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에 관한 현대 물리학의 입장
<출처: '현대 물리학으로 풀어본 반야심경(김성구/조용길 저, 불광출판사), p89~92>
우리가 흥미를 갖는 것은 實在에 관한 현대 물리학의 입장을 알아보고 이것을 반야심경의 내용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양자 역학적 해석에는 많은 논란이 있으나 물리학계에서 정통적 해석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보어가 주도한 해석이다.
보어가 몸담고 연구한 곳의 이름을 본따서 이 해석을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이라고 부르는데, 이 해석에 의하면 모든 물리적 정보가 파동함수에 들어 있다고 본다.
이 코펜하겐 해석을 간략히 설명하겠다.
양자역학의 파동함수는 측정량을 직접 나타내지 않으면서 측정량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정보를 갖고서 양자역학의 세계 전체를 나타내고 있다.
인간이 자연에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파동함수가 포함하고 있는 많은 고유상태들 중 어느 것 하나를 측정하게 되어 이 상태가 갖는 물리량을 알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측정한 것 말고 다른 상태를 만날 수도 있었다.
파동함수가 포함하고 있는 많은 고유상태 중 어떤 상태를 만나 어떤 측정값을 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확률적 분포를 나타내는 c(n)들에 의해 결정된다.
c(n)를 제곱하면 상태 'n'을 선택할 확률이 된다.
이 말은 어떤 상태를 관측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오직 확률적 예측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오직 확률적 예측만 가능하다면 같은 물리계에 대해서도 관측자마다 다른 물리량을 얻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결정론적 인과율을 부정하는 것이며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 물리학과 고전 역학이 크게 다른 점이다.
고전 역학은 결정론적 인과율을 지지함으로써 이 우주를 하나의 기계로 본 것에 반해 현대 물리학은 확률론적 인과율을 지지함으로써 우주를 창조적이고 여러가지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 존재로 본다.
실재에 대한 현대 물리학의 입장을 이해하려면 측정과 '측정된 것'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코펜하겐 해석'을 비유로 들어 다시 한번 설명하겠다.
인간의 측정행위는 사람이 아이를 낳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부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A'라는 자식을 낳기 전까지는 'A' 라는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A'는 분명히 이 부부가 사랑을 통하여 창조한 것이다.
비록 부부가 창조한 아이인 것은 분명하지만 'A'라는 아이를 부모가 원해서 'A'를 갖게 된것은 아니다.
부부 두 사람이 가진 유전자의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어린아이의 신체적 및 정신적인 모습은 아마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태어날 가능성이 있었던 아이"들 중에서 어찌하다가 'A'가 태어나게 되었다. 부모와 'A'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면 'A'가 태어날 확률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가능성 중에서 왜 하필이면 꼭 'A'가 태어났는지는 모른다.
다른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A'가 태어난 이상 'A'가 존재할 확률이 '1'이고 다른 아이가 존재할 확률이 '0'이라는 사실도 확실하다.
이 비율로부터 관측행위와 '관측된 자연'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A'가 관측된 자연이고 부부의 사랑이 바로 경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인간의 측정행위이다.
왜냐하면 이 관측행위로 인하여 'A'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현대 물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객관적인 실재란 없고 관측자가 보는 것은 관측자가 창조한 것이다.
결국 삼라만상은 일체유심조인 것이다.
일체유심조라고는 하지만 관측자가 원하는 대로 무엇을 만들어낸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인간이 보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것이기는 하되 무엇을 창조하는지는 알 수 없고 확률적 인과율에 따라 관측자가 어떤 물리적 상태를, 관측자가 보는 현상계를 보게 된다는 뜻이다.
파동함수에 이미 모든 정보가 주어져 있다면 왜 측정 전에 입자가 물리량을 소유한다고 할 수 없는다?
물리학에서는 실재란 물리량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측정 전에 물리량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측정을 하지 않더라도 실재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왜 객관적 실재가 없다고 하는가?' 하고 묻는 것이다.
측정 전에 양자 역학이 물리량의 값에 대해 확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면 양자 역학 자체에 불완전한 측면이 있는 것이라고 의심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그렇게 주장하였다.
이인슈타인은 어떤 양자 상태에 있는 계는 그 상태에 있게 만드는 숨은 요인이 있어야 하며 이 숨은 인자가 측정 결과를 확실하게 결정한다고 보았다.
확률론적 예측이란 계에 대한 완전한 기술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관측결과를 관측하기 전에 미리 알 수 없고 오직 확률적으로만 관측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에게는 여간 못마땅한 것이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유명한 말, "나는 하느님이 주사위 놀이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라는 말은 이래서 생긴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제기한 숨은 인자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입자가 임의의 물리량에 대하여 소유 값을 갖는다는 숨은 인자 해석은 양자 역학과 양립할 수 없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는 것으로서 일체유심조에 다시 한 걸음 다가서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코펜하겐 해석은 물리이론으로서는 완벽하다고 할 만큼 성공적이지만 사람이 기존에 갖고 있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관점에서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철학적 논란이 제기된다.
이 논란들을 여기서 모두 소개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되므로 이에 관한 참고문헌을 몇 가지 소개하겠다.
1. 과학과 메타과학, 장회익 지식산업사(1990)
2. 보어-아인슈타인 논쟁의 전개과정, 임경순, 과학사상(1994, 여름) p 75~91
3. 양자역학과 실재성의 문제, 장회힉, 과학사상(19994, 여름) p 93~112
이 밖에도 많은 양자역학의 해설서들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