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관원장의 꿈을 해석
본문: 창세기 40장 1- 23절
아랍 속담에 "태양만 비추면 사막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밝은 태양만을 원하지만 태양만 계속되면 우리 인생은 사막이 되고 맙니다. 우리 인생이 촉촉하고 푸르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무지개를 좋아합니다. 그 화사하고 아름다운 무지개를 원한다면 소낙비를 각오해야 합니다. 소낙비가 없이는 결코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무지개와 같은 인생을 원한다면 때로는 아픔과 고통의 소낙비를 맞아야 하고 견디어야 합니다. 반드시 인내가 필요합니다. 오래 기다리고 기도하는 사람이 무지개를 보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9)
우리는 믿음으로 살려고 힘쓰는 중에도 때로 오랫동안 많은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오래 계속될 때 우리는 낙심하고 불신앙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깨닫고 확신함으로써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선하신 뜻을 따라 다스리십니다.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것을 아실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예비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형들에 의하여 미디안 대상들에게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오랜 노예 생활 끝에 주인에게 인정을 받는가했더니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왜 그런 일들을 당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극심한 고난을 오랫동안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처럼 기가 막힌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그를 팔아버린 형들이나, 억울하게 누명을 씌운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선하신 섭리 가운데서 자기를 붙들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만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만 붙들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요셉처럼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두 관원장의 투옥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기약도 없이 소망 없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믿음 좋고 의로운 요셉이 감옥에서 그렇게 고통을 당하게 하셨을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옥에서 요셉을 연단하사 장차 큰일을 감당할 수 있는 위대한 인물로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자리로 요셉을 인도하고자 하셨습니다. 만일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결정적인 순간에 바로 앞에 설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길을 선하하게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감옥에서 일어난 일들을 살펴봅시다. 요셉이 있던 감옥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로의 두 관원장, 즉 떡 맡은 관원장과 포도주를 맡은 관원이 그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 주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의 갇힌 곳이라」(1-3절) 고대 왕실에는 떡과 포도주를 맡은 관리가 많았는데, 그들을 관할하는 관원장들은 왕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었고 지위도 매우 높았습니다. 느헤미야도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왕의 포도주를 맡은 관원장으로서 왕의 전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있던 감옥에 들어온 이 두 사람은 바로가 신임하는 신하들이었는데 바로에게 범죄하여 감옥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바로에게 무슨 죄를 범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관원장이 투옥되었고, 요셉이 그들을 수종들게 되었으며, 그들이 꿈을 꾸게 되었고,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게 된 것은 모두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이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혀서 아무 소망도, 아무 대책도 없이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의 힘으로 감옥에서 나가는 일은 전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단 하나의 방법도 발견할 수 없는 곳에서 수천 가지 방법을 찾아내십니다. 모세의 경우를 봅시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크게 번성해가고 있을 때 바로는 히브리인 가정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바로 그러한 시대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들은 아이가 준수한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서 길렀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서 울음소리가 커지자 더 이상 아이를 숨겨서 기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나일강에 버리는 일 외에 그 어떤 대책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갈대상자에 아이를 담아 나일강에 띄어 보냈습니다. 사람에게는 그 이상의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공주로 하여금 모세를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속에 아이를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결국 공주는 모세를 자기의 아들로 삼아 애굽의 궁궐에서 기르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가장 안전한 곳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사람에게는 아무런 대책도 없을 때라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방법을 찾아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좌절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많은 일들이 닥쳐옵니다. 좋은 일만이 아니라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 모든 일들 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섭리와 무관한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이기도록 해야 합니다. 요셉이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2. 섬기는 자 요셉의 큰 특징의 중의 하나는 그가 늘 섬기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변함없이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로 집에 있을 때나,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있을 때나,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을 때나, 그의 섬기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애굽의 통치자가 되었을 때도 그의 섬기는 삶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바로와 애굽 사람들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형제들과 그들의 모든 가족들을 섬겼습니다. 그렇게 섬기는 태도는 요셉이 진정으로 성숙되고 위대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시간과 돈과 건강 등,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오직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래 남을 섬기기보다는 자신만을 위해 살고자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생을 그렇게 살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살아가지만 우리의 삶이 여전히 곤고하고 진정한 만족이 없는 것은 그것이 올바른 삶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자신만을 위해 살도록 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이렇게 남을 섬기는 것은 인생을 진정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들어줍니다.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이렇게 남을 섬긴다는 것은 타고난 본성과는 정반대되는 일이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노력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우리 힘으로는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으니라 아멘」(벧전4:10-11) 섬기는 삶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으로만 가능합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바로의 두 신하가 그 감옥에 들왔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으로 하여금 감옥에 들어온 바로의 신하들을 수종들게 했습니다. 요셉은 비록 감옥에 갇혀 석방될 기약도 없었지만 그들을 섬기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러한 요셉에게 하나님께서는 결정적인 기회를 주셨습니다. 바로의 신하들에게 문제를 주시고,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요셉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문제는 요셉만이 해결할 수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나 감옥에서나 항상 남을 섬기며 돕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처지는 한심하고 절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남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일을 통하여 감옥에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여유가 있고 문제가 없을 때만 남을 섬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형제를 더 잘 이해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서 남을 섬길 때 그 일을 통해서 나를 찾아오시고, 나에게 기회를 주시며, 엄청난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남을 돕고 섬기는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가 되십시오. 요셉은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 남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일을 통하여 감옥에서 나가 바로 앞에 서게 되었으며,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가지고 남을 돕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깨닫게 될 때 남을 섬기는 것은 부담과 손해가 아니라 축복과 특권이 됩니다. 요셉은 섬기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의 인생이 그렇게 풍성하고 아름다울 수 있었습니다. 섬기는 일은 우리의 인생을 진정으로 가치있고 풍성하며 복되게 만들어 줍니다. 섬기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대로 섬기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두 관원장의 꿈 감옥에 있던 바로의 두 관원장이 같은 시간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 때문에 큰 근심에 빠졌습니다.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몽조가 다르더라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5-6절) 이 두 사람이 꾼 꿈은 특이했습니다. 그들은 같은 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은 달랐지만 비슷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꾼 꿈의 구성이 같았던 것입니다. 문학에서는 이것을 플롯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내용의 전개방식을 가리킵니다. 두 사람이 꾼 꿈의 구성이 같았다는 것은 그 꿈을 주신 분이 같은 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가가 같다는 뜻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보통 꿈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들의 꿈은 그들의 미래의 운명과 관련된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꿈의 의미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에 깊이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아침에 그들을 섬기기 위해서 들어갔을 때 그들의 얼굴에는 근심 빛이 완연했습니다.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6절)
4.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관원장들의 기색이 안 좋은 것을 살펴 안 후에 요셉은 그들에게 사정을 물었습니다.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관원장에게 묻되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이르소서」(7-8절) 그들은 심각한 꿈을 꾸고서 해몽해 줄 사람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꿈을 꾸고서 해석해줄 사람이 없어 근심하고 있는 바로의 신하들에게 요셉은 그 꿈을 자기에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요셉의 말은 당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도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주제에 감히 누구의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나서는 것입니까? 그러나 요셉은 이 사람들이 심각한 꿈을 꾸었다는 말을 듣고, 그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꿈을 주셨다면 그 꿈에 대한 해석도 주실 것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요셉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섭리와 계획을 확신하는 데서 나왔습니다. 특히 꿈이라면 요셉이 전문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그에게 특별한 꿈을 주셨습니다. 그는 그 꿈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꿈은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요셉은 그 꿈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장차 중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을 사용하시고자 하신다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꿈을 받은 이후로 요셉은 쉬지 않고 그 꿈에 대해서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그가 말할 수 없는 절망과 고통스런 처지에 빠졌을 때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이렇게 꿈에 대해서 오랫동안 묵상하며 기도해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꿈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꿈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 깨닫는 데도 훈련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꿈을 꾸고 나서 근심하는 바로의 신하들에게 그 꿈을 자기에게 말해보라고 말한 것은 그만한 이유와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요셉은 자기가 그 꿈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애굽에서는 박수와 술객들이 꿈을 해석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꿈을 미래에 대한 암시나 신의 계시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감옥에서 꿈을 꾸었기 때문에 그들의 꿈을 해석해줄 사람이 없었고, 그것 때문에 더욱 근심하며 고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의 해석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꿈을 주셨으며, 그 꿈에 대한 해석도 자신에게 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요셉은 오랫동안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문제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문제를 해석할 수 있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문제에 대한 답을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세상에서 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성도는 모든 문제를 성경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땅히 모든 문제를 성경으로 해석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일이 닥쳐와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며 선하게 인도해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지라도 어려움 당하는 이웃을 돌아보며 섬기기를 쉬지 않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좌절시키거나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모든 일을 능히 이겨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즘 큐티 열심히 하고 계십니까? 당신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줄 아십니까? 더 나아가서 그 말씀으로 나의 삶을 해석하며, 나에게 닥쳐오는 모든 문제들을 해석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성경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을 주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지속적으로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그러므로 매일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매일 이렇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는 어떤 문제를 만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문제의 답을 깨달아갔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이 그를 연단하였다고 말씀합니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시105:17-19) 이 시대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어려움이 없고 완전해진 후 그들을 도우려한다면 한 사람도 도울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자신도 자주 여려움에 직면하기에 요셉의 삶은 중대한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성도 여러분! 어려움이 올 때 물러서지 맙시다.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그리고 오히려 남을 도웁시다. 그래서 어려움을 극복합시다.
5. 요셉의 해석 요셉은 꿈을 꾸고 근심하는 바로의 신하들에게 근심하지 말고 그들이 꾼 꿈을 자기에게 이야기해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붙잡고 늘 묵상해왔던 요셉은 이제 꿈에 대해서 전문가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의 신하들은 그들의 꿈을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바로의 신하들이 꾼 꿈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먼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봅시다. 「술 맡은 관원장이 그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9-11절)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들은 요셉은 즉시 그 꿈을 해석해주었습니다.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리니 당신이 이왕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같이 바로의 잔을 그 손에 받들게 되리이다」(12-13절)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이 꾸었던 꿈은 그가 석방되고 복직될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이 좋게 해석되는 것을 보고 떡 맡은 관원장도 요셉에게 자기의 꿈을 말했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길함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그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16-17절) 이 꿈에 대해서도 요셉은 즉시 해석을 해주었습니다. 「요셉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끊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18-19) 요셉의 해석은 조금도 불확실하고 애매한 점이 없이 명백하고 분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좋은 내용이든 나쁜 내용이든 숨기지 않고 분명하게 말해주었습니다. 사실 떡 맡은 관원장의 꿈에 대한 해석은 그대로 말해주기가 정말 난처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조금도 숨김없이 분명하게 해몽해주었습니다. 메시지를 그대로 선포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이 일을 명확하게 해야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들도 바로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요셉의 해석대로 모든 일들이 정확히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제 삼 일은 바로의 탄일이라 바로가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으로 머리를 그 신하 중에 들게 하니라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여 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20-22)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요셉은 어떻게 그들의 꿈을 그렇게 정확하게 해석할 수가 있었을까요? 이것은 그가 오랜 세월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꿈을 붙잡고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신하들에게 꿈을 주셨고, 그 꿈을 당신의 종 요셉으로 하여금 해석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6. 꿈에 대하여 창세기에는 꿈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옵니다. 본문에는 바로의 신하들이 꾼 꿈이 나오고, 다음 장에는 바로가 꾼 꿈이 나옵니다. 오늘 우리도 늘 꿈을 꾸며 살아갑니다. 이 꿈에 대하여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계시가 아직 미미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계시의 수단으로 꿈을 간혹 사용하셨습니다. 요셉의 꿈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특별한 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꿈은 의미가 심장하고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꿈꾸기를 사모하며, 꿈을 가지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늘 고민하며 연구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서 계시를 주시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완성된 계시로서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꿈을 사용하시지 않고서도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당신의 분명한 뜻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꿈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것은 건전하지 못한 자세입니다. 그러다 보면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습니다. 심지어는 사탄의 장난에 놀아날 수도 있습니다.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부터 꿈이나 천사 보기를 구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성경을 바로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왔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동안 나는 하나님의 길로 다니고 잘못된 데 빠지지 않는 줄 안다.」 꿈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성경이야말로 가장 풍성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삶에 대한 완전하고도 정확한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순종하는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7. 말씀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 요셉은 꿈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붙잡고 하나님과 교제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꿈은 하나님의 계시, 즉 오늘의 말씀과 같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인 꿈을 날마다 묵상하는 가운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묵상하는 사람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 말씀을 해석할 줄 알게 되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할 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모든 답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그에게 주셨던 꿈을 굳게 붙잡고 쉬지 않고 묵상했습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막연하게 생각되었던 것들이 점점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점점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왜 형들에 의하여 애굽으로 팔려오게 되었는지, 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야 했는지 조금씩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의 신하들이 감옥에 들어오게 되고 그들이 심상치 않은 꿈을 꾸고 걱정할 때, 요셉은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꿈을 해석해주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자기를 감옥에서 나가게 하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요셉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꿈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인 신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일마다 함께 모여 예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날마다 이 말씀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예배를 막연히 좋은 교훈의 말씀 듣는 시간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나에게 주시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현실만 볼 때는 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분명하고 구체적인 답을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꿈을 붙잡고 날마다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신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요셉의 꿈보다 훨씬 분명하고 구체적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말씀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세상에서 답을 구하느라 방황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말씀을 해석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깨닫고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진지하게 묵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절로 그냥 해석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깨달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 그 말씀으로 우리의 문제들을 해석하려면 우리가 그 말씀에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묵상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말씀 배우는 일을 사모하십시오. 소그룹으로 모여 말씀 나누는 일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말씀을 묵상하고 배우며 나눌 때, 그 말씀은 우리 눈앞에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문제들을 해석하고 답을 찾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오늘 당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소그룹에서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말씀을 나누면서 당신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8. 복직된 신하가 요셉을 잊음 요셉은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면서 그에게 감옥에서 나가거든 자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14-15절) 요셉은 이 모든 일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통하여 자기를 감옥에서 나가게 하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고난의 세월이 끝나는 줄로 알았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말대로 석방되고 복직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당연히 요셉을 석방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요셉의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여 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21-23절) 복직된 그 사람이 벌써 요셉을 잊어버렸다니 그것이 말이나 됩니까? 아마도 그 사람은 요셉을 평생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잊었다는 말은 요셉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복직된 후에 술 맡은 관원장은 이름 없는 히브리 노예를 위해서 애써 구명활동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9.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술 많은 관원장이 복직되어 나갔을 때 요셉은 기대에 부푼 가슴을 안고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복직된 바로의 신하가 요셉을 깨끗이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다시 요셉은 기약 없는 감옥생활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실망했겠습니까? 바로의 신하는 요셉을 잊었습니다. 그러나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요셉을 잊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감옥에 있는 요셉을 찾아와 위로해주시고 그를 격려해주셨습니다. 모든 일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술 맡은 관원장으로 하여금 요셉을 잊게 만드셨습니다. 요셉은 아직 감옥에서 나오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결정적인 때는 아직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바로의 신하가 요셉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그 때 요셉은 모든 것이 준비된 가운데 바로 앞에 서게 되고, 단번에 애굽의 통치자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습니까?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을 했습니까? 꼭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도와주지를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낙심하거나 분노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우리를 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자기의 입장과 체면 때문에, 또는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으로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좋은 방법을 찾아내십니다. 관원장들의 꿈이 성취된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요셉을 옥에 더 남겨 두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① 요셉으로 하여금 인간보다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② 또한 요셉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 즉 하나님의 약속 성취방법은 인간의 생각과 방법과는 다르다는 점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을지라도 구원이 속히 임하지 않는다고 낙담하거나 실망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오묘한 섭리가 내재되어 있음을 깨달아 인내로써 고난을 이겨내야 합니다. 사람은 우리를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더욱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며 힘쓰십시오. 당신의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할 줄 아는 성도가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당신의 모든 일을 가장 아름답게 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기도 :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우리의 삶 가운데 큰 꿈을 갖게 하옵소서. 그것을 이뤄나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의 약속을 신뢰하는 담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갈릴리공동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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