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總體的) 난국(難局)입니다. 사사기 17정과 18장은 사사시대의 신앙이 얼마나 해이(解弛)해지고, 얼마나 왜곡되고 변질되었는지를 보여준다면, 오늘 본문 이후에는 이스라엘이 윤리적 해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앙이 해이해지면, 윤리적으로도 해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도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1절). 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공동체를 이끌 지도자가 부재(不在)하니 공동체의 모든 부분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 사람이 베들레헴의 한 여인을 첩으로 맞이했다는 말로 본문을 시작합니다(1절). 하나님 앞에서 구별되어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레위 사람이 첩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넉 달이나 지냅니다(2절). 그러자 이 레위 남자는 첩의 집으로 찾아가서 자기의 첩을 달래서 데려오려고 베들레헴에 있는 첩의 아버지 집으로 향합니다(3절). 그러자 첩의 아버지는 자기 딸의 남편이 찾아온 것을 기뻐하며 곧바로 돌아가지 말고 더 머물라고 말하면서 자기 사위를 극진히 대접하면서 삼 일을 보냅니다(4절). 넷째 날에 레위 남자가 떠나려고 하자 더 머물다 가라고 하였고, 결국 하룻밤을 더 머물게 됩니다(5절~7절). 레위 남자가 다섯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려고 하자, 장인은 다시 한번 사위를 붙잡았고, 오후 늦게까지 음식을 먹으며 머물렀습니다(8절). 아마 자기 딸과 사위가 서로 화목하게 잘 지내길 원하는 마음이었을 것이고, 딸이 하루라도 더 머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섯째 날 저녁이 가까워져 오자 레위 남자는 더 이상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첩과 하인을 데리고 떠나려고 합니다(9절). 장인은 다시 하루만 더 머물다 가라고 부탁했지만, 레위 남자는 일어나 집으로 떠납니다(10절). 아마 하루를 더 머물면 안식일 때문에 집까지 갈 수 없다고 판단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레위인이었기에 안식일 이전에 집으로 가야 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귀를 타고 베들레헴을 떠나서 여부스(Jebus), 즉 예루살렘(Jerusalem) 맞은편이 이르게 됩니다(10절). 베들레헴에서 여부스, 즉 예루살렘까지는 약 8~10km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레위 사람이 왜 저녁이 되어가는 오후 늦게 집을 향해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이야기한 대로 레위인의 책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꼭 그렇게까지는 아니었어도 집으로 가는 도중에 안식일이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장인의 간청이 간절했어도 더 일찍 집을 향해 나서야 했습니다. 아무리 장인이 붙잡더라도 아침 일찍 떠나려고 했었던 마음 그대로 행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유부단(優柔不斷)하게 붙잡혀 있다가 저녁이 되어갈 무렵에야 길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 밤길을 여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위험이 있을 수도 있음에도 뒤늦게 집을 나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사사시대의 영적 질서가 매우 어지럽혀졌다는 것입니다. 레위 사람이 첩을 두었고, 그 첩은 행음하였고, 그 첩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 첩의 아버지 집으로 찾아갔으며, 첩의 아버지는 레위 사람인 사위를 무분별하게 자꾸 자기 집에 머무르도록 하여 먹고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해질 무렵에서야 길을 떠나는 모습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레위인으로서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모습이 아니라 매우 안일하고 나태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일상에서도 하나님 앞에 신실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직 나오지 않지만,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더욱 비극적인 갈등과 혼란을 겪는 일로 번지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 앞에서 하루를 신실하게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