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독일 사람의 눈에 비친 한국은 분명 미지의 나라다. 국제문화관련 세미나, 관련 서적 어디에서도 한국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피상적인 사실만 늘어 놓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한국에서 생활해야 한다 는 사실은 나와 내 아내에게 하나의 충격이었다. 15만명 정도의 사람들 이 생활하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천 만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로 붐비는 거대밀집도시 서울의 전혀 다른 분위기는 말할 것 도 없고 더구나 반강제로 나를 어린 소년 시절로 다시 되돌아 가게 하는 듯한 개인적인 느낌이 바로 충격의 일단이다. 상상해 보시라, 한국말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읽지도 그리고 쓰지도 못하는 사람의 심정을. 나는 표지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몸 동작이 무슨 뜻인지를 배워야 했으며 그것도 빨리 익혀야 했다. 그래야 살아 갈 수 있으니까.
나와 같은 외국인에게 한국에서의 일상 생활은, 한국 사람들은 다소 놀 라운 사실이겠지만, 바로 김치 맛을 갑자기 알게 되었을 때, 심지어 수 십 가지의 김치가 지닌 다양한 맛을 구별할 수 있게 될 때, 한 단계 진 전하게 된다. 한국사람 누군가 길에다 침을 뱉는 사실이 더 이상 거북하 지 않게 느껴질 때, 명함을 교환하는 관습이 지니는 가치를 알게 되어 명함을 반드시 갖고 다녀야 할 때, 한국 생활에 이미 젖어 들어가는 단 계로 볼 수 있다.
나는 소위 말하는 한국식 신체 운동(Korean Physical Exercise)을 익혀 야 했다. 즉, 여전히 불완전한 모습이지만 190센티의 키를 구부려 인사 할 때나 저녁을 먹기 위해 방바닥에 앉아 평생 사용치 않았던 다리 근육 을 사용해 구부리고 뻗는 일은 꽤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들은 모든 한국인들이 외국인과 만났을 때 보여주 는 친절함과 도움으로 나는 쉽게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인은 외 국인이 한국인의 예의와 관습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를 경우, - 종종 나 도 알지 못한 채 저지른다 - 용서를 아끼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되어 나는 매우 편안하다.
나에게 한국에서의 생활은 충격으로 시작해 이제 2년 4개월이 지난 지금 , 편안한 단계로 향상되어 한국사람의 온정과 한국문화의 독특성 그리고 한국관습의 가치를 이해하는 단계로 발전하였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어떤 모습으로 한국 생활을 잘 꾸려나갈 지 나 자신도 무척 궁금해 진다 .
디트리히 폰 한스타인 (Dietrich von Hanstein) 한국바스프 사장(62세) 는 독일출생으로 뮌헨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였다. 1972년, 바스프에 입사, 본사 국제회계 담당 부사장, 그룹 감사실장(수석부사장)을 거친 후, 2000년 1월 한국바스프 사장으로 부임했다. 2002년 3월, 한독상공회 의소 10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한독 경제교류 활성화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바스프는 독일계 초국적 화학기업 바스프의100% 자회사다. 효성바스 프, 한화바스프, 바스프코리아, 대상㈜ 라이신, 동성화학㈜ 폴리올 사 업 등 3개사와 2개 사업을 합병하여 1998년 12월 출범하였다. 2001년말 매출 1조 1,940억원으로 1,120명의 종업원들이 서울, 울산, 여수, 군산 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한국내 대표적인 외국기업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