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판소리
동향도 동문도 아니면서 이십 년째 교유하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 우리는 창원으로 근무지를 옮겨오면서 첫 만남이 있었다. 이후 근무지가 달라도 여태 끈끈한 결속과 유대를 지켜간다. 내가 사는 이웃 아파트단지에 살아 자주 만난다. 주중엔 이튿날 근무 부담이 되어 주로 주말에 틈을 낸다. 둘이 마주 앉으면 주꾸미나 족발을 안주로 놓고 맑은 술을 네댓 병 비우기 예사다.
내가 산나물을 뜯어 오거나 지인 농장에서 푸성귀를 마련해 오면 으레 이 친구와 나눔을 한다. 그럴 때면 자리를 일어나면서 친구는 고마움으로 지갑을 먼저 열었다. 지나간 주말에도 집 앞의 아파트상가에서 자리를 가졌다. 이날 친구는 주중에 얼굴을 한 번 더 봤으면 싶다고 했다. 그것은 술자리를 가지려는 뜻이 아니고 판소리 공연 티켓이 마련되어 집사람과 같이 초대하려고 했다.
친구는 대금 연주를 배우는 스승이 속한 국악단체서 티켓을 마련했노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집사람에게 동행 여부를 물었더니 생각이 없었다. 주중 수요일 저녁 식후 친구는 집 앞으로 차를 몰아왔다. 우리는 공연이 있는 마산 3.15아트센터로 갔다. 전통음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인 ‘판소리, 시대의 옷을 입다’는 사단법인 경남국악관현악단 ‘휴’가 연례행사로 갖는 정기공연이었다.
친구는 퇴근 시간대 교통체증을 고려해 공연 시작 시간보다 이르게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봉암다리 근처 이르니 차량이 제법 밀렸다. 그래도 공연장 3.15아트센터에 닿으니 아직 관람객을 입장시키지 않을 정도로 이른 시각이었다. 둘은 여름밤 석양이 비치는 옥외 벤치에서 그간 밀린 화제로 환담을 나누었다. 우리 곁에는 김밥을 풀어헤쳐 들면서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새 친구가 대금 연주를 배우면서 알게 된 지인들이 나타났다. 나도 올봄 국어과 평교사로 정년을 맞은 문학회 동인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공연 시각이 임박해 대극장으로 출입구로 가니 중장년 국악 동호인들이 속속 입장했다. 친구와 함께 앉은 지정 좌석은 S석에 해당할 앞줄에서 가까운 정중앙이었다. 성산아트홀도 더러 들렸으나 3.15아트센터도 몇 차례 찾아 공간구조가 익었다.
공연 시작 시그널 종이 울리자 지역방송 여 아나운서가 팜플렛에 실린 공연작품과 순서를 소개했다. 출연진과 관객의 연결고리가 될 추임새에도 인색하지 마시고 성숙된 관람수준을 보여주십사고 당부했다. 기다린 1부 막이 오르니 창작 국악관현악 연주와 함께 판소리를 펼쳤다. 완창하려면 두세 시간 걸릴 수궁가를 이십 분정도로 압축해 국악의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어 조선 후기 궁궐에서 왕과 왕비 앞에 연희되었다는 춘앵무가 펼쳐졌다. 물론 이 대목에서도 전도양양한 국악 작곡가가 곡을 쓴 국악관현악단 연주가 곁들여졌다. 단아하고 우아한 가체에 비녀를 찌른 무용가가 느린 춤사위로 진지한 몸짓을 보여주었다. 나를 비롯한 객석의 관객들은 무용가만큼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잠시 동안이나마 왕이 되고 왕비가 된 예우를 받은 듯했다.
1부 마지막은 앞서 수궁가처럼 국악 창작곡에 옷을 입힌 흥보가였다. 완창하려면 네 시간은 족히 걸린 판소리 대본을 대폭 압축시켜 곡을 붙여 국악 관현악으로 연주를 했다. 창작곡을 연주하기엔 단원들이 여러 날 걸쳐 리허설을 했지 싶었다. 소리꾼은 하루 이틀 전 서울서 내려와 단원들과 호흡을 맞춘 것으로 헤아려졌다. 위촉 창작곡을 초연함에 있어서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잠시 막이 내려왔다가 올라간 2부 심봉사 황천 맹인잔치 가는 대목에서는 뺑덕어미가 주름을 잡았다. 역시 국악관현악단 위촉곡에다 심청가를 음악극으로 재구성한 마당놀이였다. 광대놀음 떼아루 3인은 각각 뺑덕어미와 심봉사와 황봉사 역을 맡아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여름밤 변방 해안도시에서 국악의 정취에 흠뻑 빠져든 앞뒤 관람객들은 낯설어도 왠지 동질의식이 느껴졌다. 16.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