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는 사랑, 정말이지 이해하지 못 할 사랑
복음서, 특히 루카 복음서 안에는 죄인인 우리 인간들을 향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과 자비가
강물 흐르듯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여러 성경 구절 가운데서 제 개인적으로 가장 강도 높게
그리고 마치 손에 잡힐 듯이 하느님 자비가 느껴지는 복음구절이 있습니다.
루카 복음에 등장하는 돌아온 둘째 아들이 이야기입니다.
탕자의 귀환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특히 죄인인 인간을 얼마나 각별히 사랑하시고 환대하시는지를 잘 알게 합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합니다.
인간이 먼저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느님께서 진노하시고 징벌을 내리십니다.
그제야 인간이 뉘우치고 회개합니다.
이어서 하느님께서 가련히 여기셔서 자비를 베푸십니다.
이것이 하느님과 인간 역사 사이에 되풀이되어온 구원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유에서 잘 드러난 것처럼 탕자가 아버지를 떠올리기도 전에 먼저
아버지가 탕자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둘째 아들은 자발적으로 아버지를 떠올리고 바라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많던 유산 순식간에 탕진하고 마침내 완전 무일푼, 상거지가 되고 났을 때,
그제야 아버지의 집,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그것은 진심어린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살기위해 아버지를 떠올린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집으로 돌아오는 둘째 아들의 발걸음은 무척이도 무거웠을 것입니다.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아버지께서 나를 받아주시지 않으면 어떡할 것인가?
너무 화가 난 아버지께서 버릇 고치신다고 옥에 가두는 것은 아닐까?
합세한 다른 종들에게 몰매를 맞는 것은 아닐까?
당시 상황에서 제가 아버지였으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묵상해봅니다.
완전 상거지가 된 둘째 아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분노에 온 몸이 떨렸을 것입니다.
겨우 분노를 참으며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문밖에 도착했을 때,
나가보지도 않고 소파에 앉아서 그랬을 것입니다.
“들어오라고 해!”
오랜 노숙으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둘째 아들의 행색을 보고 크게 소리를 질렀을 것입니다.
“꼴 좋다! 그러고도 네가 인간이냐? 집 떠나니 그렇게 좋디?”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일 것입니다.
“지금 돈 얼마나 남아있어?”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아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기쁨의 환호성을 터트리십니다.
온 몸이 환희의 전율을 느낍니다.
그냥 집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동구 밖 어귀까지 나가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리십니다.
이윽고 멀리서부터 둘째 아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노구를 이끌고 달려 내려가십니다.
둘째 아들의 입장에서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충격이었습니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용서를 청해야지 마음먹고 있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께서 먼저 용서를 해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이러한 놀라운 자비는 이 땅에 강생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인류에게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그 자비와 사랑의 강도가 얼마나 크고 파격적이었으면
당대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스캔들이었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랑, 이토록 손해 보는 사랑, 어처구니없는 사랑,
정말이지 이해 못할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놀랍도록 자비하신 아버지의 모습을 묵상하며
오늘 우리 삶 안에서 좀 더 자비의 영역을 넓혀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주변을 바라보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 참 많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 용서되고 이해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도 누군가 내게 용서를 청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저 습관처럼 밥먹듯이 먼저 용서를 해놓고 그를 기다려야겠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