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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동영상 강의 -
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20] 믿음을 실천하며 산다 | 본질은 없이 있고, 현상은 있이 없다
Buddhastudy 2024. 7. 17. 19:09
좋은 시절이에요.
본질을 깨닫는 게 어렵지 않아.
자, 한 말씀만 확인하고 넘어갑시다.
지금 몸이 있어요?
몸이 있다고 아는 것이
몸 자체가 몸이 있는 줄 알아요?
아니면 몸이 있다는 걸 아는 것은 정신이에요?
몸이 있죠?
몸이 있는 걸 아는 거는 몸 자체가 아니죠.
죽비가 제가 있다는 거 알까요?
죽비는 정신이 없으니까, 제가 있다는 걸 모를 거 아니에요.
몸뚱아리, 육신도 마찬가지예요.
색신도, 색신 자체가 자기가 있다고 아는 것은 아니에요.
그럼 지금 이 순간에 눈에는 안 보이지만
몸이 이렇게 있는 거를
지금 안다고 하나 느낀다고 하나
이거 알아채는 거는 어렵지 않다니까.
그냥 깨어 있는 것
그냥 이 순간에 멀쩡하게 깨어 있어서
지금 보고 듣고 멀쩡하게 다 하고 있는 이것
이렇게 이것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시대를 맞이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깨달음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근데 문제는 돌아서면 까먹는다.
그러니까 이것이 귀한 줄을 모른다는 게 핵심이에요.
그래서 옛날에는 이게 귀하다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서
이걸 가르쳐주기 전에 3년간 물 떠 오게 한 거예요.
나무 해와라, 실제로 나무 해와라, 3년간.
그리고 나무 해오는 도중에
그래도 매일 묻을 거 아니에요. 묻기는 매일 물어요.
내일 말해줄 게 그런다고.
내일 되면 또 내일 말해줄게.
그래서 3년간을 보고를 채우는 거예요.
왜냐?
그렇게 꽉 분심이 분심이 차올라서
그거다 하고 했을 때 알아차렸을 때는 안 잊어버리는데
뼛속까지 이것이 새겨지는데
너무 쉽게 이걸 알아채면
이걸 귀한 줄 모르고
옛날 습관처럼 또 이 현상계에
현상계 좋은 거 많잖아요, 솔직히.
우리로 하여금, 미혹시키는 유혹하는 게 현상계에 많잖아요.
그러니까 이 법이 귀한 줄 알아야
그런 유혹으로부터 탁 박차고 나오는데
그냥 흐지부지하게
“이거 별거 아니네” 하면
그 현상계의 유혹을 이기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법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이걸 귀한 걸 아는 사람한테만 전하라는 말을
옛날부터 그런 말을 했어요.
그런 면도 우리가 같이 알아야 되는데
어쨌든 간에
/응무소주 이생기심은 중도를 가리킨다.
망념은 사라지고 의식은 깨어 있다./
본질을 아까 제가 자각이라고 표현도 했죠.
자각이 본질이 드러나면
다시 말하면 자각이 분명하면
또 다른 말로 하면 화두가 분명하면
화두가, 지금 이 본질이, 자각이, 이 의식이 스스로 분명하면
망념은 사라지고 의식은 깨어 있다.
/응무소주 할 때 응무소주, 마땅히 집착하는 바가 없다, 이 말은
생각이, 집착이 사라진 공성이고
그리고 다시 마음을 일으켜도 그때는 문제가 없다
하는... 일어나는 것은 각성이다./
공성과 각성, 이게 본질의 원리에요.
공성은, 우리의 본질은, 순수의식은
순수의식에는 생각이 없다.
그게 공성이고.
생각이 없지만 이렇게 있다.
이걸, 지금 말하기가
옛날 분들도 다 말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
현상의 입장에서는 없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이거 하나만이 있는 거고
현상은 생겼다 사라지는 이미지 세계일 뿐이다.
그래서 현상의 세계는 있는 것 같은데 없어서, 있이 없고
이 본질의 세계에는 없는 것 같은데 있어서, 없이 있다.
현상에서는 없는데
본질이 그 모든 걸 바탕으로 텅 빈 채로 받쳐주기 때문에
없이 있다.
현상은 있는 것 같은데 있이 없다.
이런 식으로 표현했어.
다석 류영모가 이렇게 표현했어.
다석 류영모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그 본질을 신이라고 불렀어요.
신은 없이 있고, 인간은 있이 없다.
이런 식으로 표현을 했어.
본질과 현상을 그렇게 표현을 한 거예요.
그런데 그런 표현을 우리가
무슨 말인가 알아듣잖아요.
여기에 지금 없이 있다가 중도다 이 말이에요.
없이, 현상은 텅 비었고
있다는 건 본질로서 완전히 그게 진짜다.
공성인데 각성이 있다.
텅 비었는데, 없는 게 아니라
이렇게 깨어 있는 이것으로 꽉 차 있다.
실제로 그렇지 않나요?
온 우주 공간이 나의 의식으로 꽉 차 있지 않나요?
실제로 우주 공간이 나의 의식으로 내 의식 안에 있다 이거죠.
내 우주 공간이 내 의식 안에 있다.
이게 중도다 이거예요.
그래서 응무소주는 공성이고 이생기심은 각성이다.
그리고 없는 것을 공적이라고 하고
있는 것을 신령스러운 앎이 있다 해서 영지라고 한다
이런 말을 썼어요, 옛날 조사들이.
이런 말을 쓴 사람들은 주로 법안종이라고 해서
오과칠종 중에서
어떻게든 언어로 표현해 보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오가칠종 중에서 법안종 같은 곳에선
어떻게 해서든 지금 이 중도의 도리를 표현을 하려고 해서 만들어 찾아낸 게
가장 언어로서 가까운 것이
공적영지, 이런 말을 찾아냈어요.
근데 무슨 말인가 다 알겠죠.?
근데 집착하면 안 돼요.
어디까지나 이 말은 손가락이다.
직접 달을 봐야지 손가락에 얽매이면 안 된다.
이 말을 전제하고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에 다른 표현으로는
적적이고 성성이다.
적적이란 말은 생각은 고요한데
생각이 고요하면 고할수록
우리들의 본성인 의식은 더욱더 뚜렷하게 성성이다.
마음에 별이 반짝인다 이 말이에요.
마음 심, 신방 변에 별 성
마음에 별이 반짝반짝 하는 것처럼 맑다, 빛난다.
진공이고 묘유다
쌍차이고 상주다
노상하는 말인데 한번 복습하는 중이에요.
쌍차는 양쪽으로 막는다.
아까 여러분께 결국 우리 공부의 핵심은
잘못된 사고방식
내가 이 순간 잘못된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거를
스스로 알아채는 거예요.
이게 핵심이에요.
잘못된 사고방식으로 내가 살고 있구나.
이 세계를 내가 잘못된 사고방식으로 보고 있구나
내용이 뭐냐?
이분법이에요, 이분법.
그러면 잘못된 사고방식을 바로잡은 사고방식
이거를 불이.
이분법이 아니라 혹은 요즘 서부에서는 비이원이라는 말을 많이 써요.
NonDuality, 비이원
불교적인 방식은 不二.
비이원
이원이 아니다.
그러면 바로잡은 사고방식이 맞는가? 잘못된 사고방식이 맞는가? 에서
여러분은 지금 선택하라 그러면
잘못된 것이 1번, 바로 잡은 것이 2번이라 그러면
선택하라 그러면 몇 번 선택할까요?
지금 선택하라 그러면 2번 하겠죠.
실제로는 1번을 한다, 이거예요.
창조주하고 피조물이 따로따로 있으면
그 신이 절대냐, 이거예요.
이법이 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남 이야기 들을 거 없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잖아요.
누가 생각해도 기독교인이나 불교도도 마찬가지고
진리는 절대 불이익, 비이원성이 진리다.
이 말을 우리가 믿는다면
내가 피조물이다 할 때,
깨놓고 이야기합시다.
지금 나하고 지금 나가 있죠.
이거 부인할 수는 없잖아요.
지금 나가 있잖아요.
근데 지금 있는 이거 하고, 따로 신이나 부처가 따로 있다 하고
이러면 절대가 되느냐고.
그럼 간단하게 원리가
내가 신이고, 내가 절대자이어야 만이
절대가 성립한다 이거예요.
이때 이걸 절대의 나를 감당하는 게 우리의 실력이야.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 실력이 없으면
이 말이 감당이 안 돼.
절대라는 말은 하!나라는 말인데
상대 상대가 없으니까 하!나라는 말인데
우리 말의 하나라 말에서 ‘하’는 감탄사라는 얘기
알고 보면 나야 ‘나’
이때 나는, 물론 에고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벌써 조금 전에 첫 시간에 깼잖아요.
피지컬 바디만 나가 아니고
실제 나는, 감정의 나는 이모션을
색수상행식 하나하나가 바디면
그 바디들은 이것보다 훨씬 크잖아요.
그러면 요 피지컬 바디만 나라고 하는 것이
거기서 벌써 깨지잖아요. 사실은.
그것만 해도 깨지지 않아요.
근데 그렇게 현상으로 나온 것만 해도 나가 아니고
그 모든 현상이 존재하게끔 만들어주고 있는
뭐가 있으려면
바탕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어요.
그 바탕 자체도 나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런 얘기를 드리는 이유는 그거예요.
자기가 공부를 하면서 자기를 잘 봐야 돼요.
자기를 잘 봐야 돼.
자기를 잘 보면
이런 걸 배우면 우리가 믿을 수는 있잖아요.
이분법을 믿느냐? 불이법을 믿느냐?
이 선택은 우리가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선택을 그냥은 못하고
머리로 납득이 되어야 선택을 하지.
그럼 머리로 납득하면
“정말로 이 세계가, 진실된 세계는 이게 불이법의 세계구나” 하고 믿어진다 이거예요.
그때까지는 공부를 해야지.
그래서 이런 이제 선 리
이치 공부도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치 공부를 통해서 어떤 확신이 생기면
믿음으로 들어간다.
그 믿음의 내용은 절대예요.
하!나예요.
이게 지금 믿음의 내용이에요.
그러면 자기 공부를 돌아보면
내가 무언가를 구하고 있는 것이 안에서 보여요, 자기를 돌아보면.
밖으로는 점잖게 말 안 하고 있지만
안에는 뭔가를 구하고 있어.
그러면 뭔가를 구하면
나 따로, 구하는 거 따로
벌써 거기서 갈라져 버리는 거예요.
지금 그 믿음을 배신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믿음 가지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믿음을 가지려면 먼저 내가 납득을 해야 돼요.
그럼 진리가 뭐냐?
진짜 불이, 비이원성, 논듀얼리티,
이게 진리다 하!나, 일심
원효는 이걸 일심이라고 표현했어.
그러니까 하나다.
그러면 내가 지금 진리를 공부하는 입장이라면
무언가를 구하는 순간
이분법으로 빠져들어 버린다는 거죠.
그러니까 정말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이게 화두다 이거예요.
화두가 뭔가?
이 믿음을 실천하는 게 화두예요.
그러면 화두라고 하는 것은
의식이 의식을 의식하는 그 자각이다.
할 수 있는 일은 자각밖에 할 게 없어.
진정한 마음공부는 자각밖에 할 게 없어.
나머지는 하는 순간 이분법이 돼버리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근데 화두를 들어야 돼.
왜냐?
이분법의 습관이 너무나 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까딱하면 다시 이분법의 세계로 또 그냥 빨려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 하나가 끊임없이 돌아오고, 돌아오고
부처님 말씀대로 자기한테 귀하라.
자기를 등불로 삼아서 귀의하라.
자기를 성으로 삼아서 귀의하라.
이 말을 실천밖에 할 게 없어.
근데 이거를 말귀는 단박에 알아듣지만
습관은 단박에 확립되지가 않아서
계속 공부하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일로를 걷는다.
매일매일 1일 1보
이런 말 참 많이 썼네.
하루에 한 걸음
마음공부는 하루에 한 걸음
이 자리가 그 자리죠.
‘하루에 한 걸음 나간다’, 이 말은
집 나가는 습관을 고친다. 이 말이에요.
이 하루아침에 안 고쳐져.
왜냐하면 우리들은 지금 번갯불보다 더 빨리
이분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예요.
한 생각 떠오르는 게 그거예요.
그러니까 이미 우리는
현행이 이분법의 종자를 심어서
그 종자가 다시 종자를 만들어서
수없이 강력한 종자로
지금 인포메이션 체계로 이미 그 속에 살고 있어.
그래서 이것이 만든 세계가 매트릭스라고 부르는 거예요.
사람들마다 이미 매트릭스에 살고 있어.
그래서 한 번 이렇게 잠시 깨어나더라도
돌아서면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
그리고 솔직히 그런 것도 있어요.
이분법의 세계가 재밌어, 재밌어요.
빠져나오기 어려워요. 재밌어.
안 그런가요?
진짜 재미는 불이법인데
여기는 아무 일이 없어, 무사태평이에요, 여기는.
잠시 이 세계를 알아도
벼락같이 지지고 볶는 세계가 그리워져서
들어가서 하다못해 드라마라도 켜.
우리는 중독되어 있어요.
드라마나 영화가 판을 치는 이유는
우리의 중독을 끊임없이 부추기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중독을 충족시키는 데 돈을 지불 할 준비가 돼 있어.
그렇잖아요.
상황이 그렇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인사동선원 같은 좀 해방구의 힘은 약해요.
주변에 한 걸음만 나가면
지금 전부 다 그런 이분법의 세계가 펼쳐지니까, 끊임없이...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공부를 좀 영리하게 해야 돼요. 영리하게.
공부를 영리하게 하는데
영리하게 하는 방법은
이 불이법이라고 하는 이 원리
이걸 한번 정말로 심사숙고하게 한번 검토해 보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 있는 여기서
내가 움직이는 순간
둘로 나누어져 버려요.
제가 참선을 시작한 원인은
존재 불만족이거든요.
존재 불만족이었어.
근데 그 존재 불만족이 이 공부를 하게 해줬는데
알고 봤더니
존재 불만족에 시달리던 그 당시도
지금이랑 똑같아
몰랐을 뿐이야.
이거 하나더라고요.
몰랐을 뿐이야.
근데 다행히 이 공부를 만나서, 불이법을 만나서, 불이법을 알고 나니까
이 현실밖에 없다.
이대로다, 이대로다.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줄여서 이대로다.
그럼 ‘이대로’의 내용은
이 본질하고 나타난 이미지의 세계, 현상의 세계
이것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내 눈이 이제는 둘을 같이 봐.
약견제상 비상, 둘을 같이 봐
그러면 중도예요.
즉견여래.
그러면 본질의 입장에서 현상을 살아요.
꿈을 깬 입장에서 꿈속에서 살아.
그러면 꿈속의 세계를 마음껏 즐기지만, 집착은 안 하네.
알고 보면 좋다 나쁘다 없어요.
쉬는 시간에 질문했거든.
“이 마음 쓰는 것이 하나인데
이 마음이 좋은 마음이 있고 나쁜 마음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질문을 했거든요.
중도에서 보면
좋은마음, 나쁜마음이 없어요.
그때그때 상황 현실밖에 없어
어떤 현실인가?
눈앞에 있는 현실밖에 없어요.
저도 한동안 생각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생각을 없앨까? 하고 많이 고민했었거든요.
이치는 다 알겠는데 생각은 안 끊어져.
그리고 한 번씩 밤에 깨면
그 생각이 너무나 범람하니까 좀 힘들죠.
한밤중에 깨면
나이가 드니까 한밤중에 깨고
생각이 너무 많으면 힘들죠.
그러면 이치는 다 아는데
그 생각이 끊어지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
정말로 선정을 닦아야 되나? 하는 유혹을 수없이 겪는 거예요.
근데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가?
정말로 이대로면
‘이대로’라는 말은
눈앞에 지금 이 순간 만 리얼리티고
나머지는 리얼리티가 아니라는 소리잖아요.
그럼 ‘이대로’가 정말로 마음에 와닿는 순간
‘이대로’를 사는 데는 생각이 필요 없더라고
그렇지 않나요?
보세요.
이대로를 사는데 저절로 알아서 다 되는 거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럼 이대로 사는 사람한테는
저절로 생각이 필요가 없어져 버려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이 많이 나는 이유는
내가 계속 이대로를 놓치고
과거 미래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과거 가지고 조몰락거리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참회하고
이런 거 하느라고 바쁘고
미래를 또 조몰락거리려고
그런데 전부 환이거든요.
결국에는, 하여튼 핵심은
본질에서 보면 이대로예요.
그러니까 본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야.
이대로 밖에 없어.
그러면 이대로를 지금 눈앞에 있는 이 현실을 내가 대할 때는
생각할 필요가, 저절로 생각할 필요가 없어져요.
그리고 간간이 생각나도 괜찮아 그때는.
생각해도 재밌다니까.
약간의 지지고 볶아야지.
그러니까 매일 맑은 하늘만 나오면 재미없어요.
노을이 아름다우려면 구름도 좀
소나기 딱 그친 뒤에 노을 그런 본 일이 있나요?
빛이 얼마나 아름답게 뛰어노는지, 그 구름 사이로.
기가 막히거든요.
인생이 깨끗하게만 있어도 재미없다.
집착하지 않고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계속 한 번뿐인 이 삶을 이렇게 살아가는 거죠.
돌아오면 불이법
불이법에 의하면 수행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수행 안 하는 게 수행이야.
이 말 따라옵니까?
수행하는 순간, 이법으로
아니 내가 지금 이대로인데
이대로를 만족 못하고
또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게 수행이잖아요.
그러면 이대로에 어긋나잖아요.
불이법에 어긋나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자각이 딱 생기면
믿음으로 들어가.
불이법을 믿어.
그다음부터는 여기에 어긋나는 이야기를
사람 만나서 토론하든 뭐가 있으면
스스로 어긋나는 걸 느껴
“내가 믿음을 배신하는구나” 하는 걸 스스로 느껴요.
얼른 얼른 돌이키는 거예요.
그럼 아무 일이 없어, 돌이키면.
그래서 수행도 희한하게도
수행하지 않아야 불이법이에요.
근데 이게 내 마음대로 안 돼.
이 경계가 나를 얼마나 유혹하는지.
그러면 이 경계에 딸려 가지 않는
수행하지 않는 것을 수행해야 돼.
이 말도 들어옵니까?
수행하지 않는 것을 죽기 살기로 수행해야 돼.
이렇게 수행도 바로 잡혀가는 거예요.
수행도 그 방향이 바로 중요하니까.
그러니까 불이법에 대한 확실히 이해를 하고
확실히 이해한 걸 바탕으로 믿음을 가지고
그리고 그 믿음이 가져지면
그 믿음의 실천.
그러면 매 순간순간 믿음에 따르는 삶을 사느냐?
아니면 배신의 삶을 사느냐? 하면
자기가 딱 느껴지잖아요.
그러면 바로 잡고 바로 잡고
그때마다 바로 잡고.
수행하지 않는 것을 철저하게 수행한다.
그러면 수행하지 않는 것은
현상에 따라가지 않는 거죠.
그러면 의식이 의식을 의식하는 이 화두
이거 하나를 철두철미하게 놓치지 않는 것.
이거 진짜 실천하는 것.
그럼 화두라는 건 뭐예요?
항상 본질인 의식이 깨어서
자기가 본질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모든 것이 내 안에 있는
‘하!나구나’ 그 상태로 화두다 이거예요.
야 정말 신기하다.
모든 게 나구나.
그러니까 내 안의 일이구나.
이 모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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