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햇살이 참 좋다.
밤에는 쌀쌀한게 나락이 잘여물겠다. 이런날의 억새는 더욱 빛을 발하는데 은빛으로 일렁이는 저파노라마를 제대로 느끼고 있지 못하니 그 서러움을 어찌할 것인가. 노랗게 익은 감과 서서히 물들기 시작하는 잎새들의 비명에 가을은 더이상 고독할 수 없다. 나름대로 최선의 몸부림인 것을. 애써 미사여구를 갖다 대며 은유를 만들어 보아야 부질없다. 그저 자연에 순응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간이 동물임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가장 동물적인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인간이라는게 어떻게 이성을 가졌느지는 몰라도 이성의 규제가 갑갑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오늘 대형현수막을 달았다. 예년에 비해 많이 늦었다. 농민회에서 미리 준비했는데 경남 진보연합에서 큰 돈을 들여 단다는 말에 명의만 빌려 주었다.
그림으로 보면 그 크기를 짐작하게 어렵겠지만 이제까지 단 현수막 중에 가장 큰 것이다. 현수막을 처음으로 실사로 만들었는데 보기에도 참 좋다. 산으로 지고 올라가는데 3명이 어깨에 매고 올라갔다. 예전에는 둘이서 낑낑거리며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둘도 무리였다. 당사무국장, 한국제강노동조합 사무국장, 나 그렇게 지고 올라갔다. 여농 사무국장은 8개월, 부른 배를 안고 아래에서 목을 기린처럼 길게 빼고 수평을 봐준다.
사실 우리가 다는 대형현수막은 그 역사가 있다. 처음 대형현수막을 제안했을 때가 5년전이었다. 그때는 현재 크기의 절반 정도였다. 당시 박모국장과 내가 단둘이 겁도없이 정말 힘겹게 단 기억이 있다. 그 뒤에부터는 전문 산악인을 불러서 달았다. 그 친구는 한 때 농민회 회원으로도 활동했는데 술을 너무 좋아해 스스로 농민회 정리하고 회사 다니고 있다. 전문 산악하는 친구의 로프타는 솜씨는 신출귀몰했다. 장비는 스파이더 암벽화, 비아 페라타 카라비너. 로프, 헬멧등이었는데 한번씩은 라이방을 끼고 현수막을 달아주기도 했다. 멋은 아는 노미었는데 요즘은 술을 먹지 않는지 궁금하다. 그놈의 술버릇 때문에 평소의 좋은 모습이 전부 감해져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하 취급했지만 그래도 농민회에서는 대접 받았다. 어쩐지 그 놈이 이번 대회 가간 중에 나타날 듯 하다.
그 친구가 떠나고 난 뒤 그러니까 전년도 부터는 우리가 직접 달고 있다. 어떻게 다냐고요. 한번 보세요. 스파이더 맨도 울고갈 우리의 암벽등반 솜씨를...
위에 모자 쓴 사람이 나고 아래는 한국제강 노조 사무국장이다. 한국제강 사무국장은 위에서부터 내려오지 못하고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옆으로 다는 끈을 2개쯤 달고 내려갔다.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신발을 다음부터는 축구화를 신고와야겠다고 생각들을 했다. 좁은 망에 신발이 들어가지 않아 엄청 팔이 아프다. 예전에 한번 맨발로 올라가 달아 보았는데 발바닥이 두조각 나는 줄 알았다.
이 자리는 1004번 지방도로와 경전선 철길 그리고 남해고속도로가 3열종대로 지나가는 자리다. 그런데다 약 40도 정도의 커버길이어서 양쪽에서 다 보인다. 대형현수막 다는 자리를 여러군데 수소문했는데 함안에서는 이자리 만큼 좋은데가 없다. 전국민이 다보는 자리다. 그래서 노리는 사람이 많다. 군청에서는 '산불조심', 경남 fc는 주주모집광고, 건설산업연맹의 투쟁구호, 어느 산사의 음악회 등등 참 많이도 달았다. 단 모든 현수막이 달릴 땐 함안군농민회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산사의 음악회 대형현수막을 다는데 양해를 구한 적이 있었다. 참으로 어렵게 자리를 양보한 기억이 있다. 다른데도 마찬가지다. 지역 언론에서는 함안농민회 자리인데 다른 단체가 달았다며 어떻게 된 것인가하고 문의전화가 온 적도 있다. 이렇게 명당자리에 11월 대항쟁의 대형현수막이 달린 것이다. 팔이 빠질 힘을 쓰며.....
눈길이 예리한 사람은 알겠지만 제일 위의 현수막과 바로 위의 현수막이 달린 위치가 다름을 알게 될 것이다. 처음 위와 같이 달았다. 그런데 펴보니 너무 길어 아래 글씨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중간쯤 옆으로 묶는 끈을 묶었을 때 명의는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농 사무국장은 쳐다보고 있었는데도 무얼했는지 모르겠다. 뱃속의 아기와 대화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개울물 소리에 도취되었는지도. 하는 수 없이 옆의 끈 을 다 풀고 다시 올라가 맨위 그림처럼 끌어 올려 다시 달았다. 그래서 현재 타자 두드리는 힘도 버거운 지경이다.
오늘 임원회의를 잡았다. 제대로 지회가 운영되고 있지 못한 곳이 있어 점검과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다들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있는데 사실 누가 제일 바쁜지, 왜 그사림이 바쁜지 다안다. 다만 내가 그렇게 못하는걸 안타까워하고 있을 뿐. 사실 타작 들어가니 마음들이 처음과 다르다. 이 부분은 충분히 예상되었던 건데 극복하는게 힘들다. 다시금 간부들의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묘책이 필요한데....
장사익 노래중에 이런 노랫말이 있다.
'소낙비는 내리구요, 업은 애기 보채구요.
광우리는 이었구요. 소꼬팽이 놓치구요
논에 둑은 터지구요. 치마폭은 밟히구요.
시어머니 부르구요. 똥오줌은 마렵구요.
어떤날 엄마.'
장사익 2집에 실려있는 '삼식이'라는 노래의 일부가사다. 가사만 보아도 상황이 짐작이 가듯 위의 상황은 정말 급박하다. 특히나 손나기는 내리는데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게 얼마나 많은가. 그나마 마당앞에서 설거지를 하는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보자마자 힘이 부치는지 부르고 야단법석이다. 슬며시 얼굴에 미소까지 번지게 하는 노래인데 저 정도는 되어야 바쁜거다. 저정도는 되어야 저녁에 씻고 누우면 바로 코골고 자는 거다.
사족을 달자면, 장사익은 45살에 가수생활을 시작했는데 충청도 말씨에 어눌한 생김새, 그리고 순박한 모습에 끌려 그의 콘서트에도 가 본 적이 있다. 그는 현재 5집까지 음반을 냈는데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사서 들어보시길.
당사무국장의 모습이다. 작년엔 내가 이리로 내려왔다. 그런데 당 사무국장이 먼저 차지했다. 사실 이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경사가 그나마 완만한 편이다. 그러나 오른쪽은 거의 90도에 가깝고, 어떤 곳은 그 이상인 경우도 있다. 보통 경사굴곡면을 이렇게 심하게 하지는 않는데 워낙 3개의 길이 동시에 있다보니 새로 국도를 확장하며 경사가 급한 산을 깍았으니 이럴 수 밖에 없다. 당 사무국장은 편할 쪽을 택했으면서도 죽겠다고 난리다. 사실 덩치는 산만한 놈이 엄살이 좀 심한 편이다. 엄살이 더 심한 놈은 한국제강 사무국장놈인데 밑에서 변죽만 울린 놈이 발을 삐어 절뚝거리고 있다.
위의 사진은 여농사무국장이 찍었다. 에드먼드 힐라리경이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올랐다고 역사는 기억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의 정상에 도착한 사진을 보면 한 사람이 더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자동 카메라가 아니었기에 누군가가 셔트를 눌러 주어야 했다 그는 누구인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와 함께 오른 셀파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 셀파가 없었다면 힐라리도 정상등정은 못했을 것이다. 역사에 묻혀버린 그 셀파를 기억하며 오늘 사진을 찍은 사람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함안의 현수막 작업하는 것도 몇 장 올려야 겠다.
우리 함안의 보배, 여농 사무국장과 전직 경상대 선전일꾼인 모 아줌마, 두 명의 선전일꾼이 쓰고, 씨다바리하는 몇명이 함께 작업했다. 80개 정도 달았는데 모잘라 50개 더 만드는 중이다.
예전에는 농활연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부탁했는데 그들도 바쁘고 해서 직접 제작하는 것이다. 손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잡히지만 지역의 동지들이 함께 만들면 서로간에 도움되는 것이 참 많다.
이제 날씨가 어둑해진다. 어제 농단협회의가 잘되었는데 다른 단체장들이 한농연이 불참했다고 여러 말들이 오갔다. 이번 대회는 어떻게든 함께 치뤘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무산되어 많이 아쉽다. 그렇다고 뭐 달라지는 것은 없다 현재 준비하는대로 힘차게 진행하면 된다.
'동지여 슬퍼 마소서 우리는 승리하리리
지금 비록 힘들고 괴로울지나
동지여 서러워마오 그길에 하나되리니
고개들어 그날을 바라보소서
우리의 가슴에는 분노가 살아 숨쉬고
우리의 가슴엔 반도의 청맥이 꿈틀 거리오
가자 동지여 투쟁의 화살되어
해방 그함성으로 되돌아 오자'
가을나무 님이 2007-10-17 22:06:08에 고침
댓글
국장님 참 멋지요...
맨날 사무실에서 이상한 음악 듣는다고 잔소리했는데 사람들과 함께 있을때 대화나누지않고 얄구진 책읽고 있다고 사회성 떨어지는 국장이라고 놀렸는데 동지들에게 이렇게 감동의 글이 되어 돌아 올줄은 몰랐소^^
국장님의 글과 활동사진 보면서 힘과 용기를 내어 보려고 합니다.
함안군사람들의 모범을 따라배워야 겠소.
열심히 합시다!
사진 볼때 왠지 마음이 아프네요 /대단들하시네요 /이놈의 세상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대형 현수막 정말 멋지네요... 대형 현수막처럼 많은 대중들이 11월 집회에 참석 할 것입니다.. 함안군 농민회 홧팅..
많은 지역 농민회에서도 대형 현수막 달기를 이어가기를 ....
이영곤 화이팅
가슴이 뜨거워 집니다.
동지들의 모범따라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 FTA때도 단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고속도로 달리면서 대형현수막 보고 역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