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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에도 눈은 없고 - 석교산,우두령,호초당산,우두령,삼성산
왼쪽 멀리는 덕유산, 가운데는 삼도봉
백억의 수미산 그 안에 있고 百億須彌在其中
흰 구름 둘러싼 산 몇 천 겹인가 白雲圍繞幾千重
저 편의 지는 햇빛 아득한 밖 那邊殘照微茫外
문득 높이 서서 옛 풍도 떨친다 却立巍巍振古風
――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2), 「숨은 봉우리(隱峰)」
▶ 산행일시 : 2020년 1월 18일(토, 무박산행), 맑음
▶ 산행인원 : 11명(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일보 한계령, 산정무한, 사계, 상고대, 신가이버,
오모, 대포, 승연)
▶ 산행거리 : 도상거리 20.3km(1부 14.8km, 2부 5.5km)
▶ 산행시간 : 10시간 56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를 따랐음)
00 : 2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1 : 54 – 경부고속도로 죽암휴게소
03 : 40 – 김천시 부항면 파천리, 대천교, 계속 취침
04 : 48 – 산행시작
05 : 25 – 첫 휴식
06 : 28 – 917.1m봉, 아침식사
07 : 48 – △1,119.3m봉
08 : 18 – 백두대간 진입
08 : 28 – 석교산 화주봉(1,194.8m)
09 : 30 – △813.9m봉
09 : 39 – 우두령(牛頭嶺, 질매재, 720m)
11 : 00 – 884.3m봉
11 : 12 – 호초당산(虎草堂山, △892.7m)
11 : 45 – 마산 마을 위 901번 도로, 1부 산행종료, 점심, 우두령으로 이동
12 : 28 – 우두령, 2부 산행시작
12 : 44 – ┣자 호초당산 갈림길
13 : 44 – 959m봉
14 : 00 – 삼성산(△984.9m)
14 : 30 – 1,015m봉, ┫자 능선 분기
15 : 44 –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 송정 마을, 송정교, 산행종료
16 : 30 ~ 18 : 20 – 영동, 목욕(인삼사우나), 저녁(용 숯불왕갈비)
19 : 10 – 경부고속도로 신탄진휴게소
21 : 02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
2. 산행 고도표
▶ 석교산 화주봉(1,194.8m)
춥고 어두운 밤이면 생각도 의욕도 움츠러들기 마련인가. 무박으로 미지의 산을 가는데 설렘
조차 없고 도리어 까닭 모를 게으름 일어 마지못해 집을 나선다. 아내는 텔레비전에 시선 고
정한 채 문이나 잘 닫고 가란다. 오밤중 동네거리는 텅 비었고 동서울 가는 버스도 텅 비었
다. 아마 동병상련일 게다. 동서울에서 악우들을 만나자 웃는다.
버스 히터 돌아가는 소리를 자장가로 듣는다. 버스가 멈추면 내 잠도 멈춘다. 깜빡 졸았는가
싶었는데 죽암휴게소이고, 다시 버스가 멈춰 눈을 뜨니 오늘 우리가 산행 들머리로 잡은 대
천교다. 버스 전자시계는 03시 40분이다. 좀 더 있다가 일어날 모양이다. 자세 고치고 얼른
도로 눈 감는다. 대천교 아래 구남천은 겨울잠을 자는지 골골 소리 없이 조용하다.
기상! 정확히 04시 30분이다. 어쩌면 대간거사 총대장님은 잠을 자지 않고 이때를 기다렸다.
되게 지루했을 것. 기상! 이 소리만큼 야박한 소리가 또 있을까? 동시에 두메 님은 차내 불
밝힌다. 더듬더듬 등산화 끈부터 맨다. 공수부대 한사람씩 낙하하듯 버스 문밖에 나선다.
일반등산로가 있을 턱이 없고 지도 읽어 산자락 덤불숲 헤집는다. 마을 고샅길을 다 가도록
들리지 않던 개 짖는 소리가 산등성이에 올라서자 들리기 시작한다.
산길이 임도로 잘난 건 성묫길 이어서다. 무덤 위로도 부드러운 능선 길이다. 흑염소 방목장
이었을 오래되어 망가진 철조망을 넘고 넘는다. 송이와 능이의 산지라며 출입금지 팻말 붙이
고 목책 요란하게 엮어놓은 구간이 꽤 길다. 괜히 발걸음이 빨라진다. 희미한 인적 쫓는다.
어둠 속 우뚝 솟은 917.1m봉을 오른다. 휴식. 헤드램프 밝히고 넙죽이 오뎅탕에 한속 덥히며
아침밥 먹는다.
날이 훤해지자 모자 벗기고 얼굴 할퀴고 다리 걸고 배낭 잡아끌던 잡목들의 장난도 그쳤다.
해는 슬며시 등 뒤에서 솟았다. 첨봉을 오른다. 저기가 백두대간일까? 숨차게 오르고 지도 보
니 △1,119.3m봉이다. 조망은 사방 키 큰 나무숲에 가렸다. 그런데도 삼각점은 2등 삼각점
이다. 영동 28, 1983 재설. 가야산과 수도산에 이르는 장릉, 덕유산과 그 앞 각호산, 민주지
산, 석기봉의 장성이 감질나게 수렴에 가린다.
좀 더 오르면 나을까 잰걸음하다 조망 트일 절벽에 다가가 잡목가지를 젖혀보기도 하고 가
지 굵은 나무에 올라가기도 한다. 백두대간 길에 들어선다. 신작로다. 신작로를 빗댄 것이 아
니라 실제 그렇게 다듬은 대간 길이다. 이대로 우두령으로 물러날 수는 없다. 석교산 화주봉
까지 편도 0.35km이다. 거기 가는 길 또는 거기는 조망이 트일지 모른다.
나와 대포 님이 대표로 다녀오기로 한다. 줄달음한다. 화주봉 오르는 길 내내 조망이 가린다.
이대로 그만 뒤돌아갈까 하다가 온 걸음이 아까워서 더 간다. 마지막 피치 통나무계단 오르
면 화주봉 정상이다. 두어 평 공터 한가운데 ‘석교산, 1,207m’이라 새긴 조그만 정상 표지석
이 있다. 백두대간의 드문 경점이다. 밤을 도와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여기 한 눈으로 충분하
다. 앞으로의 산행은 덤이다.
방금 전에 △1,119.3m봉을 넘어올 때 연신 발로 수렴 걷으며 기웃거렸던 조망은 각론이고
여기에서의 조망은 총론이다.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다. 굳이 곁의 조망 안내도를 들여다보
지 않고도 알아볼 수 있는 낯익은 산들이다. 석교산은 『여지도서(與地圖書)』에 따르면 ‘황
악산은 추풍령-괘방령에 와서 서쪽으로 석교산-삼도봉을 일구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데서
그 이름을 따왔다. 화주봉은 ‘華珠峰’인지 ‘花主峰’인지 ‘花周峰’인지 아니면 또 다른 쓰임인
지 아는 이가 없다.
3. 맨 오른쪽은 민주지산, 맨 왼쪽은 삼도봉
4. 대덕산
5. 뒤는 덕유산
6. 대덕산
7. 맨 오른쪽은 민주지산, 가운데는 삼도봉
8. 민주지산
9. 뒤쪽 가운데가 각호산
10. 가운데가 각호산, 그 뒤는 천마령(?)
▶ 호초당산(虎草堂山, △892.7m)
이제 우두령을 향한다. 백두대간 신작로를 먼지 뽀얗게 일으키며 쭉쭉 내린다. 일행들은 어
디쯤 가고 있을까 부지런히 뒤쫓는다. 잠깐 멈칫하여 1,100m봉을 넘고 다시 한차례 내리 쏟
으면 1,058.4m봉 직전 안부다. 일행들은 여기 등로 비킨 오른쪽 사면에 모여 있다. 나와 대
포 님만 오기를 기다린 게 아니다. 백두대간 길이 아직 한참 남은 △1,119.3m봉 근처 땡땡
언 땅에서 불꽃 튀기며 더덕을 조각하는 오모 님을 기다리는 중이다.
뒤늦게 오모 님이 당도하고 조각한 더덕 좀 보자고 했더니 더덕은 미리 도망을 가버렸고, 그
수색 중에 어디선가 간이의자를 흘렸다고 한다. 그걸 찾으려면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휴대
전화를 걸어 일행들에게 알려드리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호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없
더란다. 지나온 길의 수북한 낙엽을 헤치며 행적을 조심조심 살폈더란다.
낙엽더미에서 08시 귀에 익은 알람소리가 들리고 이에 휴대전화를 찾았다고 한다. 이어 간
이의자도 찾았다. 얼마나 기뻤을까? 저녁 식후 아이스크림은 오모 님의 몫이네 하고 그 기쁨
에 재빠르게 동참한 이는 승연 님이다. 승연 님은 지지난주 지리산 불무장등 산행 때 산죽 숲
에서 휴대전화를 잃었다가 찾았고 그 기쁨에 자청하여 아이스크림을 희사하였다.
우두령 가는 백두대간 길을 신작로라고 한 것은 산악자전거 코스(?)로 다듬어놓아서다. 웬
만하면 봉봉을 직등하지 않고 사면 도는 길로 닦았다. 그래서 되똑한 1,058.4m봉을 왼쪽 사
면의 잘난 길을 따라 길게 돌아 넘는다. 자생일 듯한 물푸레나무 숲길을 지난다. 알록달록한
수피가 아름다운 나무다. 안내문의 일부다.
“물푸레나무는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라는 뜻으로, 한자로는 수청목(水靑木)입니다. 꽃은 5
월에 피는데 꿀이 많아서 밀원식물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목재는 질기고 단단해서 야구 배트
와 가구 등을 제작하는데 이용합니다.” 수청목보다는 물푸레나무라는 이름이 훨씬 더 잘 어
울린다. 안내문의 ‘제작하는데’는 ‘제작하는 데’의 띄어쓰기가 잘못되었다. 여기에서 ‘데’는
‘일’이나 ‘것’의 뜻을 나타내는 의존명사이다.
(…)
그리하여 언 땅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뿌리를 얽어쥐고 체온은 나누며
끝끝내 하늘을 우러러
새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
보라 어느샌가
수많은 그대와 또 수많은 나를
사람들은 숲이라 부른다
시인 복효근(1962~ )의 시 「겨울 숲」이다. 그에 꼭 들어맞는 숲이다.
느닷없이 등로 한가운데에 심은 삼각점을 본다. 영동 464, 1980 재설. 지형도의 △813.9m봉
이다. △813.9m봉이 우두령으로 내릴 때는 도드라지지 않지만 반대로 우두령에서 오를 때는
수직으로 솟구친 첨봉이다. 수직으로 가파른 능선을 쭈르륵 미끄러져 내린다. 바닥 친 안부
는 질매재 우두령이다.
11. 맨 왼쪽은 대덕산, 맨 오른쪽은 덕유산
12. 대덕산
13. 맨 왼쪽 뒤는 덕유산, 맨 오른쪽은 삼도봉
14. 가운데는 민주지산
15. 덕유산
16. 물푸레나무 숲
17. 황악산
질매재의 질매(또는 질마)는 소 등에 얹어 물건을 운반하는 데 쓰는 연장으로 표준어는 길마
이다. 질매는 그 자체만으로도 짐을 실을 수 있지만 대개는 옹구나 발채 또는 거지게 따위
를 올려놓기 위한 받침대의 구실을 하는 데 쓰였다. 이 질매를 옆에서 보면 양쪽으로 솟아
있고 그 사이로 길이 나 있는 고갯길의 형상과 비슷해서 고갯길 지명에 쓰였다.(윤재철, 『우
리말 땅 이름』)
질매재는 한자로는 안현(鞍峴, 안장 안, 고개 현)으로 표기하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서는 우
두령(牛頭嶺)으로 표기하였다. 방금 내려온 △813.9m봉과 이 고개를 지나 곧바로 호초당산
의 갈림길인 870m봉을 오를 것이니 질매재라는 작명이 아주 적실하다고 하겠다. 고갯마루
는 다리를 놓아 동물이동통로를 만들고 철조망 둘러 등산객들의 출입을 막았다.
질매재 지나 가파른 통나무계단을 오른다. 오름길 등 떠미는 바람이 이때는 시원하다. 발길
에 차이는 낙엽이 방향 없이 우수수 흩날린다. 저마다 자기 걸음으로 가니 금방 혼자 가는 산
행이 되고 만다. 거친 숨 몰아쉬며 0.6km를 올라치면 오른쪽으로 호초당산을 가는 ┳자 갈
림길이다. 나는 호초당산은 2부 산행코스인 줄 알았다. 그러기에 당연히 잘난 백두대간 길을
따라 부지런히 선두를 뒤쫓았다.
봉봉을 넘으며 연호하여 선두를 불렀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다. 내 연호가 닿지 않게 멀리 가
버렸나 하고 더욱 잰걸음 하였으나 천지는 소연할 뿐이다. ‘우두령 1.2km’라는 이정표가 있
는 900m봉까지 올랐다. 때마침 배낭 속 휴대전화가 울린다. 모닥불 님이 걸어온 전화다. 서
로의 현재 위치를 살피니 내가 반대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서둘러 뒤돈다. 땀난다. 이때
입은 데미지가 작지 않다.
우두령 갈림길 지나자 인적이 뜸하다. 봉봉 내리고 오르는 굴곡이 무척 심하다. 낙엽은 무릎
까지 찬다. 내리막에서는 넘어지고 오르막에서는 엎어지기 일쑤다. 790m봉을 올랐다가 골
로 갈 듯 뚝 떨어져 내리고 다시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884.3m봉을 벗겨서야 호초당산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벌목한 오른쪽 사면에 들러 덕유산과 대덕산의 연릉 연봉을 살피고 호초당
산(虎草堂山)을 오른다.
호초당산 정상에서 일행과 합류한다. 호초당산은 옛날에 범이 많이 살았고 범의 초당이 있어
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삼각점은 ‘영동 315, 1980 재설’이다. 사방 키 큰 나무 숲 둘러 아
무 조망이 없다. 아울러 파장이다. 곧장 901번 도로로 내려서는 방법을 택한다. 호초당산 주
변은 벌목하고 소나무 묘목을 식재하였다. 이런 대작업을 하려면 틀림없이 골짜기에 임도를
냈을 것.
그랬다. 대덕산 조망이 훤히 트이는 벌목사면을 내리고 골짜기 임도를 간다. 정면으로 바라
보는 건너편의 석교산 화주봉이 백두대간의 준봉이다. 졸졸 개울 따라 내리고 돌담길 지나
산모롱이 도는 901번 도로다. 도로 옆 공터에 두메 님 버스로 바람 막고 점심자리 편다. 역시
한겨울에는 연태가 가향의 미주다. 연태 얹은 커피 맛 또한 일품이다.
18. 백두대간 우두령 가는 길
19. 호초당산 가는 길
20. 이러다가 오모 님(왼쪽)은 휴대폰을 잃어버릴 뻔했다
21. 왼쪽은 단지봉, 가운데는 수도산
22. 대덕산
23. 호초당산 가는 길에서 조망
24. 덕유산
25. 대덕산
▶ 백두대간 삼성산(△984.9m)
2부 산행이다. 들머리는 우두령이다. 두메 님 버스 타고 우두령으로 이동한다. 잔뜩 부른 배
라 아까 계단 길 오를 때보다 훨씬 더 힘들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여 870m봉 ┳자 호초당산
갈림길을 지나고 나서 비로소 허리 편다. 이제 완만한 오르막의 연속이다. 발걸음이 사뭇 느
긋하여 해찰한다. 넙데데한 좌우 사면을 누비며 간다.
무릇 노가다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돈내기에 있다. 돈내기는 노가다 판에서 할당받은 일
을 끝내면 그 일에 대해 무조건 일당을 지급하거나 마친다는 뜻이다. 대간거사 총대장님의
여러 귀에 솔깃한 제안이 돈내기 다름 아니다. 더덕 10수를 거두면 바로 하산하자고. 대간거
사 총대장님은 백두대간 길에서 더덕 10수를 거두기가 결코 쉽지 않을뿐더러 ‘산행이 쉬웠
어요’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눈에 부쩍 힘주고 풀숲 사면을 한 차례 뒤져서 할당량을 초과 달성해버렸다. 이때가
13시 30분경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하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대간거사 총대장님의
제안이 약했거나 아니면 돈내기의 효과가 탁월했다. 제안을 약간 수정한다. 15시까지 능선을
걷다가 하산하여 16시에 산행을 마치자고. 하긴 당장 마땅한 하산로를 찾기도 어렵다.
이 백두대간 신작로에 더덕이 살아남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대개의 경우 우두령은 백두대
간 무박산행의 들머리 또는 날머리이니 캄캄할 때 오르고, 시간에 쫓겨 내리기 마련인 점, 이
근방에 독립하여 이름난 산이 없다는 점, 단지 백두대간 종주꾼들이나 지나가고 그들은 사면
을 둘러볼 겨를 없이 줄달음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숲속 산책로를 간다. 이따금 하늘 트인 오른쪽으로 덕대산과 그 너머 금오산이 가경이다. 장
의자 놓인 쉼터에서는 오래 쉬어준다. 약간 더 도드라진 봉우리는 삼성산이다. 조그만 표지
석 앞에 있는 삼각점은 ‘영동 314, 1980 복구’이다. 시간이 더디게 간다. 30분 걸려 직지사
삼성암 뒷산인 1,015m봉이다. 서진하여 하산하기 적당하다.
백두대간 길 벗어나 잡목 숲 헤치는 우리 길을 간다. 앞장선 오모 님에게 16시에 하산이 완
료되도록 보행속도를 조절할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그게 더 어렵다. 스텝이 헝클어지고 걸
음걸이가 이상해진다. 가파른 내리막은 921.7m봉에서 잠깐 머뭇하고는 다시 직하한다. 통정
대부 박공의 무덤에서 시간을 죽였지만 도저히 16시를 채우지 못하겠다. 15시 44분이다.
송정교. 송정 마을 동구 밖 궁촌천(弓村川) 물가에 노송 두 그루와 정자가 있다. 때 이른 산
행 마친다.
26. 호초당산에서
27. 대덕산
29. 호초당산 가는 길에서 조망
30. 호초당산 하산 길, 앞은 석교산
31. 석교산, 우리는 왼쪽 능선을 올라 오른쪽 능선으로 내렸다
32. 덕대산, 그 오른쪽 뒤는 금오산
33. 삼성산 정상에서
첫댓글 안타깝습니다...요길 못가다니...형님산행기로 대신합니다...감사합니다..설명절 잘 보내십시요
호초당산 이름의 유래가 궁금했었는데,
바로 찾으신듯 합니다. 궁금증 해결.
산에서 핸드폰은 밸소리를 무조건 소리 모드로 하는것 추천.
낫을 본적이 없어 낫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용도폐기 됐다는데, 눈이 하도 안와서 눈이 모에요? 하는 시대가 올 것같은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