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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돈 내놔도 '삼성 거대공장' 못 당해…친일국·베트남서 '한국 시프트' 진행되는 이유 / 7/12(금) / 프레지던트 온라인
베트남 사람들은 일본을 어떻게 보는가. 「일본인이 모르는 베트남의 진실」(후소샤 신서)을 쓴 카와시마 히로유키씨는 「일본에 호의를 두는 베트남인은 많지만, 경제면에서는 「끝난 나라」라고 간주되게 되었다. 한국·삼성전자의 휴대 공장이 생기고 상황이 바뀌었다」라고 한다 ―― .
■ 베트남인의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은 친일국이라고 해도 좋다. 학교에서는 1945년 북부의 기근은 일본 제국주의자가 가져온 것이라고 배우지만, 그것을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한 토막으로서 배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본과 마찬가지로 서민들은 역사교과서의 상세한 기술은 기억하지 못한다. 일부 인텔리들은 기억하지만 그 인텔리들도 학교에서 배우는 공산당 사관에 의문을 갖고 있는 듯하고 일본을 악당으로 여기지는 않는 듯하다. 그래서 역사교육이 반일을 낳고 있는 중국이나 한국 같은 상황은 아니다.
일본은 베트남의 최대 ODA 공여국이었기 때문에 그 기억이 더 강하다. 일본은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과 공항으로 통하는 다리와 도로를 건설하고 있어 그에 대한 감사가 더 크다. 노동연수 등으로 일본에 와서 일한 적이 있는 사람도 대부분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 송출기관-경찰 유착
그러면서도 베트남 송출기관들이 많은 돈을 걷고 있는 것에 앙심을 품고 있다.
일본으로 노동연수를 가기 위해서는 100만엔 정도의 비용이 든다. 일본에 돈 벌러 가고 싶은 농촌에 사는 젊은이들이 그런 큰 돈을 갖고 있을 리도 없고, 많은 돈을 빚져야 한다. 많은 빚을 안고 일본에 오는 것이 연수생 일부가 일본에서 범죄로 치닫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송출기관은 지방경찰과 연계돼 있다고 하니 폭리를 취하는 것에 대해 중앙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앞서 AIC그룹의 냥 회장의 부패 사건을 언급했지만, AIC는 송출 사업도 실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그녀에게 욱일소수장을 줬는데 그녀는 베트남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 송출사업 스캔들
다음은 필자의 사추이다.
정 서기장과 그 주변은 송출기관을 운영해 서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미인 경영자를 체포하면 서민들이 갈채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공안 출신인 진 총리와 사이가 좋았다. 배후에 진 총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송출 사업을 크게 확장할 수 있었다.
서기장 주변은 이 사실을 알고 진 총리의 정치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냥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것은 수상과 미인 경영자와의 불륜이라고 하는, 누구나 달려드는 스캔들로 발전했다. 불륜이 사실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른다. 스캔들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아도 된다.
정 서기장 주변에 있는 공산당 관료들은 이 일대 정보 조작에 능하다. 서민들의 원성이 자자한 냥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함으로써 정 서기장의 인기는 높아졌고 진 총리는 실속했다.
송출기관은 다수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은 합법이다. 그래서, 냥에 대해서도 10년이나 전의 병원에의 기재 도입에 관련되는 독직으로 체포 영장을 받았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되면 그에게 욱일소수장을 준 일본 정부의 판단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 외교에는 이 근처의 기미를 읽을 때까지의 능력은 없다. 노동연수생 배출에 기여했다고 해서 욱일소수장을 주고 말았다.
다만 그녀가 일본으로부터 욱일소수장을 받은 것을 아는 베트남인이 거의 없으니 이 건으로 일본의 평판이 떨어졌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베트남인은 일본(日本) 훈장 따위에 관심이 없다.
■ 베트남서 한국 위상 높아지는 이유는
베트남을 얘기하려면 한국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베트남에서 한국은 투자나 무역에서 일본을 훨씬 뛰어넘는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현재 베트남에 약 20만 명의 한국인이 체류하고 있다. 일본인 체류자는 약 2만 명이다. 다만 옛날부터 많은 한국인이 베트남에 체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5년 정도 전에 삼성이 하노이의 동쪽의 박닌성에 거대한 공장을 건설한 부근으로부터, 그 수가 단번에 증가했다.
여기에는 한국의 국가전략과 관련이 있다. 21세기 들어 국력이 신장한 한국은 해외로 진출하려 했다. 우선 한국은 중국에 진출했다. 중국은 이웃 강대국이고 경제적으로도 기회가 있다. 다만 중국인들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을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고, 한국의 기술 수준이 중국을 크게 앞서는 시기에도 한국 기업들은 중국으로부터 각종 괴롭힘을 당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가른 일본인과 달리 중국인의 본질을 잘 알고 있다. 약할 때는 서툴게 나오지만, 강해질 때는 교만해진다. 앞으로 중국의 기술 수준이 한국을 따라붙으면 더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중국에 계속 진출해도 한계가 있다.
그렇게 생각한 한국은 일찌감치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취했다. 그것이 삼성의 베트남 진출이었다. 15년 전쯤 일본 기업들은 축족을 중국에 두고 있었다. 베트남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는 등의 전략은 어처구니없는 것처럼 보였다.
■ 한국이 '인연의 역사'가 있는 베트남을 선택한 이유
한국은 베트남을 택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베트남에 화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은 화교가 경제의 실권을 쥐고 있다. 거기에 한국인이 끼어들기는 쉽지 않다. 태국에서 화교의 영향력은 이들 국가에 비해 약하지만 이미 일본이 진출해 있다. 그 결과로 한국은 베트남을 선택했다.
한국은 베트남을 선택했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인에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경험이지만 현재 하노이에는 한국인이 많기 때문에 음식점 등에서 '한국인?'이라고 묻는 경우가 있다. 자신은 일본인이라고 대답하면 대체로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서투른 영어로 '한국인은 싫지만 일본인은 좋다'는 등의 말을 듣기도 한다.
그 이유는 다양한 것 같다. 한국인의 행동이 중국인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베트남전의 기억에 닿는다.
베트남전 때 한국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에 파병했다. 한국병은 남베트남 마을에서 여러 차례 학살사건을 일으켰다. 또 한국병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 생긴 아이를 한국군이 철병할 때 방치해 놓아 돌보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 아이들은 라이다이한이라고 불렸고, 차별과 빈곤에 시달렸다. 이 같은 베트남전쟁 때 한국인의 행동은 베트남인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베트남은 이 문제에 대해 한국을 비난하거나 배상을 청구하지 않고 있다. 베트남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 그것은 프랑스나 미국과의 싸움만이 아니다. 이 책(<일본인이 알지 못하는 베트남의 진실>)에 썼듯이 중국과 여러 차례 싸워왔다. 그 결과로 전쟁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다.
■ 삼성 거액 투자로 무역수지 흑자
1979년 중월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중국군이 국경 부근에서 베트남인 마을을 습격해 학살사건을 일으킨 것은 이미 말했다. 베트남인들은 전쟁에 학살은 따르는 것이라는 감각을 갖고 있다.
또 라이다이한의 문제도 군대는 젊은이들로 구성되니까 군대가 진주해 오면 그런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비극이기는 하지만 그에 대해 일일이 보상을 요구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베트남 정부는 한국 정부에 사과도 배상도 요구하지 않고 있다.
한 베트남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일본과 한국 사이의 위안부 문제가 화제가 되었는데, 그는 한국인들이 베트남 전쟁 중 자신들이 한 일을 선반에 올려놓고 일본을 공격하고 있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이처럼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삼성이 거액의 투자를 하고 하노이 북쪽에 공장을 지어준 것은 감사하다. 그 감사는 서민보다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더 강한 것 같다. 그것은 삼성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휴대전화를 수출함으로써 무역수지가 흑자를 냈기 때문이다.
■ 민간투자 적은 일본이 '끝난 나라' 취급받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베트남은 봉제업과 신발 제조 등이 유명했고, 그들의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벌어들이는 외화는 그리 많지 않았다. 베트남의 경상수지는 적자 추세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것은 돈의 약세를 초래하므로, 베트남 정부는 인플레이션 억제의 관점에서 그 대응에 고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삼성 공장이 생기자 경상수지가 흑자를 내면서 정책의 폭이 넓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 정부는 한국에 감사하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을 싫어하고 일본인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다. 그런 베트남인이지만, 최근, 투자액에 있어서 한국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일본을 바보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은 끝난 나라다」라고 뒷담화한다. 어느 나라로부터 존경을 계속 받으려면 그 나라로부터 경제적으로 계속 감사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국제 관계에 있어서의 영원한 진리이다. 친일국 여부 등 별 의미가 없다.
1인당 GDP가 4000달러를 넘고 있어 베트남은 더 이상 JICA의 시대가 아니다. 일본 기업들은 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JICA의 프로젝트를 따라가면 확실히 돈을 번다. 안심이다. 그런 마음으로 베트남에 왔었기 때문에, JICA의 시대가 아니게 되자 투자도 줄어버렸다.
현재 베트남은 JICA가 아닌 민간의 투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일본의 라이벌은 한국이다. 이 두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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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시마 히로유키(川島博之) / 베트남 빈그룹 주석 경제고문
1953년생. 1983년 도쿄대학 대학원 공학계 연구과 박사 과정 학점 취득 퇴학.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 조수, 농림수산성 농업환경기술연구소 주임연구관, 도쿄대 대학원 농학생명과학연구과 준교수를 거쳐 현직.Martial Research &Management Co. Ltd., Chief Economic Advisor.공학박사. 전문은 개발경제학. 저서로 중국 조선 베트남 일본 극동아시아의 지정학(이쿠호샤), 호적 아파르트헤이트 국가 중국의 붕괴 시진핑의 디지털 문화 대혁명(모두 고단샤+신서), 식량위기를 부추겨서는 안 된다(문예춘추), 너무 만든 것이 일본의 농업을 망친다(니혼게이자이신문출판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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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빈그룹 주석 경제고문 카와시마히로유키
https://news.yahoo.co.jp/articles/19eba8573919a5b73e93726ffd8853f1464d6891?page=1
日本がカネを出しても「サムスンの巨大工場」にはかなわない…親日国・ベトナムで"韓国シフト"が進む理由
7/12(金) 8:17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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プレジデントオンライン
※写真はイメージです - 写真=iStock.com/BrianScantlebury
ベトナム人は日本のことをどう見ているのか。『日本人の知らないベトナムの真実』(扶桑社新書)を書いた川島博之さんは「日本に好意を寄せるベトナム人は多いが、経済面では『終わった国』と見なされるようになった。韓国・サムスン電子の携帯工場ができて状況が一変した」とい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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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ベトナム人の多くが日本に良い印象を持っている
ベトナムは親日国と言ってよい。学校では1945年の北部の飢饉は日本の帝国主義者がもたらしたものだと習うが、それを繰り返し教えられているわけではない。歴史の一コマとして習っているだけだ。
そして日本と同じで、庶民は歴史教科書の詳細な記述など覚えていない。一部のインテリは覚えているが、そのインテリも学校で習う共産党史観に疑問を持っているようで、日本を悪者とは思っていないようだ。だから歴史教育が反日を生んでいる中国や韓国のような状況にはない。
日本はベトナムの最大のODA供与国であったことから、その記憶の方が強い。日本はハノイのノイバイ空港や空港に通じる橋や道路を建設しており、それに対する感謝の方が大きい。労働研修などで日本に来て働いたことのある人も、その多くは日本に良い印象を持っている。
■送り出し機関と警察との癒着
その一方で、ベトナムの送り出し機関が多くのお金を徴収していることに恨みを抱いている。
日本に労働研修に行くためには100万円程度の費用がかかる。日本に出稼ぎに行きたいと考えている農村に住む若者がそんな大金を持っているはずもなく、多くは借金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多額の借金を抱えて日本に来ることが、研修生の一部が日本で犯罪に走る原因の一つと言われている。
送り出し機関は地方の警察と結び付いていると言われており、暴利を貪っていることについて中央もコントロールできていないようだ。先にAICグループのニャン会長の汚職事件に触れたが、AICは送り出し事業も行っていた。だから日本政府は彼女に旭日小綬章を与えたのだが、彼女はベトナム人の怨嗟の的になっていた。
■送り出し事業を巡るスキャンダル
以下は筆者の邪推である。
チョン書記長とその周辺は、送り出し機関を経営して庶民から恨みを買っている美人経営者を逮捕すれば、庶民が喝采すると考えたはずだ。そして彼女は公安出身のチン首相と仲が良かった。背後にチン首相がいたために、彼女は送り出し事業を大きく拡張することができた。
書記長周辺はそのことを知り、チン首相の政治力を弱めるためにニャンに逮捕状を出した。それは首相と美人経営者との不倫という、誰もが飛びつくスキャンダルに発展した。不倫が事実であったかどうかは、今もよく分からない。スキャンダルは事実に基づかなくてもよい。
チョン書記長周辺にいる共産党の官僚はこの辺りの情報操作に長けている。庶民の怨嗟の的であるニャンに逮捕状を出したことで、チョン書記長の人気は高まり、チン首相は失速した。
送り出し機関は多数存在しており、それは合法である。だから、ニャンについても10年も前の病院への機材導入に関わる汚職で逮捕状をとった。
このような事情を知ってしまうと、彼女に旭日小綬章を与えた日本政府の判断はいかがなものかと思ってしまう。日本外交にはこのあたりの機微を読むまでの能力はない。労働研修生の送り出しに貢献してくれたということで、旭日小綬章を与えてしまった。
ただ、彼女が日本から旭日小綬章を貰ったことを知っているベトナム人がほとんどいないから、この件で日本の評判が落ちたということもないようだ。ベトナム人は日本の勲章などに興味はない。
■ベトナムで韓国の存在感が高まるワケ
ベトナムを語るには、韓国について語らなければならない。ベトナムにおいて韓国は、投資や貿易の面で日本を遥かに上回る存在感を示している。現在、ベトナムに約20万人の韓国人が滞在している。日本人の滞在者は約2万人である。ただ、昔から多くの韓国人がベトナムに滞在していたわけではない。15年ほど前にサムスンがハノイの東のバクニン省に巨大な工場を建設したあたりから、その数が一気に増えた。
これには韓国の国家戦略に関係している。21世紀に入って国力が伸長した韓国は、海外へ進出しようとした。まず、韓国は中国に進出した。中国は隣の大国であり、経済的にもチャンスがある。ただ、中国人は朝鮮半島に住む人々を下に見る傾向があり、韓国の技術水準が中国を大きく上回っている時期でさえ、韓国企業は中国から各種のいじめを受けた。
朝鮮半島に住む人々は、海を隔てた日本人と異なり中国人の本質をよく知っている。弱い時は下手に出るが、強くなると傲慢になる。今後、中国の技術水準が韓国に追い付いてくると、もっと虐められるに違いない。中国に進出し続けても限界がある。
そう考えた韓国は、いち早く「チャイナ・プラス・ワン」戦略を取った。それがサムソンのベトナム進出であった。15年ほど前、日本企業は軸足を中国に置いていた。ベトナムに本格的に進出するなどという戦略は馬鹿げたことのように思えた。
■韓国が「因縁の歴史」のあるベトナムを選んだ理由
韓国はベトナムを選んだ。その第一の理由は、ベトナムに華僑がいなかったためである。インドネシア、マレーシア、ミャンマー、フィリピンは、華僑が経済の実権を握っている。そこに韓国人が入り込むことは容易ではない。タイにおける華僑の影響力はそれらの国に比べて弱いが、既に日本が進出している。その結果として、韓国はベトナムを選んだ。
韓国はベトナムを選んだが、ベトナム人が韓国人に良い印象をもっているわけではない。筆者の経験であるが、現在のハノイには韓国人が多いので、飲食店などで「韓国人?」と聞かれることがある。自分は日本人だと答えると、概ね好意的な態度を示してくれる。つたない英語で「韓国人は嫌いだが、日本人は好きだ」などと言われることもある。
その理由は多岐にわたるようだ。韓国人の振る舞いが中国人に似ているからと言う人もいる。そしてベトナム戦争の記憶に行き着く。
ベトナム戦争時に韓国は、米国の要請に応じてベトナムに派兵した。韓国兵は南ベトナムの村で何度か「虐殺事件」を引き起こしている。また、韓国兵とベトナム女性の間にできた子供を韓国軍が撤兵する際に置き去りにしてしまい、面倒を見なかったとも言われる。その子供たちはライダイハンと呼ばれて、差別と貧困に苦しんだ。このようなベトナム戦争時における韓国人の振る舞いは、ベトナム人の心の中に残っている。
しかし、ベトナムはこの問題に対して韓国を非難したり賠償を請求したりしていない。ベトナムの歴史は戦争の歴史であった。それはフランスや米国との戦いだけではない。本書(『日本人の知らないベトナムの真実』)に書いたように中国と何度も戦ってきた。その結果として、戦争になればどんなことが起きるのかよく知っている。
■サムスンの巨額投資で貿易収支が黒字化
1979年の中越戦争において、勝利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中国軍が国境付近でベトナム人の村を襲って虐殺事件を起こしたことは既に述べた。ベトナム人は戦争に虐殺は付きものだという感覚を持っている。
またライダイハンの問題も、軍隊は若者で構成されるから軍隊が進駐してくればそのようなことは必ず起きる。悲劇であるが、それに対していちいち補償を要求すべきものでもないと考えているようだ。実際、ベトナム政府は韓国政府に謝罪も賠償も求めていない。
あるベトナム人と話していた時に、日本と韓国の間の慰安婦問題が話題になったが、彼は、韓国人がベトナム戦争中に自分たちが行ったことを棚に上げて日本を攻撃していることに驚いていた。
このようにベトナム人は韓国人をよく思ってはいない。しかし、サムスンが巨額の投資を行い、ハノイの北に工場を造ってくれたことには感謝している。その感謝は庶民よりも政府関係者の間で強いようだ。それはサムスンの工場で作られる携帯電話を輸出したことによって、貿易収支が黒字化したからだ。
■民間投資の少ない日本が「終わった国」扱いされ始めた
それまでもベトナムは縫製業や靴製造などが有名であり、それらの輸出によって外貨を稼いでいた。だが、それらが稼ぐ外貨はそれほど多くなかった。ベトナムの経常収支は赤字傾向が続いていた。それはドン安を招くので、ベトナム政府はインフレ抑制の観点からその対応に苦慮していた。しかし、サムスンの工場ができると経常収支が黒字になり、政策の幅が広がった。その意味でベトナム政府は韓国に感謝している。
ベトナム人は韓国人を嫌い、日本人に好意を寄せている。そんなベトナム人だが、近年、投資額において韓国に遥かに及ばない日本を小馬鹿にする向きがある。「日本は終わった国だ」などと陰口を叩く。ある国から尊敬を受け続けるには、その国から経済面で感謝され続けなければならない。これは国際関係における永遠の真理である。親日国かどうかなど、あまり意味がない。
1人当たりのGDPが4000ドルを超えており、ベトナムはもはやJICAの時代ではない。日本の企業は「官」を頼りすぎる嫌いがある。JICAのプロジェクトについて行けば確実に儲かる。安心だ。そんな気持ちでベトナムに来ていたために、JICAの時代でなくなると投資も減ってしまった。
現在、ベトナムはJICAではなく民間の投資を待っている。そしてベトナムにおける日本のライバルは韓国である。この二つの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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川島 博之(かわしま・ひろゆき)
ベトナム・ビングループ主席経済顧問
1953年生まれ。1983年東京大学大学院工学系研究科博士課程単位取得退学。東京大学生産技術研究所助手、農林水産省農業環境技術研究所主任研究官、東京大学大学院農学生命科学研究科准教授を経て現職。Martial Research &Management Co. Ltd., Chief Economic Advisor。工学博士。専門は開発経済学。著書に『中国、朝鮮、ベトナム、日本 極東アジアの地政学』(育鵬社)、『戸籍アパルトヘイト国家・中国の崩壊』『習近平のデジタル文化大革命』(いずれも講談社+α新書)、『「食糧危機」をあおってはいけない』(文藝春秋)、『「作りすぎ」が日本の農業をダメにする』(日本経済新聞出版社)など多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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ベトナム・ビングループ主席経済顧問 川島 博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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