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 40,25-31
25 “너희는 나를 누구와 비교하겠느냐?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고 보아라.
누가 저 별들을 창조하였느냐?
그 군대를 수대로 다 불러내시고 그들 모두의 이름을 부르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능력이 크시고 권능이 막강하시어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27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
28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
29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30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31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우리가 은총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를 지고 갑니디>
오늘 복음은 이렇게 참으로 복된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 11,28)
'안식'을 주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이는 듣기만 하여도 벅찬 감격입니다.
여기서 '안식'이란 단순한 쉼이 아니라 ‘구원’과 동의어입니다(히브 3,11.18; 4,1.3.5.10-11; 묵시 14,13 참조).
“안식을 주겠다.”는 이 벅찬 초대는 ‘안식’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얻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줍니다.
곧 ‘안식’(구원)은 그것을 가지신 분으로부터 받게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을 가지고 계신 분만이 주실 수 있으니, 주시는 분에 의해 얻어지는 것임과 동시에, 바로 당신이 구원자라는 선언이요, '안식'(구원)은 당신이 선사하는 선물이요, 사랑이요, 자비요, 호의임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누구에게 주시는가?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주시기 위해 먼저 초대하십니다.
“나에게 오너라.” 라는 문구는 현인들이 자신의 학교에 와서 지혜를 배우라고 부를 때 사용하는 전형 구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때 부르는 대상은 주로 ‘배우지 못한 자들’(집회 51,23)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이들 모두'를 부르십니다.
이들은 우선 23장의 '무겁고 힘겨운 짐'(23,4)에서 알 수 있듯이, 613개의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는 이유는 단순히 지혜를 전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안식'(구원)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을 “주겠다”라고만 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길도 가르쳐 주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마태 11,29)
그것은 바로 당신의 '당신의 멍에를 메고' 당신에게서 배우는 것입니다.
'멍에를 멘다'는 말은 당시의 유대인 사회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를 말해줍니다.
당시의 팔레스타인의 ‘멍에’는 혼자 메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짝을 이루어 두 노역자가 함께 메게 되어 있듯이, ‘예수님의 멍에’는 예수님과 함께 메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저희와 하나가 되어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함께 메는 ‘멍에’이기에 ‘그 멍에는 편하고, 그 짐은 가볍습니다.’(마태 11,30)
사실 ‘멍에’는 ‘순종’을 나타내는 비유입니다(사도 15,10; 갈라 5,1).
그러니 예수님께 순종하며 가르침을 받으라는 초대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순종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순종으로 무엇을 배우라는 말씀인가?
바로 ‘예수님, 당신의 마음’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 앞에 항상 지니셨던 그 마음인,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라 하십니다.
그러면 '안식'을 지니고 계신 그분으로부터 ‘안식’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진 ‘짐’은 우리를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도와주고 북돋아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은총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를 지고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은총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를 돕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지고 가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단지 가르치시고, 모범을 보여주시는 스승만인 것이 아니라, 함께 걸으시고 동행하시면서, 몸소 우리를 지고 인도하는 참된 스승이십니다.
단지 그 '길'을 제시하는 스승이 아니라, '길'을 함께 가실 뿐만 아니라 '길 자체'이신 참 스승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제자 됨'이란, 단순히 예수님을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하나 되어 걸으며,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마음, 곧 '양순하고 겸손하신 마음'(마태 11,29)을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는 이미 사도 바오로의 고백처럼,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그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필립 2,5)
바로 그 마음 안에서 '배움의 순례길'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그 ‘참된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 11,29)
주님!
당신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위에 있지만 짓누르지 않는, 묶지만 옭아 메지 않는, 오히려 편하게 하는 사랑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함께 지며 나누는, 함께 가며 끌어주는, 그 손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동행해 주고 길이 되어 주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 마음을 따라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첫댓글 주님!
당신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 님 늘 고맙습니다 🙏
아멘.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Amen.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 멘 !
감사합니다 ^^
오늘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