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잘 못읽어도 소비자 마음은 잘 읽는다
2002년 3월 호주에서 열린 영연방(英聯邦) 정상회의. 수십 개국 정상이 모이는 이 자리에서 토니 블레어(Blair) 당시 영국 총리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을 비볐다. 소매 안쪽에 발가벗은 여성이 빨간 전화기를 든 그림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언론은 '근엄하지 못한' 총리의 패션 스타일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이 셔츠를 디자인한 사람. 블레어 전(前) 총리에서부터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McCartney), 록 가수인 데이비드 보위(Bowie)까지 '팬'으로 둔 사람. 영국의 패션 아이콘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폴 스미스(Paul Smith)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회사 폴 스미스의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이며 수석 디자이너이자 사장이다. 전 세계 70여 개국에 400개 이상의 매장을 두고 있으며, 지난해 3억3500만 파운드(약 6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국 디자인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2000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Weekly BIZ는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자신의 소장품 전시회(현재는 끝났음)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그는 193㎝의 큰 키에 물결 치듯 바람에 날리는 흰 머리칼, 그리고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 ▲ 폴 스미스(사진 가운데)는 2008년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의상과 액세서리를 디자인하고 있다. 박지성(왼쪽)과 반 데사르(오른쪽) 등 맨유 선수들이 입은 양복과 셔츠, 벨트, 구두가 모두 폴 스미스의 작품. /폴 스미스 제공
인터뷰 장소는 미술관 3층, 그의 영국 런던 사무실 일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었다. 방은 수많은 소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몇 가지만 꼽아보면 이렇다. 분홍색 자전거, 마치 헌책방처럼 1m 높이로 쌓여 있는 책, 헝겊 조각들, 로봇 모형 수십개, 고질라 모형, 스누피(만화주인공) 전화기…. 마치 15살 소년의 방 같았다.
―사무실이 어지럽네요. 물건을 찾거나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네. 그래요(웃음). 사실, 이 정도면 평소보다 특별히 깔끔한 편이죠(웃음). 실제 런던 사무실은 이 방과 거의 똑같습니다. 비밀을 알려 드리죠. 저는 동시에 여러 개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의자에 기대앉아 회의하면서 책장에서 책을 꺼내서 참고 자료로 삼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런 상황이 혼란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게 영감을 주죠."
이 사무실은 이 디자이너가 가진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올해 예순넷이지만 폴 스미스는 여전히 "세상은 정신없고 재미있는 모험이 가득 찬 곳"이라고 말하곤 한다. 주머니 속에 늘 수첩과 카메라를 넣고 다니며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끊임없이 기록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멍하게 시간을 보내기엔 세상은 너무 재미가 넘쳐난다는 것. 그의 자서전 제목은 이렇다. 《세상 모든 곳에서 영감(靈感)을 찾을 수 있어요. 못 찾았다고요? 그럼 다시 보세요(You can find inspiration in everything and if you can't, look again.)》(국내 미출간).
- ▲ 폴 스미스의 로고와 가방, 우산. 폴 스미스 디자인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멀티 스트라이프 패턴(multi stripe pattern·여러 색 줄무늬를 나란히 배치한 문양)이 들어가 있다.
세상에는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많다. 하지만 사랑받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다. 폴 스미스가 영국 사람들에게 팝스타처럼 사랑받는 건 좌절하지 않는 긍정의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그 힘으로 인생의 고비 고비를 웃으며 넘겼고, 그 스토리는 어려움에 부닥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그는 15살에 학교를 관뒀다. 공부를 잘 못하기도 했지만 난독증이 있었다. 사이클을 즐겨서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18살 때 자동차 사고로 큰 부상을 당하면서 그 꿈마저 접어야 했다. 우연한 기회에 디자이너가 돼 옷 가게를 열었지만, 가게 매출만으론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월·화·수·목 4일은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금·토요일만이 자신의 꿈을 추구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월·화·수·목이 있었기에 내가 추구하는 디자인을 밀고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게를 열고 6년 만에 첫 개인 컬렉션을 선보인 곳은 파리의 작은 호텔방이었다. 무명의 디자이너는 재킷 두벌과 바지 두벌, 셔츠 여섯벌과 두벌의 니트를 침대 위에 깔아 놓았지만, 4일 동안 손님이 단 한명도 없었다. 전시회 마지막 날 오후 5시 한 손님이 문을 두드렸다. 첫 손님이었고 비로소 그가 디자이너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 ▲ 폴 스미스씨는“사업을 하는 이유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단 한 번도 정규 디자이너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다 15살에 학교를 관두셨습니다.
"제가 그리 똑똑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웃음). 학교가 지루했고,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 계급이신 제 부모님도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셨고요. 물론 저야 기뻤죠.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어느 금요일에 학교를 관뒀고, 다음 월요일에 아버지가 소개해 준 의류 창고에서 일해야 했죠. 제 인생에 방학은 단 이틀뿐이었던 셈입니다. 창고에서는 우체국으로 심부름을 가거나 배달된 소포를 뜯는 일을 했어요. 심부름꾼이었죠. 물론 교육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생활 기술이라고 할 그런 것들을 배웠습니다.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읽는 그런 훈련을 한 거죠."
"패션잡지는 안 본다… 남의 아이디어는 빈 껍데기일 뿐이니까"
폴 스미스와의 인터뷰는 미술관 한가운데서 진행됐다. 전시를 보러 온 팬들은 호기심에 우리를 주목했다. 폴 스미스는 기자보다 팬들에게 더 신경을 쓰는 듯 보였다. 그는 팬들에게 말했다. "인터뷰는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음껏 전시를 둘러보세요." 묘한 인터뷰였다.
―18세 때 자전거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신 게 디자이너가 된 계기였다죠?
(그는 갑자기 오른쪽 다리를 감싸며 아픈 시늉을 했다.)
"11세부터 18세 때까지 제 유일한 꿈은 사이클 선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일주일에 400마일(640여㎞)씩 자전거를 연습했어요. 그러다 사고가 났습니다. 멋진 선글라스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땅만 보고 달리다 그만 차 뒤를 들이받았습니다. 다리뼈가 살 밖으로 나올 정도로 다쳤죠. 슬펐습니다. 하지만 퇴원하고 새롭게 예술과 창의성의 세계를 알게 됐습니다. 마치 새로운 빛을 본 것 같았죠."
- ▲ 의류 디자이너로 출발했지만 폴 스미스의 디자인에는 경계가 없다. 그가 디자인한 생수병·크리스마스트리 장식·여성복·자동차·주방용품(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모두 그의 대표적인 디자인인 줄무늬 패턴이 적용됐다. /폴 스미스 제공
―디자인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술집이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병원에 함께 입원해 있던 친구를 퇴원 후 시내에 있는 한 술집에서 만났습니다. 그 친구 주변에는 예술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과 점점 어울리게 됐죠. 바로 그 술집에서요. 그들 중엔 재닛(Janet)이라는 여성 패션 디자이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가게를 열 생각이었는데, '점포를 어떻게 임대해야 하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런 일은 내가 잘 안다'고 했죠. 사실 몰랐지만요. 저는 늘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녀를 도와 부동산 중개업소들을 다니며 가게를 구하고, 계약을 하고, 가게를 직접 꾸몄습니다. 많은 걸 배웠죠. 18살 때요. 그 가게에서 6년을 일했고, 천천히 돈을 모아 제 가게를 차릴 준비를 했습니다."
1970년 그는 600파운드를 모아 첫 가게를 열었다. 24살 때였다.
■전통을 비튼다
폴 스미스의 디자인 특징으로 불리는 '전통을 살짝 비튼 유머와 기발함'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깊이 배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예를 들어 그는 양쪽 소매의 길이가 다른 재킷, 타자기 자판 모양의 커프스 버튼, 꽃무늬 트렁크 팬티 같이 튀는 제품을 디자인했는데, 이런 독특한 발상은 그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는 것. 포목상을 운영하며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마당에 나무박스들을 쌓고, 그 위에 양탄자를 덮은 뒤 학교에서 돌아온 어린 아들을 서게 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풍경 사진과 합성해 '하늘을 나는 양탄자'라고 부르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게를 열 무렵 그는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한 6세 연상의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지금 그의 아내인 폴린이다. 그녀는 동업자이자 스승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저녁마다 그에게 재단하는 법과 옷의 형태를 잡는 법을 가르쳤다.
―패션시장은 빨리 변합니다. 이런 시장에서 생존 전략이 있다면 뭔가요?
"자신만의 캐릭터. 폴 스미스에는 개성이 있어요. 빈 껍데기뿐인 기성품 브랜드가 아닙니다. 우리는 심장이 있고 개성이 있는 브랜드입니다. 많은 브랜드들은 단지 비즈니스맨들이 만들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저는 지금 이 인터뷰 역시 다른 경영자들이나 일반적인 디자이너들과의 인터뷰보다 훨씬 재미있기를 바랍니다. 일반적인 패션 디자이너들은 '다음 시즌에 유행할 색이 뭔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 있는 수많은 제 수집품들처럼 개성이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지요."
그는 패션잡지를 전혀 보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로 머리를 채우기 싫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패션을 보는 건 어제 신문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신 세상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고,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하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비즈니스가 수플레(souffle·디저트의 한 종류)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비즈니스에서는 그저 멋진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경쟁업체가 뭐를 하는지도 이해해야 하고, 세계 패션의 흐름과 시장 상황, 제품을 만드는 데 드는 원가, 그리고 제품 판매전략, 홍보까지 모든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재료가 들어가지 않으면 멋진 수플레가 되지 않죠."
폴 스미스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지금까지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VAT가 보드카 토닉(vodka and tonic·칵테일의 일종)이 아니라 부가가치세(Value Added Tax)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자유롭기 위해 비즈니스를 한다"
―회사를 성장시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증시에 상장해 자금을 모으는 것도 방법이고요. 하지만 상장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왜냐하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말을 멈추고 기자에게 "질문이 있다"고 했다. "상장기업이 되는 것과 지금처럼 개인 기업으로 남는 게 어떤 차이가 있죠."
"자금을 모아서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지 않으냐"고 했더니 "왜 저한테 더 많은 돈이 필요하죠? 돈을 가지고 뭘 하죠? 말씀해 보세요?"라고 되물었다. 기자는 "매장을 늘리고 더 많은 사람에게 폴 스미스 제품을 팔고 싶지 않으냐"고 했다. 그가 다시 답을 이어갔다.
"저는 지금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만약 상장이 된다면 주주들이 이렇게 외치겠죠. '더 높은 매출, 더 많은 수익, 더 많은 보트와 더 많은 개인용 제트기!'. 생각만 해도 골치 아파요."
유행 아닌 개성을 판다
마구 찍어내는 기성복엔 영혼이 없어…
자신만의 캐릭터를 담을 때 옷도 '생명력'
난 자유를 얻기 위해 디자인한다
시장조사도 안 한다
책상에 앉아 '판매전략'만 짜는 건 돈 낭비
車 옆좌석의 운전사와 대화부터 하라
"당신 월급은 소비자가 준다" 직원에 교육
―그럼 경영자로서 사업하시는 목적이 뭡니까?
"개인적으로 보면 삶의 자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죠. 여기 보시는 이런 예술 작품들을 모으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우리 회사는 개인기업이기 때문에 제가 제품에 대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은행가나 주주들은 제품이 아니라 오로지 돈에만 관심이 있죠. 저는 주식시장 타입의 비즈니스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비즈니스는 단지 돈에만 초점을 맞출 뿐 제가 원하는 대화나 미학, 가슴을 가진다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폴 스미스에는 따뜻한 감정이 있습니다. 요즘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아주 특별한 것이죠."
―많은 브랜드가 소비자 조사에 공을 들입니다. 어떻게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으십니까?
"소비자들을 상대로 시장조사는 하지 않습니다. 일부 브랜드들이 시장 조사에 돈을 쏟는 이유는 그들이 시장과 충분히 가깝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탁자에 둘러앉아 '전략'에 대해 논의할 뿐 실제 소비자들과 함께 있지 않기 때문에 시장 조사를 하는 겁니다.
대신 저는 직원들에게 늘 '겸손하라'고 말하고, '늘 소비자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회사의 VIP는 경영진이 아니라 소비자'이며, '당신에게 월급을 주는 것은 CEO가 아니라 소비자'라고요."
폴 스미스는 직원이 모는 차를 탈 때 뒷자리에 타지 않는다. 늘 운전석 옆자리에 앉는다. 뒷자리에 앉아서는 직원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절대 넘겨짚지 마라"
폴 스미스가 글로벌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일본에 진출해 현재 일본에만 230개 이상의 매장이 있다. 미국과 영국의 매장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일본 시장에서 폴 스미스는 가장 매출이 많은 유럽 브랜드이다. 루이뷔통이나 프라다를 능가한다.
―당시 많은 브랜드가 일본에 진출했는데, 유독 성공한 계기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노력입니다. 1980년대 이탈리아, 영국, 미국의 디자이너들이 일본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일본 소비자들은 돈이 많았고, 많은 서양 디자이너들은 쉽게 돈을 벌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 시장에 대한 이해가 없었습니다. 반면 저는 일본 문화와 음식을 좋아했고, 그렇게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을 일종의 특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돈이 아니라 진심으로 언론과 바이어들을 대했고요. 뭐 특별한 전략이랄 게 없어요. 그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그는 지금까지 100차례 이상 일본을 찾았다). 일본 직원들에게 점포 경영 노하우나 언론과 관계 맺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우리 회사 모토가 '절대 넘겨짚지 마라(Never Assume)'입니다. 그렇게 하나하나를 꼼꼼히 따지며 준비했던 것이 비결인 것 같습니다."
―2005년 베이징과 상하이에 진출했다가 이듬해 철수하셨죠.
"너무 일찍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많은 브랜드처럼 말입니다. 사실 그 가게(베이징과 상하이의 점포)들은 문을 열어서는 안 되는 가게였어요. 제 실수였죠.당시 중국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상태였고, 베이징, 상하이 같은 대도시 곳곳에 대형 쇼핑몰이 새워졌습니다. 폴 스미스를 비롯한 많은 브랜드는 어디에 가게를 열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새롭게 문을 여는 쇼핑몰을 거의 쫓아다니듯 가게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손님이 단 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래서 철수하게 된 겁니다.
중국인들은 최근에 큰돈을 벌게 됐고, 로고가 크게 박인 옷과 가방을 들고 싶어했습니다. 그게 부(富)를 과시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하지만 폴 스미스 제품에는 어딜 봐도 그렇게 큰 로고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19~25세인 젊은 중국인들, 이 세대가 성장하면 상하이 같은 중국 본토에서도 폴 스미스가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좋은 디자인이란 없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을 뿐"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입니까?
"저마다 의견에 따라 다르겠죠. 각자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을 뿐입니다. 클래식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 펑키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 주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비앙(생수 브랜드)부터 자전거까지 옷 이외의 다양한 제품에도 디자인 협력 작업을 합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저에게 일종의 도전입니다. 천이 아니라 플라스틱이나 금속을 다뤄 보면 자전거나 주전자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지요. 돈 때문에 하는 건 아닙니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줄 조언이 있다면.
"늘 '왜 소비자들이 내 제품을 사야 하나'라는 질문을 하길 바랍니다. 전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디자이너가 있고, 수없이 많은 점포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가 왜 바로 당신이 디자인한 옷을 사고, 당신의 가게에 더 흥미를 가져야 하는지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카메라에 들어 있는 한국의 이미지가 궁금합니다.
"서울엔 온갖 건축물들의 이미지가 들어 있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차창을 통해 찍은 것들이죠. 서울은 템포가 빠르고, 아주 빠르게 전진하며, 세계로 열려 있는 느낌입니다."
폴 스미스는 인터뷰가 끝나자 기자와 가벼운 악수를 나눴다. 그러곤 몸을 돌려 인터뷰를 지켜보던 관람객들을 향해 말했다. "즐기세요. 주인공은 여러분이니까요."
'줄무늬 패턴' 유명해 車·생수통까지 디자인
폴 스미스는 전 세계 패션에 '위트'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인물이다. 그의 옷을 보면 겉은 단정하지만 안감에 화려한 꽃무늬를 쓴다거나, 단춧구멍에 색실로 수를 놓고, 서로 다른 색의 단추를 쓰는 식으로 작은 파격들이 숨어 있다. 이런 특징은 단정하면서도 자기만의 색깔을 은근히 드러내려는 전 세계 소비자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그의 작품 세계는 팝아트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많은 부분은 그 스스로의 실험과 관찰 속에서 태어난 개성이다. 멀티 스트라이프 패턴(multi stripe pattern·여러 색 줄무늬를 나란히 배치한 문양)의 탄생 스토리만 봐도 그렇다. 이제 폴 스미스의 시그니처(상징)처럼 된 이 디자인은 그가 전 세계를 다니며 수집한 다양한 천 쪼가리에서 실 한 가닥 한 가닥을 뽑아내 봉에다 실패 감듯이 두르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물건을 수집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낸다. 그의 패션은 옷이라는 테두리를 넘어 자동차나 생수병, 해러즈백화점의 푸드코트까지 사람이 생활하는 모든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디자이너는 죽어서 브랜드를 남긴다. 폴 스미스는 브랜드를 남기는 디자이너일 뿐 아니라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시대의 아티스트로 남을 것이다.
숲속 요정의 집처럼, 분홍색 상자처럼…
전 세계 400곳의 인테리어 모두 달라
폴 스미스 매장은 전 세계에 400개가 넘지만, 어느 하나도 같은 게 없다. 건물 외관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이 모두 다르다. 미국 매장은 분홍색 상자처럼 생겼고, 일본의 한 매장은 덩굴식물이 벽면을 감싸 숲속 요정의 집처럼 보인다. 쇼윈도에 어떤 제품을 놓느냐도 제각각이다. 어떤 매장에서는 옷 대신 작은 장난감 인형과 모자만 놓아둔다.- ▲ 영국 런던의 폴 스미스 매장.
―전 세계 매장을 모두 다르게 만드는 이유가 뭔가요?
"저는 언제나 개인주의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각각 특별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죠. 파리와 밀라노, 뉴욕, 서울을 가보면 유명 브랜드 매장은 거의 똑같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이 아주 슬프고 또 슬퍼요. 그리고 너무 지루합니다. 우리 가게는 가게마다 개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 가게를 찾아야 할 이유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 ▲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폴 스미스 매장.
―하지만 브랜드의 통일성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루이비통 같은 빅브랜드 입장에서도 보면 말이죠.
"저는 그들이 개성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 실망스러울 뿐입니다. 물론 그런 방식으로 운영하는 게 이해는 됩니다.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고, 매장 인테리어 면에서 전 세계 매장에 같은 공식을 적용하면 훨씬 손쉬우니까요. 제 방식은 좀 복잡할 뿐입니다. 그리고 제 개성에 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고요."
재규어, 영국 출신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에 '올 뉴 XJ' 지원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는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국내 방한 기간 동안 재규어의 새로운 럭셔리 플래그십 모델 올 뉴 XJ를 의전 차량으로 지원한다고 19일 밝혔다.
9월 2일부터 오는 11월 28일까지 개인 아트 컬렉션을 공개하는 'Inside Paul Smith-His art, His photography, His world' 전시를 위해 방한한 폴 스미스는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한국에서 각종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문화의 중심지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대림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회는 폴 스미스가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데 있어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된 다양한 개인 소장품들이 소개된다. 이에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는 영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로서,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국내 체류기간 동안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동을 할 수 있도록 자사의 최상위급 모델인 올 뉴 XJ를 의전차량으로 제공한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폴 스미스는 "영국 왕실 전용 의전차량으로 널리 알려진 재규어의 기함인 올 뉴 XJ를 의전 차량으로 지원받게 된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재규어와 폴 스미스 모두 한국 고객들에게 꾸준하게 사랑받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폴 스미스가 지원받는 재규어 올 뉴 XJ는 지난 7월 국내 시장에 처음 출시된 프리미엄 럭셔리 세단으로, 재규어 전통적인 귀족스러움과 현대적인 스타일이 완벽하게 조화된 매혹적인 디자인과 수퍼카급의 폭발적인 주행성능, 럭셔리하고 세련된 인테리어, 1,200W 출력을 자랑하는 B&W(Bowers & Wilkins)를 포함한 최고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으로 럭셔리 세단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 이동훈 대표는 "이번 폴 스미스의 의전차량 제공은 영국을 대표하는 두 개의 럭셔리 프리미엄 브랜드의 만남으로, 그 의미가 매우 특별하다."며, "지난 9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의전차량에 이어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에게 의전차량을 제공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덧붙였다.
또 이어 그는 "앞으로도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제고 할 수 있는 문화 마케팅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