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마리아는 단 한 번도 당신의 시선을 창조주로부터 뗀 적이 없습니다!
오늘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교회 전례력 여러 축일 중에서 이름이 제일 긴 축일인 듯 합니다.
과거에는 성모 무염시태 대축일이라고 했습니다. 무염시태(無染始胎)! 우리 말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없을 무자에 물들 염자입니다. 비로소 시자에 아이밸 태자입니다.
그럼 한번 연결해볼까요? 성모님께서 ‘시태!’ 잉태되셨는데, 어떻게 잉태되셨습니까? 무염 상태, 즉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잉태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물들지 않은 상태? 원죄에 물들지 않은 상태로 잉태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모님께서는 아무런 흠 없이 무죄한 상태로 잉태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성모 무염시태’라는 용어 대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라는 말로 대체되었습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에 대한 교리는 오랜 연구와 반박, 옹호가 거듭되어 왔습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에 대한 대한 초기 교부들의 표현이 참 아름답습니다.
“요아킴과 안나의 거룩한 딸인 마리아는 성령의 신방에서 티 없이 살았기에 하느님의 신부가 되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 강생을 위해 마리아의 영혼을 준비시키셨습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무죄한 몸이 거처하실 수 있도록 가꾸어진 순결한 나무입니다. 순결하며 거룩한 영혼과 육신의 소유자 마리아는 가시덤불 속에 핀 한 송이 백합화 같습니다.”
성모님을 극진히 사랑했으며 성모님에 대한 탁월한 신심의 소유자였던 8세기 수도자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에 대해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인류는 모두 죄인이 되어 하느님의 크신 은총에서 흘러나오는 큰 선물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선물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육체와 영혼의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욕정과 무지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인류 역사 안에서 마리아만이 은총이 가득하며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자유롭습니다. 마리아는 단 한 번도 당신의 시선을 창조주로부터 뗀 적이 없습니다.”
마침내 1854년 12월 8일 비오 9세 교황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교리를 장엄하게 선포하였습다.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보존되었다.”
무염시태 교리는 성경에 직접적 근거를 지니지 않습니다. 비오 9세 교황님께서는 무염시태 교리가 초대 교회 교부들로부터 전수된 거룩한 선물이며, 거룩한 인장으로 날인되어 계시된 교리로서, 교회 안에 항상 보전되어 왔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전수되어 내려온 일종의 전승이라는 말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루카 1,26-38
성모께서 원죄 없음을 믿지 않으셨으면, 예수님을 잉태하실 수 없으셨다
[도입] 야수는 미녀의 방에 들어갈 수 없다 (양심의 장벽)
우리가 잘 아는 동화 『미녀와 야수』에는 아주 상징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흉측한 야수는 아름다운 벨을 사랑하지만, 그녀의 방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단순히 거절당할까 봐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벨 앞에 서면,
짐승 같은 자신의 추악함이 극명하게 비교되어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야수는 괴로워하며 어둠 속으로 숨습니다. "당신은 너무 빛나고 나는 너무 더럽소. 야수는 미녀의 방에 들어갈 수 없소."
이것이 바로 '양심'의 작용입니다.
더러운 것은 본능적으로 깨끗한 것을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더럽다고 느끼는 한, 거룩한 분이 내게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받아들이고 싶어도 내 양심이 "너는 자격이 없어!"라고 소리치며 문을 걸어 잠그기 때문입니다.
[전개 1] 거룩함 앞에서 뒷걸음질 치는 인간
성경을 보십시오.
하느님의 거룩함을 체험한 인간의 첫 반응은 언제나 '뒷걸음질'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기적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주님, 저를 떠나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하느님의 영광을 보고 "큰일 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죄를 인식하는 순간, 거룩하신 하느님을 밀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이 하느님을 품는다는 것은 불에 타죽는 것과 같은 공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신학적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을 자신의 태중에 모시겠다고 '예'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
만약 마리아가 자신의 영혼에 아주 작은 죄의 얼룩이라도 있다고 생각했다면, 혹은 자신을 그저 평범한 죄인이라고 여겼다면, 베드로처럼 이렇게 외쳤어야 마땅합니다.
"주님, 저를 떠나십시오! 감히 누추한 제 몸에 지극히 거룩하신 분을 모실 수 없습니다.
이는 신성모독입니다!"
[전개 2] 믿음은 "내가 누구인가?"에 답하는 것
하지만 마리아는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Fiat)"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마리아가 교만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통해 자신의 '원죄 없음'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여(Kecharitomene)"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너는 죄가 하나도 없이 은총으로만 꽉 차 있다"라는 하느님의 선언입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였다"고 전합니다.
이 침묵의 시간 동안 마리아의 내면에서는 치열한 식별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나는 연약한 인간인데, 하느님께서 나를 완전한 은총 덩어리라고 부르시는구나.
죄가 없다고 하시는구나.'
마리아는 자신의 감정이나 인간적인 판단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더 신뢰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내가 깨끗하다고 하시면, 나는 깨끗한 것이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마리아는 양심의 가책이나 두려움 없이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며
거룩하신 분을 자신의 태중에 모실 수 있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은 하느님이 바라보시는 대로 '내가 누구인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자신이 '원죄 없는 깨끗한 그릇'임을 믿으셨기에, 예수님을 담아내는 구원의 도구가 되셨습니다.
자신이 깨끗함을 믿지 못하면, 결코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전개 3] 향심기도: 나를 규정하는 '거룩한 단어'로 돌아가는 연습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체성사를 통해 매일 예수님을 모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죄인', '부족한 사람',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규정하며 살아갑니다.
내 안의 죄의식(야수)이 하느님(미녀)을 온전히 모시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나의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를 선택하는 훈련, 바로 '향심기도(Centering Prayer)'입니다.
향심기도는 우리가 성모님처럼 "나는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다"라는 믿음을 연습하는 가장 좋은 기도입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첫째, 하느님 안에서의 내 정체성을 담은 '거룩한 단어'를 하나 정하십시오.
'예수', '사랑', '거룩함', '현존' 등입니다.
이 단어는 "나는 당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라는 내 믿음의 동의입니다.
둘째, 기도를 시작하면 온갖 잡념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너는 죄인이야.", "너는 이기적이야.", "네가 무슨 기도를 해." 이런 생각들이 뱀처럼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때 그 생각들과 싸우거나 대화하지 마십시오. 내가 나를 판단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셋째, 그저 부드럽게 '거룩한 단어'로 돌아가십시오.
생각을 끊고 거룩한 단어를 떠올리는 행위는 이런 고백과 같습니다.
"아니야, 내 느낌은 중요하지 않아.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했어.
하느님이 내 안에 사신다고 했어.
나는 주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야."
이것이 성모님이 천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신 과정과 같습니다.
수많은 인간적인 두려움을 뒤로하고, 천사가 전해준 '은총이 가득한 이'라는 정체성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결론] 내가 믿는 대로 주님을 모시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자신을 더러운 그릇이라 믿는 사람은 평생 주님을 문밖에 세워둘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자신이 주님을 담기에 합당한(물론 은총으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주님을 잉태하고 낳게 됩니다.
우리가 향심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하느님의 현존으로 돌아가는 노력은, 단순히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 당신께서 저를 깨끗하다고 하시니, 저는 깨끗합니다.
그러니 제 안에 오십시오."라고 고백하며 문을 여는 행위입니다.
오늘 원죄 없으신 성모님을 바라보며, 우리도 헛된 겸손으로 뒷걸음질 치지 맙시다.
대신 하느님이 주신 거룩한 존엄성을 믿고, 내 안의 가장 깊은 방을 활짝 열어젖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됩시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아멘.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 1,26-38: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 축일의 의미와 교리의 확립
오늘 교회는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셨음을 기리는 대축일을 지낸다. 이는 하느님께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실 마리아를 구속 사업의 처음부터 특별히 준비하시어, 그분 안에 죄의 흔적조차 닿지 못하게 하신 은총의 신비를 드러낸다. 교황 비오 9세께서는 1854년 “대자대비하신 하느님, Ineffabilis Deus” 교황 회칙을 통하여, 이 믿음을 신앙의 교리로 선포하셨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잉태의 첫 순간부터 전능하신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특전을 받아,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미리 받아 누리셨기에, 원죄의 모든 얼룩에서 완전히 보존되셨다.”
교회는 이 교리를 통해 마리아 안에서 이미 구원의 완성을 미리 보여주셨음을 선포한다. 성모님께서는 “전적으로 거룩하고 흠 없으신 분”(에페 1,4 참조)으로, 교회가 걸어가야 할 성화 길의 표징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이렇게 요약한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자와 특별히 깊이 결합되셨으므로, 교회의 신앙과 사랑과 완전한 일치 안에서 모범이 되신다.”(교회 63항).
2. 인간의 자유와 순종을 통한 구원
복음(루카 1,26-38)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마리아의 자유로운 응답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하느님의 계획이 크고 완전하더라도, 인간의 자유와 협력이 빠져서는 완성될 수 없다. 처음 인간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으로 인해 죄와 죽음을 세상에 불러들였듯이, 마리아는 “순종의 길”을 택하여 구원을 열었다.
성 이레네오는 이를 “순명의 새로운 길”이라 부르며 이렇게 설명한다. “하와가 불순종으로 인해 결박한 매듭을, 마리아는 순종으로 풀어주었다.”(Adversus Haereses III,22,4). 이처럼 하와의 불순종이 죽음을 가져왔듯, 마리아의 순종은 생명을 가져왔다.
성 아우구스티노도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하셨다. 태중에 그분을 모시기 이전에, 마음속의 믿음을 통해 이미 그리스도를 품으셨다.”(Sermo 215,4).
3.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신앙의 구체적 고백
“보십시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마리아의 응답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하느님께 내어 맡긴 구체적 신앙의 고백이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장면을 이렇게 강조한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들었을 때, 인간적인 계산이나 의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곧바로 자신을 봉헌하였다. 그녀의 믿음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여, 하느님의 능력에 전적으로 맡겨졌다.”(Homiliae in Matthaeum V).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이란 추상적인 사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선택임을 배운다. 예수님의 탄생, 수난, 죽음, 부활이 모두 역사적 사건 속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일상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
4.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의 적용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신 순간, 그분은 단순히 하느님의 뜻을 내면적으로 동의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삶 전체를 내어놓으셨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이웃에게 봉사의 삶으로 드러난다.
교회 56항은 이렇게 가르친다. “마리아는 아담의 후손 가운데서 구원 사업을 위하여 아드님의 협력자가 되셨으며, 믿음과 순종으로 죄와 죽음을 물리치신다.” 그러므로 성모님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 뜻에 응답하는 인간의 참된 자유를 발견한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질문이 던져진다. 지금 내 삶에서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가? 가정에서, 공동체 안에서, 직장에서, 작은 일상에서 주님의 뜻을 찾아내고, 기쁘게 실천하는 것이 바로 신앙의 길이다.
5. 결론: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백
마리아의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는 고백은 단지 성모님의 고백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고백이다. 우리도 매일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살고 세상 안에 드러내야 한다.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은총은, 우리도 최종적으로 죄와 죽음을 넘어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교부들의 말처럼, “마리아 안에서 이미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났다.”(성 암브로시오). 그러므로 오늘 이 대축일에, 우리도 성모님과 함께 고백하자.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여성들은 자기 얼굴이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2013년 어떤 비누 광고에서 화장기 없는 자기 얼굴을 촬영하려고 할 때 고개를 돌리거나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여성들의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의 모습을 어떤 모습을 어떤 모습이든 간에 개의치 않고 환한 미소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의 모습과 대비시키면서 이런 문구를 내보냈습니다.
“언제부터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저 역시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제 머리카락은 워낙 억세서 조금만 길어도 붕 뜨면서 지저분해집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에 왁스를 발라서 지저분함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왁스를 바르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할까요? 모자를 씁니다. 모자 없이 밖에 나가지 않고, 또 모자를 절대로 벗지 않습니다. 우연히 어렸을 때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다 붕 떠 있습니다. 지금보다도 더 뻣뻣한 머리였는데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남의 시선에 너무 신경 쓰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정작 하느님의 시선에는 무감각했던 것이 아닐까요? 죄를 범하면서도 합리화하며 하느님을 무시합니다. 남의 시선에 신경 쓰는 것 절반만 하느님께 신경 쓰면 어떨까요?
우리는 오늘 하느님의 시선에만 집중하고 있는 분의 대축일을 보냅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께서 머무실 거처를 거룩하게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준비를 받아들인 성모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철저하게 하느님 중심으로 사셨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예수님 잉태 소식도 “예”라고 응답하셨고, 이로써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고 완성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고, 질문하고, 마침내 순종하십니다. 대천사의 말처럼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는 말씀을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하십니다. 세상의 시선을 보지 않고 하느님의 시선만 보고 계신 성모님의 굳은 믿음에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너무 쉽게 세상의 시선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러면서 하느님의 시선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세상에서 가장 걷기 어려운 길은, 평범한 하루의 끝없는 반복이다. 그 반복에서 섬세한 차이가 시작하고, 가장 높은 곳으로 점프할 수 있는 지점을 만날 수 있다(김종원).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12.08.월.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루카 1,28)
하느님의 구원은
마리아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보호된 첫 번째
사람이며,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첫 구성원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의 죄보다
더 큽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먼저
움직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먼저 일하십니다.
먼저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약속이
이미 우리
현실 안에서
시작되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인간의 구원은
하느님께서
먼저 사랑하신
결과입니다.
은총은 협력이
되고
자유의지는
존엄성이 됩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교리는
단순히 마리아를
높이는 교리가
아니라
인간을 회복시키는
교리입니다.
한국 교회의
탄생 자체가
하느님의 은총이
먼저 온
역사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은총에서 태어났으며
은총으로 살아갑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은
한국 교회의
정체성과
교회의 여정을
가장 잘 설명하는
수호자가
된 것입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먼저 시작하신
은총의 거룩한
첫 열매입니다.
그 첫 시작을
진실로
믿습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희생하는 그 모성의 깊이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느닷없이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의 발현에도
차분히 당신의 믿음을 아뢴
처녀 마리아를 생각했습니다.
마리아가 그처럼 “예”라고 응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하느님과의 깊은 대화에 익숙했던
덕이라 싶습니다.
늘 기도드리며
하느님의 뜻에 ‘예’라고 순명하는 삶을 살았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집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했기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우리 또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진정,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는지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한 주간이 되시길,
강권합니다.
아울러 몇 해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바치신 기도를 함께 봉헌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온 삶이 하느님께 ‘예.’가 되게 하소서!”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1,28)
'깨끗한 영혼이 되자!'
오늘 복음(루카1,26-38)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입니다. '나자렛 처녀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로 간택되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성모님께서 잉태되신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는 것을 기념하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이 큰 축일은 '천주의 성모이신 마리아(1.1)',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8.15)',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와 함께 중요한 '성모님의 핵심 믿을교리'입니다.
성모님께서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은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품고 낳으실 모태이기에 당연한 믿을교리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루르드의 성모님 발현을 통해 성모님께서는 이 믿을교리를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
하느님의 소식을 전하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나자렛 처녀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 주님의 어머니로 선택되십니다. 죽음과도 같은 이 엄청난 선택을 마리아는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품고 낳으시는 태가 됩니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하신 일, 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는 '대림시기'입니다. 구약의 4천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대림초 4개 중에 2개가 불을 밝혔습니다. 세상 구원을 위해 오시는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태어나시도록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영혼을 깨끗이 정화해야겠습니다.
'거룩한 미사와 고해성사(판공성사)'를 통해 죄에 물들어 있지 않은 영혼이 되어, 메시아이신 구세주께서 내 안에 태어나시게 합시다!
그리고 하느님 구원 사업에 도구로 부르시는 주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합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복음말씀
제1독서
<나는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3,9-15.20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1,3-6.11-12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복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