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래의 人香萬里 ➏ 깡촌 초등학교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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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산(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남강(江)이 유유히 휘감아 흐르는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
이 고요한 산골짜기의 나지막한 길을 걷다 보면 세월의 깊이를 고스란히 간직한 옛 지수초등학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소박한 교정과 낡은 교실, 풋풋한 흙내음이 어우러진 이 마을은 마치 웨스트 버지니아의 목가적 풍경을 노래한
존 덴버의 ‘컨트리 로드’(Country Roads)를 떠오르게 한다.
현재는 진주 k기업가정신센터로 활용되는 이 학교는 단지 겉모습만으로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다.
수많은 사람과 역사가 켜켜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 흔적들은 마치 보석처럼 귀하고도 특별하다.
바로 이 작은 학교에 한국 경제를 일으킨 거목들의 비사(秘事)가 담겨 있다.
삼성,LG,GS,효성 창업주들 야망 키우던 곳...K-기업가정신 발원지
승산마을의 역사는 약 600년 전, 허씨와 구씨 가문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며 시작된다.
오랜 전통과 역사가 숨결처럼 흐르는 이 마을에서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GS의 허만정, 효성의 조홍제 등
한국 경제를 일으킨 1세대 기업인들이 유년 시절을 보냈다.
특히 이병철, 구인회, 조홍제 세 사람은 지수초등학교에서 함께 꿈을 키운 친구였다.
배고프고 고단했던 시절,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야망을 키웠다.
기업가정신을 공부하는 국내외 학자들과 기업인들은 어떻게 이 작은 산골마을 학교에서 동시에 4명의 창업주가 배출되었는지
신비롭게 바라본다.
특히 그들이 이룩한 성과는 지금도 경이롭게 회자된다.
2024년 8월 기준으로 삼성, LG, GS, 효성 4대 그룹의 연 매출액은 약 595조 원에 달한다.
이처럼 지수초등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의 공간에 머물지 않았다.
이 작고 소박한 학교는 창업주들에게 야망을 심어주고, 그들의 삶과 철학을 형성한 정신적 뿌리가 됐다.
여기서는 우국애민(憂國愛民)의 정신,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신념, 인본주의적 인재경영, 사회적 책임,
그리고 도전과 혁신의 가치가 싹텄다.
오늘날 이곳은 K-기업가정신의 발원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네 거상(巨商) 한꺼번에 배출된 배경...大유학자 조식선생의 실천유학 영향
승산마을은 예로부터 비옥한 땅과 외부로부터 숨겨진 지형 덕분에 큰 환란을 피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구한말에는 만석꾼 두 가구, 5천석꾼 두 가구 등 천석꾼 이상 가구가 총 16가구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1980년대 한국 100대 기업 중에도 이 곳 졸업생들이 제법 포함돼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는 승산마을이 단순히 한 지역의 역사를 넘어 한국 경제사의 한 축을 담당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산간벽촌의 이 작은 마을이 어떻게 기적처럼 부자마을로 자리잡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우선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물은 재물을 의미하는데 승산마을은 남강의 물줄기가 휘돌아드는 ‘재복의 땅’이다.
방어산과 남강이 주는 강한 기운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념과 이상을 공유하며 기업가 정신을 심어주었다.
이곳에서 자란 이들은 그 기운 속에서 미래를 꿈꾸고, 나눔과 협력의 가치를 배우며 성장했다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그러나 성공의 비결은 단순히 자연 환경에만 있지 않았다.
여기에는 특히 조선의 대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의 실천주의 유학(敬義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남명 선생은 여느 유학자들과 달리 학문을 단순히 책 속의 이론에 그치지 않고,
이를 행동으로 옮겨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은 인간의 도리를 바르게 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같은 실천적 유학의 철학은 승산마을 사람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고,
자신의 성공이 곧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는 길임을 깨닫게 했다.
어쨌든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점은 이곳 출신 창업주들이 단순히 성공에만 집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업을 확장하고 기업을 키우는 데만 급급하지 않았고,
국가와 민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바탕으로 사업보국의 길을 걸었다.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 같다”...k-기업가정신 탐구 줄이어
이렇듯 지수초등학교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에 머물지 않는다.
국내외 학자들은 이 학교가 단순히 교육의 공간을 넘어 k-기업가정신의 본질을 탐구하는 중요한 현장임을 깨닫고 있다.
이들은 삼성·LG·GS·효성의 1세대 창업주들이 한 시대, 한 지역, 그리고 한 작은 시골학교에서 교류하며 성장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사례라고 말한다.
몇몇 학자들은 그 배경과 맥락을 연구하며, 무엇이 이들을 글로벌 경제의 중심으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있다.
이들은 창업주들의 정신과 철학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2023년 설립된 진주 K기업가정신재단(이사장 정영수, 회장 김종욱)과
협력하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재단은 K-기업가정신의 유산을 보존하고 확산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세계중소기업연합(ICSB) 회장이자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교수인 아이만 타라비시는 이곳을 자주 방문하며
K-기업가정신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그는 한국 경제의 기적을 이끈 창업주들의 유산이 단순히 지역적 자산을 넘어 세계적인 연구 가치와 경제적 영감을 제공한다면서
이 시골학교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시대 초월한 창업주들의 유산, 세계를 향한 도전과 혁신의 상징
이 작은 산골 학교와 마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 신화를 넘어선다.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인본주의적 관점으로 사람을 대하고 인재를 양성하며,
나라를 위한 사업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했던 창업주들의 삶과 철학은 오늘날에도 생생한 교훈을 전한다.
그들이 걸어온 여정은 결국 한국과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었고, 도전과 혁신의 상징으로 우뚝 서 있다.
이제 이 마을은 단지 산업화를 이끌었던 기업가들의 고향에 머물지 않고,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세대 창업주들의 정신과 가치는 세대를 넘어 지속적으로 용기와 영감,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방향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