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천년 설 곧 세상의 마지막에 천년왕국이 도래할 것이라는 주장은 과연 성경적일까? 18세기에 생겨나서 제법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졌던 복천년 설은 계시록에 여러 번 언급된 천년에 대한 기록 때문에 생겨났다. 이 복천년의 시기에 대한 주장에 따라서 전천년설과 후천년설로 구분하는데 천년 전 재림설을 전천년설로 천년후 재림설을 후천년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18세기에 힘을 얻었던 주장은 후천년설로 이 세상이 끝나기 전에 복천년이 온다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이 힘을 얻었던 것은 18세기 중반에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세상이 점점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후천년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이 세상이 끝날 무렵 복음 전파를 통해 전 세계가 회개하고 복음화될 것을 기대한다. 복음이 점진적으로 전 세계에 퍼지게 되면 풍부한 영적 축복의 시대가 도래하고 이것이 바로 천년왕국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왕국을 꿈꾸면서 이미 그리스도가 1914년에 영으로 재림해서 지상 왕국을 다스리고 있다고 믿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일종의 후천년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년후 재림설인 후천년설은 성경과 조화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도 거리가 멀다. 사도 바울은 세상이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딤후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딤후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딤후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마지막 때는 복천년이 아니라 고통 하는 때이며 여전히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순간까지 악인들이 득세할 것이다. 알곡과 가라지는 추수 때까지 함께 있을 것이며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믿는 자들에게 가해질 박해는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히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으며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고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이 세상은 물질문명의 발전에도 점점 더 위험해지고 기후 및 다양한 방면에서 말세의 징조를 보여주고 있다. 도덕성은 점점 마비되고 곳곳에 총기 난사와 묻지마 폭행 같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공권력으로도 제어가 힘들어지고 자신들의 욕구를 위하여 집단적인 스트라이크들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은 점점 혼란과 혼돈의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런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며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마 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마 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불안하고 위험한 세상에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희망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곧 재림이다. 그 주님이 올 때까지 우리에게는 신앙의 인내 곧 믿음의 인내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인내를 이어갈 준비가 되었는가?
(히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히 10: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히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유지할 신앙의 인내 믿음의 인내를 주십시오.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그 약속을 믿고 어떤 시련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충성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하심 감사드리며 오늘도 주와 함께 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