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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왕모(西王母)
서왕모는 초기의 죽음의 신에서 생명의 신으로 변화고 마침내 미의 여신으로 변하게 되는데, 초기의 서왕모는 다소 살벌하게 묘사되어 있다. <산해경>에 따르면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모습을 한 여신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중국의 서쪽 끝에 있는 신령스러운 곤륜산(昆侖山)의 정상에 있는 요지(瑤池)라는 아름다운 호숫가에 살고 있다고 하기도 하고, 옥산(玉山)이라는 곤륜산의 한 봉우리에 살고 있다고도 했다.
곤륜산(昆侖山ㆍ崑崘山)은 중국의 전설에서 멀리 서쪽에 있어 황허강[黃河]의 발원점으로 믿어지는 성산(聖山)으로, <산해경>에서는 '서해(西海)의 남안, 유사(流沙)의 언저리, 적수(赤水)의 뒤, 흑수(黑水)의 앞에 큰 산이 있는데 이름하여 곤륜산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녀의 용모는 사람과 비슷하지만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의 이빨(虎齒)를 지녔으며, 쑥대머리(蓬髮)에 비녀(華勝)을 꽂고 휘파람도 잘 불고 다녔다고 한다.
그녀의 시중꾼들은 곤륜산 서쪽 삼위산(三危山)이라는 봉우리에 살았는데 인간이 아니라 세 마리의 파랑새(靑鳥)가 있었는데 주로 서왕모의 음식을 조달하는 일을 맡았으며, 세발 달린 새가 한 마리 또 있었는데, 이 새는 그 밖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서왕모는 과연 그 모습답게 하는 일도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그녀는 하늘에서 내리는 재앙과 돌림병과 같은 무시무시한 일들과 더불어 코를 베거나 손발을 자르는 등의 다섯 가지 잔인한 형벌에 관한 기운을 관장하는 여신이었던 것이다.
왜 서왕모는 이렇게 살벌한 일을 담당하는 여신이 되어야만 했을까? 그것은 고대 중국에서 서쪽이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다. 서쪽은 동쪽과는 반대로 해가 지는 곳으로서 어둠과 죽음의 땅이다. 그래서 재앙과 형벌 등 죽음과 상관된 일들을 서쪽의 여신 서왕모가 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서왕모는 음산한 죽음의 여신만은 아니었다. 죽음을 관장했기에 그녀는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힘, 곧 영생과 불사의 능력을 지닌 생명의 여신으로도 아울러 간주되었다. ‘산해경’에 의하면 서왕모가 살고 있는 곤륜산에는 불사의 열매가 열리는 나무(不死樹)가 자라고 서왕모가 그 주인이었다. 서왕모는 이 불사약을 아홉 태양을 쏜 활의 신이며 항아(嫦娥)의 남편인 예(羿)에게 주기도 한다.
후기로 갈수록 죽음과 생명의 여신 서왕모는 미의 여신으로 거듭난다. 주(周)때 목왕(穆王)이라는 임금이 여덟 필의 준마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 곤륜산에 머물다. 젊고 예쁜 여신 서왕모를 만나 사랑에 빠져 고국에 돌아갈 일을 잊었다 한다.
그리고, 동왕공(東王公)이라는 남편 신을 두게된다. 이것은 처녀신이었던 여와가 후일 복희(伏犧)와 부부관계에 놓이게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 관념의 침투가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고 음양오행설에 의해 짝을 맞추려는 의도의 산물이기도 하다. 서왕모의 열렬한 팬은 한무제(漢武帝)였다. 기원전 4, 5세기경에 이루어진 작자미상의 소설 ‘한무제내전(漢武帝內傳)’에 의하면 한무제는 사당을 짓고 치성을 드리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여 서왕모의 강림을 기원하였다.
한나라 때의 서왕모
* 시중꾼이 세 마리 파랑새가 주위에 있다.
산동성의 한나라 화상석에서
지성이면 감천이었던지 마침내 칠월칠석날 서왕모가 아홉가지 빛깔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천상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삼십 세쯤 되어 보이는 미녀였고, 두 명의 예쁜 시녀가 모시고 있었다. 아마 이 시녀들은 앞서의 파랑새들이 변신한 것이리라.
한무제가 불사약을 간청하자 서왕모는 불사의 복숭아(仙桃)를 내려 주었다. 이 선도는 서왕모가 관리하는 반도원(蟠桃園)이라는 복숭아나무 밭에서 딴 것으로 이곳의 복숭아 나무는 3천 년 만에 꽃이 피고 다시 3천년 만에 열매를 맺으며 그것을 한 개라고 먹으면 1만8천 살까지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서왕모는 이 선도를 주면서 한무제 곁에 있는 동방삭(東方朔)을 보고 그가 몇 차례나 자신의 궁궐에 와서 복숭아를 훔쳐갔노라고 책망한다. 원래 동방삭은 별의 정령이었는데 잠시 인간세상에 와서 한무제의 신하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먹어 오래 오래 살았기에 “삼천갑자 동방삭“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明나라 吳偉의 동방삭투도도(東方朔偸桃圖)
서왕모에 대한 숭배는 이후 당(唐)대에 이르러 다시한번 크게 일어났다. 이때에 서왕모는 주목왕이나 한무제 같은 고귀한 신분들이나 만날 수 있는 숭고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그녀를 통해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보다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는 여신으로 변모해 있었다. 시인들은 공공연하게 그녀에 대한 연애감정을 노래하기도 했고, 그녀를 사랑의 여신으로 찬미하기도 했다. 세 마리 파랑새 역시 이 때에 사랑의 메신저로서 애정시에 자주 등장하였다. 서왕모는 당시(唐詩)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조선시대 시인들의 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도연명은 자신의 소속한 바람을 서왕모에게 이렇게 노래했다.
훨훨 나는 세마리 파랑새,
털빛도 기이하고 고와라.
아침에는 왕모님 시중 들고,
저녁이면 삼위산엘 돌아오지.
나는 이 새들을 통해,
왕모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
사는 동안 달리 바랄 것은 없고,
그저 술 있고 오래 살았으면……
[출처] 서왕모(西王母), 생사와 미의 여신
산해경에 서왕모에 관련된 기록이 보이는데, 다음과 같다
1. 다시 서쪽으로 350리를 가면 옥산이라는 곳인데 이곳은 서왕모가 살고 있는 곳이다. 서왕모는 그 형상이 사람 같지만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 이빨을 하고 휘파람을 잘 불며 더부룩한 머리에 머리꾸미개를 꽂고 있다. 그녀는 하늘의 재앙과 오형을 주관하고 있다. (서차삼경)
2. 서왕모가 책상에 기대어 있는데 머리꾸미개를 꽂고 있다. 그 남쪽에 세 마리의 파랑새가 있어 서왕모를 위해 음식을 나른다. 곤륜허의 북쪽에 있다. (해내북경)
3. 서해의 남쪽, 유사의 언저리, 적수의 뒷편, 흑수의 앞쪽에 큰 산이 있는데 이름을 곤륜구라고 한다.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의 몸인데 꼬리에 무늬가 있으며 모두 흰 신이 있어 여기에 산다. 산 아래에는 약수연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바깥에는 염화산이 있어 물건을 던지면 곧 타버린다. 어떤 사람이 머리꾸미개를 꽂고 호랑이 이빨에 표범의 꼬리를 하고 동굴에 사는데 이름을 서왕모라고 한다. 이 산에는 온갖 것이 다 있다.
목천자전에 주 목왕이 서쪽으로 가 곤륜산에 이르러 서왕모를 만나 사랑했다고 하고, 한무제내전에 한무제가 서왕모를 보고자 빌었더니 칠월 칠석에 서왕모가 아홉 빛깔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내려왔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또한 서왕모가 불사약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불사수라고도 하고 천도복숭아라고도 한다. 예가 항아의 바가지에 비위를 맞춰주려고 곤륜산에 가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받았다고 한다. 역시 한무제내전에 한무제가 불사약을 구했더니 서왕모가 동방삭이 자신의 궁궐에서 복숭아를 훔쳐갔다고 답했다 한다.
왕모의 요지에서 화려한 연회가 시작되니왕모요지기석개(王母瑤池綺席開)
자줏빛 구름 노란 안개 퍼지며 누대를 감싼다. 자운황무쇄정대(紫雲黃霧鎖亭臺)
아름다운 꽃과 나무, 화려하게 장식한 누각으로 신선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들어온다. 어떤 이는 학을 타고, 또 어떤 이는 용을 타고 들어온다. 선계의 파티는 곧 시작될 것이다. 이 요지의 연회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시와 판소리 가사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며 그림의 소재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이 요지연의 주재자가 바로 서왕모이다. 서왕모는 전국시대(BC 403~221)를 전후한 시기부터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한 대(한대 BC 202~AD 220)를 거치며 여러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목천자 서왕모를 만나다
요지연도(瑤池宴圖) 부분
주(周)의 목왕(穆王)은 젊어서부터 신선의 도를 좋아하여 늘 전설상의 제왕, 황제(黃帝)처럼 전국을 주유하고 싶어 했다. 이에 말을 잘 다루기로 유명한 조보(造父)에게 여덟 마리 준마가 끄는 수레를 몰도록 하여 서쪽으로 달려 갔다. 그는 요지에서 서왕모를 만났고,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목왕은 너무도 즐거운 나머지 돌아가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결국 국내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빨리 돌아가 진압했다.
서왕모 하면 이름부터 서쪽을 주관하는 여신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서왕모와 ‘서역(西域)’과 관련이 없었으며, 특히 그녀의 거처인 ‘곤륜산’ 역시 후대에 덧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한 대 이후로 사람들은 서왕모가 서역에 거처한다고 생각했다. 사마천(司馬遷)은 서왕모가 안식(安息, 파르티아, 오늘날의 이란지역)으로부터 수천 리 떨어진 조지(條枝)라는 곳에 산다고 하였다.
<한서(漢書)>는 금성군(金城郡, 오늘날의 간쑤성)에 서왕모의 석실이 있다고 하였다. 한 대 무제가 서역을 경영하기 전까지 서역은 미지의 세계였다. 바다에 접한 동쪽과는 달리 서쪽에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고, 저 사막 건너에는 중국과 다른 귀한 물건들이 가득한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서쪽으로 향했던 주(周) 목왕은 서역으로 가고 싶어 했던 한 대 사람들의 용망이며, 서왕모는 바로 그 욕망이 지향했던 서역이 아니었을까?
하무제 서왕모를 만나다
한의 무제(武帝)는 즉위 후 명산대천과 오악(五岳)에 기도를 올리며 신선이 되기를 기원했다. 여선(女仙) 중 한 명이 무제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서왕모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서왕모는 기원전 110년 7월 7일 장안(長安)의 궁전으로 내려와 며칠간 목욕재계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무제와 만났다. 서왕모는 곤륜산으로부터 가져온 복숭아 일곱 개를 꺼내 네 개는 무제에게 주고, 세 개는 자신이 먹었다. 무제가 복숭아를 먹고 씨앗을 챙져두자 서왕모는 그 이유를 물었고, 무제는 나중에 심고자 한다고 말했다. 서왕모가 이 복숭아는 3천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데다가, 중원 땅은 척박하여 심어도 자라지 못한다고 말해주었다. 서왕모는 시녀들에게 선계의 음악을 연주하도록 하였다. 무제가 신선이 되는 비결을 묻자 서왕모의 시녀 상원부인이 “당신은 천성이 난폭하고 음탕하며 사치를 즐기고 잔혹하며 남을 해치기를 좋아하여 신선이 결코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무제는 서왕모에게 애걸하며 가르침을 따라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며, 신선이 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간청했다. 결국 서왕모는 신선이 되는 방책과 비결을 전수하고 천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무제는 서왕모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 정벌전쟁을 일으켜 백성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서왕모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으며 비결도 불에 타 없어져 버렸다.
서왕모는 장생을 주관한다고 생각했다. 3천년마다 열리는 복숭아의 주인도 서왕모였으며, 예(예) 부인 항아(姮娥)가 달 속에서 두꺼비로 변했던 이유도 서왕모의 불사약을 훔쳤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서왕모는 한나라 사람들의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한 대인들은 조상의 무덤에 서왕모를 조각하여, 사후에도 영원한 생명력을 간직하기를 기원했다. 심지어 전한 애제(哀帝) 건평(建坪) 4년(BC 1년)에는 서왕모 광풍이 불기도 하였다. 관동(關東) 일대의 백성들이 서왕모의 배결을 전수받았다며 각지를 돌며 장안에까지 들어왔다. 이들은 서왕모에게 제사를 올렸으며 밤이 되면 횃불을 들고 지붕 위에 올라가 북을 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서왕모, 두 얼굴을 가진 여인
서왕모가 무제의 궁궐에 강림했을 때, 그녀는 황금빛 적삼을 입고 빼어난 미모와 맑고 온화한 미소를 지닌 30대 여성이었다. 하지만 화상석에 나타난 서왕모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풍채가 있고 날개가 달려 있으며 이따금 호랑이와 같은 맹수를 타고 등장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호랑이의 이빨을 갖고 표범의 꼬리를 갖고있는 괴수의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명계(冥界)에서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는 심판자, 또는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선녀로 서왕모는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환상적인 장면에서는 보다 아름다운 여성이 등장하기를 희망하며, 무언가 나를 움직일 수 있는 자라면 나를 압도할 수 있는 외모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2천년 전이나 오늘이나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서왕모는 “천모낭낭(天母娘娘)” 혹은 “왕모낭낭(王母娘娘)”이라 불리며 여전히 중국인들로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타이완을 포함하여 중국 각지의 왕모사(王母祠)에서는 장수를 축원하는 사람들의 기도가 계속되고 있다.
- 이태희,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소식, 2008년 07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