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과 달나라를 오락가락하며 머리를 굴려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치과."
산부인과만큼 가기 싫은 치과에 일주일이 멀다 하고 다니고 있는 요즘, 치아는 五福 중에 하나라는 말이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큰아들이 부실한 내 치아를 그대로 닮았다.
거기다 부정교합이라 교정하는데 무려 7년이나 걸렸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입학식 무렵까지 큰 고생을 했다.
그동안의 불편함과 비용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윗니가 아랫니를 덮듯 맞물리는 것이 정상 치열인데, 그 반대가 부정교합이다.
이런 치열은 씹는 저작력도 떨어질 뿐 아니라 일명 주걱턱이라 불리는 얼굴로 변형이 된다.
강남 세브란스병원에 다니느라 들인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연세대학교 부속병원이라 늘 환자들로 붐비고 오랜 기다림에 비해 치료시간은 짧았다.
엄마를 닮아 겁이 많은 큰아들과 함께 母子는 두려움에 떨면서 지루한 대기 시간을 보냈다.
큰아들이 교정을 시작했을 때 작은아들은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기 시작했다.
작은 유치가 빠진 자리에 큰 영구치가 나오기엔 자리가 좁아 삐뚤게 나오기도 한다.
유치가 흔들리면 더 흔들어서 빼게 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흔들리지도 않은 대문니 바로 옆에 나야 할 이가 대문니 바로 뒤에서 뾰족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치아 네 개가 두 겹으로 겹쳐진 상태에 경악했다.
작은아들까지 또 교정을 해야 하나 앞이 캄캄했다.
그 무렵, 중학교 친구 남편이 하는 교정전문 치과를 알게 되었다.
유심히 살펴보던 의사는 아직 흔들리지도 않은 대문니 옆의 이를 두 개 뺐다.
그러자 대문니 바로 뒤에서 올라오던 이가 제자리를 찾아 반듯하게 올라왔다.
교정을 하지 않고 간단하게 해결해준 의사가 미더웠고 고마웠다.
그때부터 우리 아들들은 그 치과에 단골 환자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치과에 다녔다.
친구의 남편에게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리기가 차마 민망해서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다부진 의사는 친절하고 기술도 훌륭했다.
큰아들이 대전 유성의 대학교 기숙사에 있을 때 갑자기 이가 아파 근처 치과에 갔는데 의사가
"치료 어디서 받았어요? 이렇게 훌륭한 의사라면 내 가족도 맡길 만 합니다."
이런 최고의 찬사에 미국유학 중에도 한국에 오면 이 치과만 고집했고, 대를 이어 손녀까지 단골 환자가 되었다.
지금은 장남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젊은 의사가 아버지보다 더 친절하고 꼼꼼하게 치료를 잘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래서 나도 이 젊은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 중이다.
환자가 궁금증을 가지기 전에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깍듯한 예의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처녀 때 들어온 간호사가 대학생 아들을 둔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고, 세 명의 간호사 모두가 평생직장으로 알고 근무하는 치과다.
사랑니 앞에 크라운 한 내 어금니가 부러졌다.
뿌리만 남아 어떻게 살려볼 도리가 없다며 착한 의사는 도리어 미안해했다.
마취주사로 왼쪽 뺨이 얼얼하니 감각이 없을 때, 뿌리를 빼고 잇몸을 실로 꿰매는 치료를 받았다.
깍지 낀 손가락에 으스러지게 힘이 들어가고 이마에는 송골송골 진땀이 맺혔다.
온몸이 빳빳하도록 굳은 긴장이 풀어지자 맥없이 주저앉고 싶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잇몸이 아물고 뼈가 차오르면 긴 나사를 박는 무서운 임플란트 시술이 기다리고 있다.
내 차트 화면에 'ㅇㅇㅇ모친'이라고 아들 이름이 쓰여있어 초긴장 속에서도 웃음이 나왔다.
30년 이상 단골인 아들을 봐서라도 덜 아프게 더 꼼꼼하게 잘 해주길 바라는 내 마음이 들킬세라 짐짓 못 본 체했다.
그렇게 가기 싫은 치과에 이제 더 주 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오래전에 충치를 치료하고 때운 금조각이 어느 날 세면대에 톡 떨어졌을 때, 순간 내 심장이 쿵 떨어지며 무서운 치과가 떠올랐다.
젊을 때부터 치과에 자주 다니던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이 슬쩍 지나가며 치과와 가족력도 떠올랐다.
아들도 나를?
2015.12.11
첫댓글 ㅋㅋ 치과는 모두한테 무서운 곳인가 봅니다.
자주 가는게 병을 안 키우는데, 저도 될수 있으며 참을수 있을만큼 참은 뒤에 가게 되더라구요. 나이 들수록 치아가 건강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니 치료 잘 받으시구요~~
공감합니다.
무서워서 최대한 미루다가 마지못해 가죠.
텔레비전 화면 가득히 가수들 얼굴이 크로즈업 되면 나는 치열 고르고 충치 하나 없는 건강한 치아를 부러워합니다.
건치는 타고나나 봐요.
무슨 병이든 키우면 안 되지만 치과는 요리 조리 미루다가 다급해서야 가는데 내가 왜 그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으로선 3개월마다 스케일링 하러 치과에 가야지... 하고 마음 먹고 있는데
그 결과 9월에 치과문을 들어섰고 이빨 한개 빼서 해 넣고 신경치료 몇 군데 하고 지금은 갈비도 맛 있게 먹을수
있어 너무나 평온스럽다
치과는 아프기 전에 가야겠드라 늦게 가니 손해가 너무 많드라
그런줄 뻔히 알면서도 자꾸 미루게 되는 것이 치과, 무서워서죠.
무서워 미루는 댓가가 너무 큰데도 말입니다.
이젠 정기적인 검진을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성격이 약간 덜렁덜렁한 큰딸에 비해 작은 딸은 매우 조용하고 있는 듯 없는 듯 했지요. 그런 작은 딸이 여섯 살 쯤 됐을 무렵인가 젖니가 삭아서 치과에 간 적이 있었지요.
치료의자에 올라 안기까지는 순순히 따라 하더니 막상 치료를 하려니 입을 조갑지 같이 다물고 한사코 열어주질 않았지요 . 아무리 달래어도 조그만 입을 꼭 다물고 안 열어 줘서 결국 그날 못하고 돌아왔지요. 요즘은 치과에 가면 어린이가 불안하지 않게 잘 적응하도록 신기한 소품들 있고 합니다만 그때만 해도 여러가지 겁나는 기계에 근엄한 표정으로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선생님만 봐도 딸아이가 겁이 난 듯 합니다. 그딸이 이제 일곱짜리 아들의 엄마가 됐네요
저도 겁이 많았어요.
젖니가 흔들릴 때 외할아버지가 오시면 '어디 보자'하셨어요.
엄지와 검지로 이를 빼주신대서 나는 한사코 입을 다물고 버텼지요.
혼자서 조금씩 밀어 많이 흔들릴 때 내가 뺐어요.
작년에 대공사를 한 나, 오래 걸리고 입을 벌리는 모양세
생각만도 옷삭해. 지금 편하게 맛있게 먹고 있으니 고맙지요 아우의 글솜씨가
점점 호감이 간다.
공부를 하며 강사의 지도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인터넷 동호회원들의 답글이 저에게 더 많은 용기를 줄 것입니다.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언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