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둘러싸고 떠도는 말들 중에서
당시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러 갔던 공수부대원들이
"전라도 XX들 다 죽여라."는 내용의 말들을 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에 대해서 지역감정을 유발시키려는 거짓 유언비어다, 라는 식의 반론들도 있었는데
그러나 당시 상황을 담은 계엄군 내부 보고서에 의하면
실제로 그런 말들을 공수부대원들이 하고 다녔다.
- 최초 11공수단이 군중들에게 몽둥이로 과격하게 때리고 군홧발로 밟아서 "전라도 새끼들 다 때려 죽인다"고 하여 자극받은 것이 크게 확대된 원인(5공병여단 중령 장XX)
뿐만 아니라 당시 11공수여단 대원의 증언에도 그런 내용들이 언급된다.
사실 1970~8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전라도에 대한 혐오와 멸시 정서가 가득했다.
따라서 공수부대원들이 실제로 "전라도 XX들 다 죽여라."는 내용의 말들을 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단적인 예로 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그의 저서인 개념사회에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다.
신경민 의원 본인이 서울대학교 학생이던 1970년대에 어느 여학생과 데이트를 하러 만났는데, 만난 자리에서 여학생이 신경민 앵커더러 고향이 어디냐고 묻자 전라도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여학생은 "내 부모가 전라도 사람과는 연애도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전라도 사람과 사귀지 않겠다."라고 말하면서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떠났다고 한다.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사회에 전라도에 대한 혐오와 멸시 정서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더 있는데, 1970년대 어느 일본인 남성이 한국인 여성과 사귀다가 결혼을 결심하고 그 여성의 부모를 찾아가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그 부모가 놀라서 당황하다가 결국 아버지가 결혼 허락을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관인 게 "...그래도 전라도 사람과 결혼하는 것보다는 낫지!"였다는 일화도 있다.
참고로 1970년대 한국은 지금보다 반일 감정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강했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 일본인과 결혼하는 게 전라도 출신과 결혼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면, 전라도 출신들은 한 마디로 같은 나라 사람 취급도 못 받았다는 뜻이다.
하기야 1970~80년대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배려하거나 보호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그리고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빨갱이는 얼마든지 죽여도 된다는 극단적인 매카시즘도 팽배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계엄군 수뇌부가 공수부대원들한테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킨 빨갱이들은 다 죽여야 한다고 명령하는 상황에서 광주로 파견된 공수부대원들이 광주 시민들을 점잖게 대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