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비껴가지 않았다. 트레이드마크를 생략한 그를 오늘도 볼 수가 없다. 정장이거나 캐주얼한 복장이거나, 그는 늘 모자를 착용한다. 종류는 더러 같을지 몰라도 색깔이나 디자인은 조금씩 다르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모자는 '쓰개'다. 머릿수건으로, 세수수건으로 사용한 그것은 부엌으로, 장마당으로, 들녘으로 분주히 다녔다. 어머니는 그것으로 옷에 묻은 저녁 어스름을 툭툭 털며 들어오셨다. 쓰개는 철저히 실용에 바탕을 둔 모자였다.
모자는 신분이다. 링컨의 실크햇이 챙보다 높이에 중점을 두었다면, 조선 선비들의 갓은 높이는 물론 챙의 넓이까지 고려했다. 높이나 넓이에 따라 신분은 달라졌다. 양반들은 맞춤한 갓끈에 장식까지 달았으니 멋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갓, 망건, 탕건, 패랭이, 삿갓, 익선관 등 종류도 많은 모자, 오죽하면 조선을 '모자의 나라'라고 했을까. 평상시에는 신분에 따라 엄격히 구별됐으나 예외는 있었다. 서민에게도 사모의 착용이 허용된 것은 경건한 축하 의식인 혼례 때였다. 경직된 신분사회 속의 작은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모자는 획일화된 군중심리다. 특정 단체를 표시하기 위해 같은 모자를 쓰고 나오지 않는가.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라는 표시, 어떤 개별 행동도 용납 않겠다거나 하지 않겠다는 의중을 드러낸다. 군인 신분이었던 나는 계급에 복종해야 하는 모자의 하수인이었다. 갈매기와 다이아몬드에 온통 지배당하는 작대기. 그러나 아들의 첫 휴가 때의 이등병 계급장은 그 무엇보다 멋졌다는 지인의 말은 내게 자부심을 챙겨주었다. 군모에 개정을 드러내 자기만의 이미지를 만든 이도 있다. 맥아더 장군의 각이 없는 헐렁한 금테 모자와 패튼 장군의 빛나는 은색 철모, 몽고메리 장군의 찌그러진 블랙 베레모가 그렇다. 모자는 그들의 신분과 지위에 걸맞은 카리스마를 연출했다.
모자는 위장이다. 투병 중이어서 머리가 듬성한 경우, 민머리이거나 헤어스타일이 엉망인 경우에 유용하다.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입술에 립스틱만 발라도 부스스한 행색을 위장할 수 있다. 그런 이들에게 실내에서는 모자를 벗어야 한다고 눈치를 줄 수는 없다.
비니 모자를 써야 했던 때가 있었다. 숱이 줄어든 엉성한 머리를 숨겨주면서 방한을 겸한 패션으로 적당했다. 눈 내리는 공원, '러브스토리'에서 빨간 털 모자를 쓴 제니와 두툼한 코트 깃을 세운 올리버가 눈싸움을 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애써 병색病色을 숨겼다. 여러 달 동안 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는 예의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서는 모자를 벗는다. 어느 모임에서 버젓이 모자를 쓰고 있다면, 그는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이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다. 하지만 여자들의 모자는 예외로 두기도 한다.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댄 채 공손히 머리를 숙일 때, 그는 단번에 신사로 인정된다. 그러나 갓은 달랐다. 의관을 갖춤은 갓끈을 동여매야 완성되는 것, 결코 아무 데서나 함부로 벗어놓을 수 없는 모자였다.
모자는 패션이다. 옷이나 헤어스타일에 어울리는 액세서리 같은 것이다. 어떤 모자를 쓰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티셔츠와 진바지, 그리고 운동화에는 야구모자가 제격이다. 마니아들은 정장에도 모자를 쓰곤 한다. 매력적인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 멋쟁이라고 소문난 스타들이 모자를 즐겨 쓰는 이유다. 모자의 스타일도 많이 변했다. 과거, 그것이 신분과 권위의 상징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기능과 패션으로 기울었다. 삶의 질이나 속도와 무관하지 않다. 권위주의가 몰락하면서 모자의 권위도 상실된 듯, 실크햍과 갓이 사라졌으니 그 앞에서 굽실거릴 일도 없어졌다.
일제강점기 순사들이 쓴 모자는 두려움이었다. 도리우찌는 '새 잡이 사냥꾼'의 모자에서 비롯된 헌팅캡을 일본식으로 해석해서 부른 이름이다. 그러나 당꼬 바지에 홈스팡 자켓에 어울린 그것은 한편, '똘마니'를 연상케 한다. 누군가의 앞잡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부자연스러움이다. 편한 신발과 점퍼 차림에 어김없이 도리우찌를 쓴 실버들을 보며, 정형화된 그들의 패션을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충동마저 일으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자는 신체 부위 중 가장 높은 곳에 얹힌다. 그 모양 그대로 벗어 모신다. 모자가 뒤집힌 때는 드물다. 모자는 주로 걸인의 구걸에 쓰이니, 함부로 다를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영원히 지속해 쓸 수 있는 모자는 없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자만의 모자를 쓰고 벗기를 반복한다. 자존과 비열, 도전과 회피, 기쁨과 노여움 같은 의식의 모자가 그렇다. 위엄이 벗겨진 모자는 황당함이다. 예기치 않게 훌렁 벗겨져 나갈 때의 당황스러움이라니. 황급히 주워 얹어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은 이미 발각되고 만 상태다. 바람만 불어도 두 손이 챙으로 옮겨가지 않는가.
궁금한 모자 속, 그런 나의 속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타난 그, 블랙 계통의 양복에 회색 목 티셔츠를 받쳐 입고 검은 베레모를 쓴 심플한 스타일은, 마치 맥아더의 고상한 품격 위에 몽고메리의 거만한 자존심을 올려놓은 듯하다. 외출할 때면, 옷에 어울리는 모자를 선택하는 일은 만만찮아서 거울 앞에서 이것저것 골라 쓰고 벗기를 여러 차례 한다는 그는 진정한 패셔니스타다. 자신만의 멋을 연출하는 의상이지 액세서리인 모자는 외출의 마침표다.
사람이 모자를 만들지만 모자가 신분을 만들고, 품위를 만들고,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가. '모자가 인간을 만든다'는 화가 막스 에른스트의 그림은 그래서 타당성을 얻는다.
(최장순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