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침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27~28)
루카 복음 21장 27절은 예수님의 영광스런 재림을 직접적인 어휘로 묘사하고 있다.
루카 복음 21장 25절과 26절은 종말에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반면에, 21장 27절은 그리스도께서 권능과 큰 영광으로 오시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사실 21장 27절은 다니엘서 7장 13절과 14절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구절로서
'사람의 아들'(인자,人子)의 재림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모습은 승천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사도1,9~12),
하늘로 올라가실 때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재림 때에도 동일하게 재현될 것임을 보여
준다.
한편 루카 복음 21장 28절의 '이러한 일들'로 번역된 지시 대명사 '투톤'(tuton;these
things)이 무엇을 가리키는 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많은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나타나는 우주적 징조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재림 시기의 정확한 때와 시간을 알 수 없지만, 말씀에 예언된
나타나는 징조들을 통해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재림의 시간에는 사람들이 극단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일텐데, 그것은 그 재림의
날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벌에 처해지는 두려움과 고통의 날이 될 것이며,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는 완전한 기쁨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로 권고하신다. 이 표현은
공관 복음의 병행 기사에서 루카 복음에만 나온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천사를 보내어 선택하신 이들을 모으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나온다(마태24,31; 마르13,27).
이러한 차이는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가 마지막 날에 하실 예수님의 일을 중심으로
기록하였고,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을 중심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말하자면,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의 시선은 하늘에 있었고, 루카 복음사가의 시선은
땅에 있었다.
루카 복음사가가 이렇게 기록한 것은 특별히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이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허리를 펴고'라는 뜻으로 번역된 '아나큅사테'(anakypsate; stand up)의
원형 '아나큅토'(anakypto)는 '스스로 일으키다','치켜 올리다'는 뜻이다.
그러나 비유적으로는 사람의 정신이나 원기를 '돋우어주다','고무시키다'는 뜻도 있다.
그리고 '들어라'로 번역된 '에파라테'(eparate; lift up)의 원형 '에파이로'
(epairo)는 자신의 신체의 일부, 즉 '손'(1티모2,8)이나 '머리'등을 '높이 들어올리다'는
뜻이다.
따라서 세상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징조를
볼 때, 신앙인들은 머리를 들고 그 징조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주님의 재림의 때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믿지 않는 이들은 세상의 마지막 때에 두려움으로 숨을 곳을 찾게 될 것이지만,
신앙인들은 그 때에 세상의 모든 것에 미련을 두지 말며 세상적인 관심을 내려놓고,
오로지 도래할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새롭게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고 희망을 가지라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