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개의 나무계단이 있는 집
박성현
한쪽 담이 움푹 꺼졌다 무릎까지 자란 잡초 옆에 새똥이 무례했다 똥을 눈 새는 기웃거리다 열일곱 개의 나무계단 뒤로 사라졌다 속초의 무거운 바닷바람을 이고 있는 기와에서 묵은눈이 녹았고 가끔 해가 기우는 곳을 향해 늙은 개가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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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지난 신문을 읽다가 바싹 말라버린 잉크에 코끝을 댄다
희미한 냄새지만 그곳에 ‘영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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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늦겨울 안쪽에 몸을 밀어 넣었다 내가 읽은 날씨는 나타나자마자 곧바로 사라져버렸는데, 혀에 닿을 때마다 나는 몹시 기울어지며 출렁거렸다 열일곱 개의 나무계단을 밀어내며 잡초가 맹렬히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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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가 터지기 직전에는 얼음투성이 손가락도 뜨거운 납을 삼킨 듯 고통스러워진다 지금 나는 속초의 밤 한 가운데 열일곱 개의 나무계단을 내려와 다시 거대한 해일 꼭대기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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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당신 곁에
희고 간결한 새 한 마리 앉아 있었다
계간 『시인수첩』 2018년 여름호 발표
박성현 시인
1970년 서울에서 출생.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同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2009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 현재 <서쪽> 동인이며 서울교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