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처형 삼부작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해체로 유명한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은 〈십자가 처형 삼부작〉을 1944년에 처음 그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꼭 44년이 지난 1988년에 〈십자가 처형 삼부작〉의 두 번째 버전을 그렸다. 이 두 작품은 모두 테이트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경험적으로 볼 때, 두 버전 중의 하나는 늘 테이트 모던에 전시되어 있는 듯싶다.
베이컨이 이토록 무시무시한 괴수의 형태를 그린 배경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참해질 수 있는 지를 실감했고, 그 참상을 이 그림을 통해 고발하려 한 것이다. ‘삼부작’이라는 그림의 형태는 중세 이래 성화를 그린 화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방식이다. 그러나 베이컨은 성서의 인물이나 예수의 수난 대신, 마치 찢어발긴 고깃덩어리 같은 형태들을 세 장의 캔버스에 배치해 놓았다. 1945년에 처음 공개된 〈십자가 처형 삼부작〉은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이 그림을 통해 베이컨은 전후의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1944년 버전과 1988년 버전의 차이점은 첫 번째 버전의 배경은 오렌지빛인 반면, 두 번째 버전의 배경은 피처럼 붉은빛이다. 그리고 두 번째 그림의 배경에는 새로운 공간이 그려져 있다.
베이컨의 작품을 마음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의 작품이 주는 첫인상은 괴기하고 무섭고 그로테스크하다. 베이컨은 피카소의 초현실주의 작품들을 보며 그림 속의 반인반수 같은 괴물들의 모습을 연상해 냈다고 한다. 베이컨은 일생 동안 이 이미지에 집착했다. 평론가인 존 러셀은 “영국의 회화는 〈십자가 처형 삼부작〉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것”이라며 베이컨을 극찬했다.
베이컨은 1933년부터 줄기차게 십자가 처형에 대한 모티프를 그림으로 형상화하고 있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충격적 재앙과 맞닥뜨리며 1944년에 이 세 모티프가 완성작으로 튀어나온다. 마치 폐허에서 번식해 나온 듯한, 눈도 코도 없는 괴물은 긴 목을 휘두르며 입을 딱 벌리고 있는데, 그 치아 사이사이마다 피가 번져 나왔다. 딱 벌려진 입에서는 금방이라도 “으아아” 하는 절규가 터져 나올 것 같다. 모네가 물결에, 고흐가 자화상에 몰두했던 것처럼, 소호의 괴짜 화가 베이컨은 ‘입’이라는 이미지에 유난히 집착했다.
눈이 가려진 채 입을 벌려 소리 지르는 이 괴물들은 인간이면서도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했던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의 모습을 베이컨 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전장에서, 그리고 아우슈비츠와 포로 수용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잔인한 방식으로 생명을 잃었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숨쉬는 살덩어리처럼 취급을 당하며 죽어 갔다. 사실 죽어야 하는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유대인이거나, 공습을 당한 집 안에 있었거나, 그도 아니면 강제로 징집되어 전장에 끌려왔다는 이유로 몇백만의 생명이 무고하게 죽었다. 베이컨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 광경, 이유도 없이 죽어야 했던, ‘살덩이’로 변해 버린 무고한 영혼들의 절규였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20세기의 영국이 낳은 최고 걸작으로 꼽는 것은 바로 이 점, 문명의 이름으로 포장된 야만과 인간들의 공포를 가장 생생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