나는 그날 하늘을 보며 말했다.
“혁진아 걱정마라. 너희 누나는 내가 책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