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브에 의하면
막부란?
“무사들에 의한 통치조직으로서 원래는 중국에서 출진 중인 장군이 군정을 집행하는 막사를 뜻한다. 막부(幕府; 영어로는 bakufu)를 한자어로 풀이하면 '장군의 진영'이다. 12세기 말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에 의한 가카마쿠라 바쿠후(鎌倉幕府)로 시작되어 14세기 중엽의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에 의한 무로마치 바쿠후,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의한 에도 바쿠후(江戶幕府)로 발전되었다. 전국시대의 일시적 중단을 제외하고는 약 7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가관인 것은 “가마꾸라 막부는 그 본거지를 가마쿠라에 설치하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고, 무로마찌 막부는 무로마치[室町]에 새로 궁전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幕府를 한 마디로 말하면, ‘마그부’라는 말이다. 가마꾸라 막부(鎌倉幕府)는 鎌倉 즉 ‘겨차→ 곁’으로 닥아오는 주변의 적(또는 사회질서 파괴자)들을 ‘막으버’라는 우리말이다. 마침 이 시기는 여몽 연합군이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가마쿠라 막부를 침공했으므로 이들의 침략에 대하여, 막아내야 할 책임도 있었다.
무로마치[室町] 막부는 후에 오다노부나가에게 망하기는 했지만, 원나라의 침공에 대한 염려도 없어졌고, 힘도 室町(시져→ 세져서) 주변의 적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우리가 밤낮으로 고생을 하며, 이 막중한 책임을 ‘뭐하러 맡지?’라는 생각을 하던 시대였다.
에도 막부를 알자면 江湖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江湖란 ‘중국의 세상’을 의미한다. 德川家康은 江戶로 살짝 바꾸어, 어느 한 자방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의 온 세상’ 즉 倭의 역사상 최초로, 전국을 책임지고, 경찰업무를 펴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것이다. 그러므로 ‘江戶에도(えど)’라는 말은 ‘전국에도(えど)’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말에서 ‘えど [江戶]’라는 세칭, 일본말이 튀어나오게 된다. 그래서 말인데 德川家康을 “도꾸가와 이에야스”라고 읽으면 안되고(이렇게 읽는 것은 일본의 희망사항이고 요구사항이다), 德川家康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이름으로서, 겉으로는 덕망있게 웃으면서, 속으로는 저x 언제 ‘더(ㅍ)쳐 가까’라고 읽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豊臣 秀吉이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읽으면 안되고 ‘뿌시수기’ 다시 말하면 ‘뿌싯기’라고 읽어야 한다. 이 이름이야말로 그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다. 加藤淸正은 ‘가드 처져’ 즉 ‘가따 쳐져’가 아주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옛 조선말을 사용했다고 본다.
이런 것이 幕府이다. 이런 간단한 말도 모르면서 어떻게 일본 전문가라고 하는지, 나 원. 다들 정말 너무 모른다. 거듭 밝히지만 ‘옛 일본은 백제 고을; 남신웅 지은 책’이었으므로 옛날엔 우리말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우리말을 모르면 일본의 고서들을 해독할 수가 없다.
德川家康 시대에 조선의 통신사들이 倭로 건너가서 조선말을 가르치는 장면이 있다.
동네 어른들까지 열의를 보이며 마당에서 조선말을 배우고 있는데 조카가 지나가면서, 인사하기를, 아제
(말) 배우는교? (하)며 (지나) 가
밴교? 며, 가 (당시 사용하던말 투) 이것을 倭 글자로 바꾸면
べんきょう 勉, 強(며, 가), 이 말을 일본어 사전식으로 바꾸면
“べんきょう [勉強] 공부” 와 같은 일본어 단어가 나온다.
이 단어는 倭인들이 조선말을 배웠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우리나라 학계가 얼마나 무식한지, “幕府”를 “바쿠후”로 읽는다든지, 영어로는 “bakufu”로 읽는다고 하는 것을 보고, 덥고 지루하던 일상에서 모처럼 크게 웃을 수가 있었다. 일본 얘들도 함께 웃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