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 투표권행사에 즈음하여
전 대 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국내경제사정이 좋아지고 국력이 신장할수록 재외국민의 숫자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먹고 살기 위하여 제한된 일부 노동자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우리나라의 슬픈 이민의 역사는 당시의 처참했던 노예이민의 애환까지 모두 보듬어 안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좀더 앞서기 위한 외국행이 되고 있다.
해외 유학생만 보도라도 다른 나라들이 넘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숫자가 외국의 선진문명을 배우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경주한다. 그들 해외두뇌들이 배움을 마치고도 조국에 돌아오지 않고 외국에 뿌리를 내린다 해도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들의 조국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재외국민 상당수는 경제적으로 그 나라에서 하이 클라스에 속한다. 우선 부지런하고 머리 회전이 빨라 다른 나라 사람보다도 적응을 잘 한다. 정치적으로 성공하여 미국의 국회의원으로 당선하기도 하고 지방 자치단체에서 시장 등에 진출하는 이들도 여럿이다. 학계에 진출한 사람 중에는 석학으로 추앙받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대다수는 개인사업에 치중하며 경제적 활동을 한다. 그들이 외국에 나가게 된 동기는 각자 다르겠지만 국내에서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진취적인 뜻이 많아서다. 처음에는 자리를 잡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만 이제는 모두 기반이 잡혔다. 멀리 떠나온 조국의 움직임에도 관심을 쏟을 때가 되었다.
더구나 오랜 세월 계속되었던 군사정권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는 조국의 흐름은 시시각각으로 뇌리를 때린다. 발가벗고 물장구치던 친구가 어느 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국회의원에 당선했단다. 김영삼이 대권을 잡고 뒤를 이어 김대중이 등장하며 노무현까지 대통령으로 뽑힌다. 과거 같으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변화의 바람이 분다.
비록 만리타향에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조국의 산하로 달려간다. 조국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싶다. 고향 후배들을 위해서 장학금도 보내고 불우 이웃돕기운동에 몇 푼의 돈도 내보지만 뒷전에서 하는 일이라 성이 차지 않는다. 직접 참여하고 싶은 욕망이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그래서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거 때마다 안테나는 ‘대한민국’에 고정시키지만 나에게는 왜 투표권을 주지 않느냐고 혼자서만 앙탈을 하는 것이다. 우리 선거법에는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선거권자를 ‘주민등록이 되어있는 자’로 못 박아 놨다. 재외국민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는다는 조항은 없다.
그러나 외국에 사는 동포가 국내에 주민등록을 할 필요는 없다. 외국에 살면서 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국적법의 제한에 걸려 ‘한국인’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다만 영주권자는 주민등록만 없을 뿐 우리 국민이다. 국방의 의무도 있다. 그들에게 선거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한 사람은 많다.
특히 김동길교수는 그 선봉이었다. 특유의 명연설을 통하여 기회만 있으면 재외국민들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가 한 때 국회의원이었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어서 이를 매듭짓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몇 분의 재외국민들이 ‘당사자’ 입장에서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한 것이 받아들여졌다.
비록 ‘헌법 불합치’ 판결이지만 국회에서는 선거법을 개정하여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인정해야 하는 의무가 지워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낭보임이 틀림없다. 미국과 일본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동포 중에서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국내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할 길이 열렸다.
금년 말에 있을 대선에서는 쉽지 않겠지만 내년 총선이나 혹은 그 뒤에 있을 지방선거 등에서는 투표권 행사가 가능해지리라고 본다. 문제는 그들의 숫자가 대선에 미칠 영향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재외국민으로서 투표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210여만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40%만 투표해도 80만이다. 과거 두 차례 대선에서 30만표, 50만표로 당락이 엇갈렸으니 80만이면 엄청난 숫자다.
이들의 영향력은 대선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 총선과 지방선거는 분산되니까 별 영향력이 없겠지만 대선에서는 위력적이다. 이들을 상대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도 큰 일이 될 전망이다. 외국에서도 지역싸움은 더욱 격화될 것이 예상된다. 뭉쳐야 사는데 갈래갈래 찢길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교포사회의 분열이 그들의 삶에 어떤 지장을 초래할지도 알 수 없다. 기왕에 헌재의 결정이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대로 된 일이면서도 선거운동을 둘러싼 갈등은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또 선거법 위반을 위반하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등 국내법의 해외적용 사례문제 등을 미리미리 짚고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첫댓글 재외 국민에게도 선거,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전대열회장님의 좋은글 감사합니다.건필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