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제주시 이도1동 1421-2번지, 1421-29번지(오현길63)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성격 ; 교육기관 터
원래 이곳에는 사립제주의신학교(1907), 공립제주농업학교(1910), 오현중고등학교(1946)가 차례대로 자리잡았었다. 오현중학교는 1946년 2월 15일 제주제일중학원(초대 이사장 황순하)이라는 이름으로 재단이 설립되면서 1946년 3월 3일 제주읍 이도리 1437번지에서 개교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광복을 맞아 새로 건국되는 나라에 선현(先賢)의 뜻을 받들어 멸사봉공의 헌신으로 기여하자는 뜻에서 교명을 오현초급중학교로 개칭하였다. 이 때 교장 직무대행을 양명률이 맡았다. 당시 6학급이었으며 교사로는 김종현, 김호전, 김봉현, 백우원, 문태오, 양세민이 있었다. 1947년에는 오현중학교는 구 농업학교의 건물을 개수해 사용했으며, 대일항전기 제주농업학교 터였던 곳까지 확장해 사용했다.
학교명칭 ‘오현’은 김정(金淨) · 송인수(宋麟壽) · 정온(鄭蘊) · 김상헌(金尙憲) · 송시열(宋時烈) 등 5명의 선생을 봉향한 오현단(五賢壇)에서 비롯되었다. 1947년 6월에 중등과정을 이수하고 입학하였던 제1회 졸업생 39명을 배출하였으며, 1951년 9월 학제변경에 따라 오현중학교와 오현고등학교로 분리, 개편되었다. 1953년 3월에 고등학교 개편 이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97년 3월 현재 27학급에 재학생 1,286명, 교원 67명이며 졸업생은 45회에 총 1만7028명을 배출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47년 3월 1일에는 제주읍내의 학생들이 주축이 된 3·1절 기념식이 이곳에서 열렸다. 이 집회는 제주북국민학교 집회를 주도했던 3·1기념투쟁위원회와는 별도의 학생 조직인 3·1기념준비위원회가 주도했다. 이 위원회는 1947년 2월 24일 제주농업학교, 제주여자중학교, 오현중학교 학생들이 결성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집회를 마친 학생들은 집단적으로 제주북국민학교 집회에 참석했는데 불상사는 없었다.
3·1 사건 이후 오현중 교사였던 김봉현은 1947년 6월에 일본으로 건너갔고, 1963년 이후 일본에서 김민주와 공저로 『제주도 인민들의 4·3 무장투쟁사』와 『제주도 혈의 역사』를 발간했다. 교장서리였던 강순현은 학생선동 혐의로 검거되어 무기징역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복역했는데 한국전쟁 며칠 전인 1950년 6월 20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2020년 개정증보판 제주4·3유적Ⅰ)
주요 연혁은 다음과 같다.
1951.04.01. 6·25전쟁으로 피난 학생 수용을 위하여 오현분교 설치
1951.08.31. 학제 변경에 의하여 오현고등학교 6학급 인가
1951.09.25. 오현고등학교 개교, 초대 교장 이경수 선생 취임
1952.08.06. 재단법인 오현학원 개명 인가
1955.03.24. 오현분교 폐지
1962.01.15. 중고등학교 통합
1969.12.19. 중·고등학교 분리
1972.09.01. 현 위치(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주동로 101)로 학교 신축 이설
2025.01.24. 2024학년도 제73회 졸업식(329명) 졸업생 누계 : 27,876명
이곳에는 제주종합시장이 들어섰다가, 현재는 유료주차장과 시온상회 건물이 입주해 있다. 1970년대의 오현학원 건물이 일부 남아 있다.
《작성 220909, 보완 26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