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철씨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민중가요 상당부분을
작곡했던 분이고, 우연히 들었는데.. 원진녹색병원원장
김록호 씨의 동생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열심히
민중가요나 투쟁가를 만들고 계신분이지요.
안치환씨에 대해서는 많이들 아실거구..
이 글을 올리는게 무슨 의미일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올려봅니다.
아랫글은 노동의 소리 http://www.nodong.com/
자유게시판에서 퍼온글입니다.
허락없이 글 옮김에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김호철님이 쓰셨던 안치환 論
사랑했던 후배 안치환에게.
꽃사람지에 나온 안치환의 인터뷰 글을 읽고 그가 한 노동자,민중을 비하하는 대담함(건방짐)에 간단히 피력한다.
그의 말을 일일이 반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선배로서 아니 노동자,민중투쟁의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있는'참예술가'들을 대변해서 한마디 하고자한다
그가 꽃사람 기자와 인터뷰내용을 얻 그제 처음 읽었다.
---- "난 노동자들을 믿지 않아요. 그들은 대단히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있죠. 실제로 노동자들 모임에 초청되어 공연에 서 보면, 그들은 몇몇 강성분자들만이 투쟁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투쟁가를 부르고 또 그러고 나면 분위기는 썰렁해지면서 다시 뽕짝에 춤을 추는 분위기로 돌아가죠. 말로는 투쟁이니 뭐니 하면서 그들이 얘기하는 그 민중가수를 공연에 초청할 때는 돈 안들이고(적게 들이고) 부르려고 하면서 뒤에서 는 돈주고 뽕짝 음반이나 사서 듣는, 그들은 바로 그런 자들이에요. 이중적이고 가식적이죠".-----
그는 단지 자신이 초청된 몇 되지도 않을 공연에서의 주관적 느낌으로 '노동자'를 폄하시키고 있다.'난 노동자를 믿지 않는다' 믿지 마라! 그건'자유'다. 모든이의 생각이 같을 순 없다.
---'집회뒤에 썰렁해지고 뽕짝...'---
묻고 싶다. 노동자 '집회뒤' 까지 남아 있던 적이 과연 안치환은 있는지.
내가 알고 있는 안치환은 초청공연에서 자신의 노래가 끝나면 사라지고 없었던 것 같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노동자들의 문화판을 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뽕짝에 춤을 추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뭐가 그리 꼽게 보였는지도 묻고 싶다. 노동자는 뽕짝에 춤추면 안되는 건지 아니면 뽕짝에 춤추는 노동자가 추하게 보였는지..
한가지 가르쳐 주자면 집회뒤엔 원래 썰렁하다. 그대는 콘서트 뒤에 안그렇던가?
안타깝지만 그는 그를 초청한 그가 믿지않는 '노동자'들이 왜 그곳에 모였고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실제로 나 를 80년대의 운동성과 연관지어 생각을 많이들 하시고 있는데, 그건 사실 내 노래활 동에 있어서는 장애물이에요. 방송에서나 공연에서나 내게 그런 건 장애가 되요." -----
내가 아는 안치환은 80년대 운동성과 전혀 연관이 없다. 김민기가 70년대 그러하듯이...
그가 왜 소위'운동권'이라는 이름으로 상업판?에 알려졌는지는 난모르겠다.
아마..메스컴(그들은 시류를 잘 탄다..그래야 살아남으니)이 만들어낸 작품인 것 같다.
그가 '노찾사'에 잠시 머물었고,'민중공연'에 몇 번 출연했다고 감히? 운동권 민중가수인가? 사실 그는 내가 연출한 공연에도 몇 번 출연했었다.
미안하다. 지금 그의 활동에 장애가 되서..
------"민중가요? 기껏 파업이니 투쟁이니 얘기하는 그런 것들은 이제 초라해요. 민중가요로 자신의 명예, 이름 이런 걸 내걸려면 이젠 집어치우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민중가요가 대중가요보다 정서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그런 자세는 집어 치워야 해요. 지금 보면 제대로 된 민중가요가 없어요. 대중성을 발휘하는 그런 노래가 없어요. 노래하는 사람이,자신을 민중가수라 여기게 되면 '민중가요'는 자기 족쇄가 되고 그 속에서 안주하게 되죠.
난 그런 것에 갇히기 싫었어요. 민중가요 속의 의식, 소명… 하지만 이런 것들에는 비현실적인 면이 많아요. 지금의 나의 노래는 나의 현실이에요. 그리고 사실 자신을 민중가수라고 하는 얘기는 치사한 얘기에요."-----
노동현장,민중현장에 잠시라도 머물렀던 '평상인'이라면 위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없으리라.
아마..그가 그랬었나보다..그가 소위 '민중가요'판에 잠시 머물면서 자신의 명예와 이름을 원했나보다..
하지만 당시 민중,노동운동권은 그를 원치 않았었고 이에 대한 소외감이 그에 맘을 무척 상하게 했나보다.
현 민중가요권에 안치환이 얘기하는 '명예'와'이름'을 위해 존재하는 '예술인'들은 없다.
누가 명예를 얻고 있으며 얻으려고 하는지 밝혀보라!
아니 명예를 얻을 만큼 현 민중,노동운동이 안타깝게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것이 민중가요권의 고민이다. 제대로 알길 바란다.
---- "민중가요속의 의식,소명...비현실..."---
안치환은 기억할 것이다. 민음협 주최의 속리산 근처 M.T때 민음협대표 와의 대화시간에 대표가 화두를 열었었다.'음악은 계획되고 계산된 이데올로기 속에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라고 했었다.
이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 전교조선생님을 비롯한 민중작곡가들이 반론을 제기했었다.
대강을 기억하자면 ...'소위 순수예술과 비교다..이는 민족,민중음악의 탄생과 역할을 부인하는 것이다.'
뭐 대충 이런식으로 결론이 났었고 그때 안치환이 극구 위 내용에 동의 할 수 없다고 해서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다시한번 얘기 할 수 있겠다.
왜 유달리 우리나라 가요들은 사랑타령이 많다고 생각하는가?
왜 우리나라 가수들은 차라리 댄서일까?
왜 우리나라 락(소위 저항이라는)은 저항하지 않는가?
왜 그대가 만든 철의노동자의 '단결투쟁'은 '단결전진'으로 가사가 바꿔 음반화했는가?
왜 그대는 민중운동권의 피어린 투쟁으로 공륜심의가 철폐된 즈음 스스로 '족쇄'를 채워 심의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는가?
우리나라에서 하고싶은 얘기들을 (대중)노래에서 다할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왜 조피디의 '좇'같은 단어는 문제가 되지 않고 ' 더러운 것','해방'이라는 단어는 문제가 됬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복잡하고 헷갈리는가? 답은 간단하다.
저들의 통제 혹은 조장하기 때문이다.
본인도 잘 알겠지만 우린 이런 통제된 나라에서 계획되고 음모된 문화속에 풍덩 빠져 살아왔던 거다.
우리의 민중가요를 '순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기득권계층의 통제과 탄압이다.
민중가요의 저항의식과 소명은 '민중가요'의 생명이고 핵심이며 그대가 말한 민중가요의 족쇄는 차라리 오욕의 나라에 사는 민중예술인에겐 더 할 수 없는 영광이다
민중가요는 그대의 말 같이 '비현실'이 아니라 처절한'현실'인 것이다.
----'나의 노래는 나의 현실이에요...' ----
맞다 그대의 노래는 그대의 '한계적 현실'인 것이다.
또,
'노동자','투쟁' 뭐 이런 단어에 선입관을 버리길 바란다.
그대도 같은 입장에 서보라, 투쟁이란 단어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 민중가요가 대중가요보다 정서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그런 자세는 집어 치워야 해요" 지금 보면 제대로 된 민중가요가 없어요. 대중성을 발휘하는 그런 노래가 없어요."----
맞다,
하지만,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비록 민중가요가 세련되지 못한 시골 아낙네 같은 꼴로 소위'대중'들의 정서를 꼬시지는 못할지언정 그래도 좋다는 '투박한 총각' 많고 일하나는 똑소리난다.
자족하고 잘났다는 게 아니라 폄하하지 말란 말이다. 속대중가요와의 비교는 더더욱 하지마라.
그리고 속 대중가요는 뭐가 그리 정서적으로 잘 났다는건지 묻고싶다.
예를 들어서 말했으면 더 좋겠다. 누가 부른 무슨 노래를 보라..정말 우월하다 ..이렇게 말해보라.
문화는 삶의 반영이다. 자본의 폭압으로 어느순간 문화마저 하향적으로 듣고 즐기는 꼴이 됬고 이제는 많은이들을 속에 눌러 앉아 무의식적 폭력을 자행하고잇다.
대중가요가 아무리 좋다?해도 자본과 힘있는 자들에 의해 상업적(만)으로 제작 유통되고있고, 가진자들의 삶의 철학을 미화하며 듣는이로 하여금 세상사는 시각을 왜곡시키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안다면 소위 '대중가요'와 '민중가요'를 수평 비교, 폄하하는 오류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민중가요가 없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정말 제대로된 '참민중가요'를 만들고 불러야한다.
많은 노동문화생산자들이 후방에서 포탄이 날리는 민중운동,노동운동의 현장을 CNN뉴스로 감상하듯이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 같다. 이는 필연적으로 대중괴리라는 자식을 낳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