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방영돼 국내에도 소개된 형사물 '스타스키와 허치'의 허치 형사를 연기한 데이비드 솔이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부인 헬렌 스넬이 4일(현지시간) 고인의 죽음을 확인했다고 영국 BBC가 다음날 전했다.
고인은 스타스키 형사 역할을 맡은 폴 마이클 글레이저와 함께 1975년부터 1979년까지 91회 방영된 형사물을 인기 드라마로 만들었다. 둘이 늘 투닥거리지만 힘을 합쳐 절묘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매력으로 번뜩였다. 2004년 스타스키 역의 벤 스틸러와 허치 역의 오웬 윌슨 콤비 영화로 만들어졌다.
스틸러는 X에 원작 드라마의 한 장면 사진과 함께 "70년대 멋짐을 규정했다. 평안한 안식을 x"이란 글을 올렸다.
고인의 작품으로는 'Here Come The Brides', 'Magnum Force', 'The Yellow Rose', 'Salem's Lot' 등이 있다. 맨마지막 작품의 원작자인 스티븐 킹은 별세 소식을 듣게 돼 유감이라고 밝혔다.
고인은 영국 TV 'Holby City', 'Little Britain', 'Lewis' 등에 출연했으며, 2004년 영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 충연하면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거절한 일로 유명했다. 영국 일간 '선데이 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요즈음에는 누구라도 유명인이 된다. 솔직히 축하할 일이 하나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원래 가수였다가 배우로 전업했으며 다섯 차례나 결혼한 이력이 있다. 1980년대 임신 7개월째 아내였던 패티 카멜 셔먼을 구타한 혐의로 체포됐다. 첫 번째 범죄로 기소될 뻔했으나 범죄 예방 프로그램을 이수하겠다며 빠져나갔다. 나중에 자책한다며 여러 교도소를 돌며 가정폭력 범죄자들을 만나 체험담을 듣곤 했다.
1943년 8월 28일 시카고에서 태어난 고인의 본명은 데이비드 솔버그였다. 사우스 다코타주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 베를린을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친인 리처드 솔버그 박사는 역사와 정치학 교수이여 베를린 주둔 미군의 군종 임무를 맡았다.
고인은 배우로 두각을 나타내기 전 포크 가수로 활동하며 프랭크 자파, 더 버즈, 러빙 스푼풀 같은 스타들의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부친이 젊은 외교관을 교육하는 멕시코 대학에서 일하느라 그는 10대 시절을 그곳에서 지내며 음악에 관심을 가졌다. 급진적인 학생들로부터 기타를 배우게 됐고 멕시코 토속음악들을 배우게 됐다. 미국으로 돌아와 미니애폴리스 등에서 멕시코 풍의 노래들을 들려주며 제법 성공했다. 이 때 노래를 부르면서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고,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와 계약한 뒤 머브 거핀 쇼 같은 인기 토크쇼에서 재담을 떨기도 했다.
가면을 벗어던지자 오히려 인기가 떨어져 결국 연기자로 변신, 1960년대와 70년대 '스타 트렉', 'Here Come The Brides', 'Perry Mason', 'Johnny Got His Gun'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경찰 드라마 '매그넘 포스'의 존 데이비스 경관 역할로 형사물에 제격이란 평가를 받아 허치 형사 역할을 맡게 됐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엄청 뜨자 다시 음악에로 회귀, 1970년대 후반 4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두 차례 차지했다. 'Silver Lady'와 'Don't Give Up On Us'란 노래였다.
1977년 고인의 공연을 리뷰한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카메라를 손에 든 10대 소녀들이 무대로 돌진했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가정폭력 혐의로 체포되고 재활을 한다는 소식에 인기는 사그라들었고 1997년 자비를 들여 앨범 'Leave a Light On'을 내놓았다. 다섯 차례 결혼을 통해 여섯 자녀를 뒀다. 아 참, 글레이저는 어찌됐는지 BBC는 언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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