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이야깁니다.
못먹고 살던 때라 열심히 일하는 어른들보다도 저 푸른 초원 욱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멀쩡한 나무 옆에 긴 사다리를 놓아
그 사다리를 한가로이 올라가 나뭇가지를 이리 보고 저리 가늠해 보면서
나름 예술적으로 잘라대는 어른의 일상이 참 여유롭고 부러웠습니다.
저도 어른이 되면 햇살 가득한 정원에서 나뭇가지를 잘라주며
나무와 살가운 대화를 나누......기는 ?? 뭐....독백이라도 멋지게 하고 싶었지요.
그닥 멀지 않은 곳에 빈 집이 한 채 있습니다.
그 집 담은 여름이면 담쟁이가 멋들어지게 녹색, 적색, 간간히 까망 점박이로 덮고
오가피라는 놈도 황칠나무라는 놈도 철쭉이라는 놈도 주인이 신경을 안쓰니 무작스럽게도 커서
담을 넘어 지나가는 자동차 앞유리 옆유리를 핥는 변태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꽃동산을 꾸미려는 옛날 아가씨의 청에 꽃바치는 마음으로 그 옛날 아가씨가 필요하다는 작품을 만들러갔다가
꾀가 나가지고 일은 하지 않고 시간을 뭉개다가 문득 시선이 하늘 모르고 치솟는 오가피에 닿았습니다.
오홋....너 잘걸렸다.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고 너 핑계로 내 게으름을 핑계삼을란다~~~
그래....살가운 대화를 건네기보다는 살벌한 전지가위와 톱을 들이댔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분명 열매가 열렸을 터인데 열매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마 동네 양반들이 제가 무지무지무지 마음이 넓은 아저씨로 알고 있나 봅니다.
이래서 당근마켓에는 cctv가 품귀현상을 보이나 싶습니다.
니들....자꾸 이러믄 디진다....ㅡ,.ㅡ;;;
그래도 옛날 아가씨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고 너그러운 우리의 푼수영감입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지쳐서 고왔던 입술마저 백태가 끼어 흐느적대는 옛날 아가씨를 불러세워
자른 오가피 가지 하나를 선물합니다.
'물끓여 드시면 안드시는 것 보다는 나을 거에요~'
영감탱이의 과도한 친절은 안받느니만 못하다는 이야기도 잊은 채 우리의 옛날 아가씨 얼굴에 함박꽃을 피우며
건네 받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빈집을 향해 발길을 돌립니다.
가만....다음 번에는 뭐라고 말을 건담?? 우리 레스토랑 가서 칼질 좀 해볼까요? 아니아니...밭일 바쁜 아줌이 승락하긴
어려운 주문이고...아짐!! 오늘 하는 일 좀 거들어 디릴까요?? ....아.오메...이 멘트는 자살 골이고....ㅡ,.ㅡ;;
오가피 가지 날리는 사이 가로등이 켜졌습니다.
나름 예술적으로 전지작업을 한다고 애썼지만 그냥 애만 쓴 격이 되었습니다.
다음 부터는 애는 쓰지 말고 어른을 쓰기로!!!
그런데 말입니다.
전지작업은 아무리 험하게 해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백번 낫습니다.
태어나서는 아부지엄니 손에 자라면서는 손아래 동생들 손에 장가가서 이날 이때껏은 형수 손에만
모든 것을 맡겨버린 제 큰 형이 엄니아버지 묘소 앞의 불두화를 무작스럽게도 잘라내기에...
속으로... 저 양반은 할 줄 아는 게 그저 먹고 싸는 것 뿐인가~~~ 했는데
한 계절이 지나고 무작스러운 큰형이 베어낸 불두화는 너무도 알차게 잎이 들어서고 꽃이 부십니다.
그 때 알았습니다.
무지막지한 전지는 무위자연의 방임보다는 낫다는 사실을요.
봄보다 더 따뜻한 이틀을 보냈습니다.
이제 진정 봄인가 하지만 오가피는 난리를 치르고 알몸으로 분기탱천해 있습니다.
다시 추위는 오고 또 따사한 빛이 반복되다가 어느 결엔가 봄이 오겠지요.
서툰 원예가의 손에 헐벗은 오가피도 다시 잎을 내고 열매를 맺겠지요.
살가운 대화도 남부끄러운 독백도 섞어서 가지를 잘라대며 옛날 아가씨가 부탁한 것은 까맣게 잊는 것을 보니
어릴 때 본 것처럼 나무 전지가 맨땅에 헤딩하는 몸쓰는 일보다는 백번 여유로운 것 같습니다.
전지작업은 4일 전에 했던 일입니다.
핸드폰 들여다 보다가 갤러리에 박혀있는 사진을 보고 쓸데없는 글 줄을 더합니다.
4일전 그 때처럼 날이 어둑합니다.
골목길을 비추던 따뜻한 노란 전구불빛이 오래된 기억처럼 편안합니다.
편안한 저녁되시기를요.
첫댓글 일상이 녹아 있는 글, 감사합니다. ^~^
언제나 친절한 선주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