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년작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가지 연구> 는 그의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루치안 프로이트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세 폭짜리의 트립티크의 회화 작품으로 중세 르네상스 제단화 형식을 빌어 3폭이 한 세트로 된 그림이다.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과 루치안 프로이트(1922~2011)는 모두 특별한 가문 출신이다. 베이컨은 17세기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후손이고, 루치안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다.
세 폭은 각기 다른 시점으로 관찰자가 공간과 시간의 미세한 차이를 두고 바라본 한 인간의 모습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여 현대인의 고독과 상실, 두려움 등을 담고 있다.
이 3폭의 작품은 1970년대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등으로 흩어졌다가 한 로마 수집가에 의해 하나로 모아졌으며, 2013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4240천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2012년 5월 소더비 경매에서 팔린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The Scream·1895년 작)가 단일 거래에서 기록한 1억1990만 달러를 1년 반 만에 경신한 것이다.
캔버스로 끄집어낸, 우리들의 일그러진 내면
국방일보 기사 입력 2024. 10. 02. 16:19
업데이트 2024. 10. 03. 19:58
프랜시스 베이컨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
피카소 보고 화가 될 결심…혹평에 좌절
전쟁 속 두려움 해소하려 다시 붓 잡아
파격적 묘사의 삼면화 형식으로 주목
오랜 교류 프로이트와 서로 모델 역할
1969년 고뇌로 뒤틀린 초상화 대표작
원초적 감정 깃든 질감·형태 ‘미적 혁신’
형태가 뭉그러진 초상의 남자가 의자에 위태롭게 앉아 있다. 몸을 뒤틀어 한 발을 들어 올리고 고개를 돌려 화면 밖을 응시하는 모습이 불안정해 보인다. 한쪽이 우뚝 솟은 철창 안에 들어가 다리 일부를 바깥으로 내밀어 갇혀 있는 상황을 암시한다. 투명한 철창을 이루는 선들과 의자 뒷면에 세워진, 기울어진 받침대는 보는 이의 시선을 분산시켜 긴장감을 더한다. 각기 다른 시점에서 바라본 한 인간의 기이한 세 가지 모습을 담은 이 세 폭의 그림은 태양을 닮은 노란색 팔레트와 흙빛 바닥으로 더욱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영국의 표현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1909~1992)이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루치안 프로이트(Lucian Freud·1922~2011)를 실물 크기로 묘사한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이다. 1969년에 완성된 뒤 한 점씩 흩어졌다가 한 수집가에 의해 모아져 201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돼 수수료 포함, 1억4240만5000달러(약 1494억 원)에 낙찰되며 세계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베이컨이 그린 프로이트의 초상화 3부작은 하나 더 존재하는데, 그 그림은 각각 떨어져 있기에 세 점 다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희귀성으로 가치를 더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름다움보다는 기괴함을 자아내는 이 그림이 천문학적인 금액의 평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이 그림을 그린 베이컨은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로 작품에서 느껴지는 격렬한 감정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09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부유한 영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군인 출신인 아버지의 엄격함과 가톨릭 정통주의 집안의 엄숙함 속에서도 일찍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아버지의 체벌과 심한 갈등 끝에 학교도 그만두고 삼촌들이 있는 독일 베를린으로 떠난다. 잠시 방문한 프랑스 파리의 피카소 전시회에서 본 자유분방한 작품들에 해방감을 느끼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1920년대 후반 영국 런던에 정착해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생계를 유지하며 단체전에 참여했지만, 혹독한 비판을 받고 낙담해 대부분의 작품을 폐기하기에 이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심각한 천식으로 민간방위군의 구조 부문으로 배정된 그는 폭약이 가득한 전쟁의 참상을 바라보며 느낀 인간의 잔혹함에 대한 두려움을 작품으로 해소하고자 다시 붓을 잡았다. 1944년에 완성한 ‘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개의 습작’이 극찬을 받으며 모든 상황은 전이된다. 예수와 십자가는 없고 정해진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무기력함을 유기적인 세 개의 형상에 담아냈는데, 이를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사실주의적인 재현보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베이컨 작품의 특징인 삼면화 형식의 시작이었다. 유럽의 교회에서 세 패널로 나뉜 작품이 제단에 걸려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성경의 삼위일체를 상징하며 주제 역시 신앙심을 고취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한 면의 화폭보다는 더욱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있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장점이 있다. 베이컨은 삼면화의 묵시적인 상징법을 활용하되 본디 의미를 전복시켜 인간이 외면하고 싶은 비극적 감정을 그려 내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이 고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고 극복하길 의도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의 초상’(1965년·캔버스에 유화·35.5x30.5㎝·개인 소장). 출처=프랜시스 베이컨 재단
삼면화 형식에 전례 없는 파격적인 묘사로 화단의 주목을 받은 베이컨은 이 무렵 런던 화가들의 사교모임인 ‘더 콜로니 클럽’에서 루치안 프로이트를 만난다. 정신분석학자의 창시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손자로, 사람의 내면을 담는 초상화로 정평이 난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추구하는 예술세계는 달랐지만 인물화에 관한 공통된 관심으로 조언을 주고받으며 서로 화가와 모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종종 뜨거운 논쟁을 벌이다가 1970년경 절연하기까지 베이컨은 프로이트를 14번 이상 그렸는데, 1969년에 그린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이 대표작으로 언급된다.
베이컨은 격식을 갖추고 우아한 미소를 머금은 프로이트가 아닌,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그를 표현하고자 했다. 인물의 특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육체의 생생한 질감을 담아내는 극사실주의 화가인 프로이트의 기법과 정반대로 이목구비를 강한 붓질로 휘저어 버리고 벗어날 수 없는 고뇌에 잠긴 뒤틀린 자세를 담았다. 정확한 생김새는 알 수 없지만 지극히 내면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에 관객들은 모델인 프로이트를 인간적으로 가깝게 느끼고 정서적 교감을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표현은 전쟁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시대상과도 연결된다. 유럽의 미술사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구분될 수 있는데, 전쟁 폐해를 직접 겪은 화가들은 예전처럼 세상의 밝은 면을 그리지 못하고 시대의 환멸과 개인의 고통을 형상화하는 데 몰입했다. 이러한 화풍은 사실적인 묘사보다 더욱 풍부한 상상력과 감각을 끌어냈고, 베이컨 역시 주관적으로 해석한 변형된 형상이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보다 인물의 본질을 더욱 잘 나타낸다고 믿었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하학적 철창에 격리시켜 주인공의 심리적인 고립을 표현함과 동시에 관객의 시선을 강하게 집중시키는 혁신적인 구성을 고안해 냈다.
베이컨은 비록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방대한 독서량으로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였고 대부분의 작품명에 ‘습작’을 쓰며 완성작을 위해 끊임없이 탐구한 결과 어떤 화풍에도 속하지 않는 독창적인 표현 양식을 창안했다. 현대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대가로 인정받아 1971년 파리 그랑 팔레 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1985년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치르며 예술가적 명성에 최고점을 찍었다.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은 이 전시들에 포함돼 훌륭한 전시 이력으로 더욱 높은 가치를 형성하게 됐다.
베이컨의 작품들엔 작가 개인의 고뇌를 넘어 보편적인 인간의 내면에 관한 치열한 탐색의 흔적이 담겨 있다. 불편한 시각적 장면을 원초적인 감정이 깃든 질감·형태로 조화롭게 만든 미적 혁신으로 관람자들을 사로잡아 현대미술의 핵심 인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어두운 감정까지 예술로 승화시킨 그가 현대미술에 남긴 큰 족적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필자 백승옥은 미술사와 문화정책을 전공했다. 비커밍아트 대표로 문화예술 대중화를 위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독일 갤러리 에스더쉬퍼의 외부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