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 베네토 지방 리에세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858년 사제품을 받고 20년 가까이 본당 사목자로 활동하다가
만토바의 주교와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를 거쳐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정립하고자 노력하였으며,
특히 광대한 교회법을 현대화하여 새 법전을 편찬하고, 성무일도서도 개정하였다.
또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해치며 교회를 위협하는 오류들에 맞서 싸웠다.
1914년 선종한 그를 1954년 비오 12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을 강조하신다.
세상에서는 일한 만큼 품삯을 주지만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비는 무상의 선물이다(마태 20,1-16)
오늘 복음에 나오는 포도밭 주인은 자비롭고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맨 나중에 나와서 일한 사람은 분명 속을 태우며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입니다.
저녁때가 되어도 자신을 일꾼으로 써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한 시간 일한 사람의 어려움과 마음고생을 깊이 헤아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맨 나중에 온 일꾼에게도 후하게 하루 품삯을 준 것입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어려움과 슬픔을 따뜻한 사랑으로 품어 주는 마음,
이것이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 보면 새벽 인력 시장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인력 시장에는 새벽잠을 설친 사람들이 저마다 하루 벌이를 위해 모여듭니다.
새벽 5시가 넘어서면 현장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이 시간을 맞추어 나오려면 늦어도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일용직 노동자들의 시름과 슬픔을 안평옥 시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모닥불이다
선잠 깬 몇몇이 손 펴
녹이는 추위가 쿨럭쿨럭 기침한다
이글거리는 통나무 불꽃이
금방이라도 짙은 어둠 사를 것 같아도
좀처럼 깨어나지 않는 새벽 그 안에
한 무더기 시름 던진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자신을 데리고 갈 인력 회사의 차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데리고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요즘처럼 불황에는 일자리를 얻지 못해
쓸쓸하게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온몸을 던져 하루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은 인생의 내일을 기대하기 힘든 삶을 이어 갑니다.
저마다 말 못할 사정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슬픔과 어려움을 헤아리는 마음,
이것이 우리 신앙인의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임금이 궁중의 화가에게 물었습니다.
“가장 그리기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개와 말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그리기 쉬운 것은 무엇이냐?”
“귀신입니다.”
뜻밖의 대답에 이유를 묻자, 화가가 답했습니다.
“개와 말은 사람들이 너무 잘 알기에 그리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귀신의 모습은 잘 모르기에 그리기가 쉽습니다.”
개와 말은 흔한 동물이라 볼 기회가 많습니다.
화가가 아무리 잘 그려도 비슷할 뿐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쉽게 시비를 겁니다.
하지만 귀신은 직접 볼 수 없기에
화가가 대충 그려도 사람들은 시비를 걸지 못합니다.
포도밭 일꾼들은 주인에게 불평합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불평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을 약속한 주인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기준으로 보면 많은 것이 못마땅합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객관화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자신을 주관화하면, 언제나 ‘나만 고생하고’ ‘나만 억울한 것’ 같습니다.
살면서 너무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우리의 삶’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마태20,15)
주님의 맘이라네.
의로운 이들에게나
방탕한 이들에게나
하늘나라의 은총은
함박눈처럼
이슬비처럼
공평하게 내린다네.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시샘과 질투로
불평하지 말고
축복받지 못한 자처럼
여겨지더라도
머지않아 우리 앞에 나타날
누구에게나 충만한
하느님 나라를
성실히 기다려야 한다네.
- 김혜선 아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