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번은 하륜과 함께 태종 이방원의 오른팔·왼팔이었다. ‘왕자의 난’을 진압한 정도전까지 내쫓고 태종을 왕위에 올린 1등공신들이다. 이숙번은 TV사극 ‘용의 눈물’ 에서 칼 들고 설치는 무인으로 나왔지만 실은 비상한 두뇌와 문무를 겸비한 才士로 조선조 과거급제 제1기생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갓 스물 약관이었다. 16살에 문과에 급제한 바 있는 태종은 자신과 너무 닮았다는 이유로 여섯살아래인 이숙번을 친아우처럼 아꼈다. 수재가 수재를 알아본 것.
태종의 신임을 업은 이숙번은 조정에서 핵심역할을 하면서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왕의 총애속에 욱일승천의 기세로 벼슬이 높아지자 그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안하무인이된 그는 신하로서 지나치다 할 정도로 태종에게 마저 거침 없는 언동을 했다. 한번은 왕의 부름에도 병을 핑계로 응하지 않자 태종은 대전내관을 세번이나 보냈다. 그러나 몸이 아프다면서 세번 다 내관을 그냥 돌려보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인생막장을 봤을 터이지만 태종은 그래도 이숙번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그의 청탁을 받아주며 애지중지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이숙번의 집앞에는 벼슬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의 집이 지금의 신문로 근처인 돈의문 안에 있었다. 돈의문은 사람의 왕래가 많아 그 일대의 시끄러운 소리가 이숙번의 집까지 들렸다. 그는 태종에게 백성들의 돈의문 출입금지를 요청, 허락을 받아냈다. 이때문에 백성들은 돈의문밖에 볼일을 보려면 멀리있는 홍의문을 둘러가야했다. 이처럼 태종은 이숙번의 말이라면 ‘콩이 팥이라’ 해도 믿으며 늘 오냐오냐했다.
이렇듯 기고만장, 권력자의 전횡을 일삼던 이숙번도 대간들의 호된 탄핵을 받고, 유배지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뒤끝이 이숙번처럼 안되려면 끗발 있을때 ‘끗발조심’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