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찾은 보약⑫
새와 두더지도 좋아하는 땅콩, 우리 몸에도 좋다는 뜻!
콜레스테롤 낮추고 변비와 지혈에도 좋아요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제철에 맞는 음식을 한의학적 관점으로 접근한 ‘텃밭에서 찾은 보약’을 소개합니다.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권해진 원장은 9년째 텃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텃밭을 하니 모종은 베란다에서 키워야만 합니다. 모종을 가게에서 구입해 심기도 하지만 농사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씨를 뿌려 키우는 재미가 더 쏠쏠합니다. 작물의 싹이 트면 볕이 베란다에 잘 든다 할지라도 모종은 창문 밖 화분 놓을 자리에 내어 놓아야 더 잘 자랍니다.
일요일 오후 베란다 창문에 새들이 날아와 모종을 쪼고 있었습니다. 싹을 다 틔운 식물들뿐인데 ‘새들이 왜 저럴까? 맛있는 풀이 있나?’ 하는 순간, “땅콩 모종을 밖에 내어두면 어떡해!” 어머니가 새를 보시고는 제게 소리치셨습니다.
“다른 모종도 내어 놓았기에 땅콩도 햇빛 좀 보라고 그랬지.” 씨앗에서 싹이 트면 씨앗은 떡잎이 됩니다. 떡잎이 된 땅콩의 고소한 향이 새를 불러들입니다.
새를 좋아하는 지인은 겨울에 먹을 것이 없는 새들을 위해 베란다 밖에 먹이 상자를 만들어 둔다고 했습니다. 과일 껍질이나 해묵은 곡식을 두면 새들이 온다고 하더군요.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새들이 그 곡식을 먹으러 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땅콩 모종을 먹으러 온 새들을 보니 올 겨울에는 새를 위한 먹이 상자도 달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농약·무화학 비료, 무제초제, 무비닐 멀칭으로 자연과 공생
급히 베란다 창밖에서 땅콩 모종을 집 안으로 들였습니다. 방울토마토, 오이, 가지, 고추 모종이 보여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언제 심으려고? 벌써 5월이 다 가고 있어.”
“이번 주말에 최저 온도가 8도래. 10도 이하면 넝쿨식물들은 자라지 않아. 그래서 천천히 심으려고.”
봄 농사를 너무 부지런히 하면 여름 농사 때 지치기 십상입니다. 여름에는 풀이 작물보다 빨리 자라는데 그때 더운 날씨와 잡초를 이기려면 지금은 쉬엄쉬엄 하면서 힘을 아껴야 합니다. 그래도 고추 모종까지 심은 다른 사람들의 밭을 보면 서둘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텃밭은 넓은 땅이 아니라서 식물 하나하나 잘 자라도록 신경을 쓰며 심습니다. 몇 해 전 오이 세 포기를 심었는데 한 포기가 냉해로 자라지 않더니 결국 죽어버렸습니다. 뒤늦게 부랴부랴 오이 모종을 구해 다시 심었지만 날이 더워지니 적응을 못하더군요. 그러니 해가 갈수록 작물 심는 시기를 더 살피게 되고 하나라도 성장이 좋지 않으면 그만큼 마음도 더 아픕니다.
텃밭을 시작할 때 농장주께서 분양을 해주시면서 네 가지를 지켜달라고 했습니다. 무농약, 무화학 비료, 무제초제입니다. 이 세 가지는 저도 할 생각이었습니다. 당연히 제 입에 들어가는 것이니 농약을 뿌리면서 키울 생각은 없었습니다.
또한 화학비료보다는 음식물이나 잡초 등으로 퇴비를 만들어서 쓰려고 했습니다. 제초제 또한 몸에 좋을 리 없으니 몸소 풀을 뽑으려 했지요. 그런데 네 번째 지켜달라고 하시는 ‘무비닐 멀칭’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비닐이 환경에 안 좋아서 그러나 싶기도 했고요. 비닐을 깔면 제초가 쉬워지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비닐멀칭은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도 하지만 땅속의 지렁이도 못 살게 합니다. 땅이 숨 쉬는 것을 막게 하는 거지요. 이렇게 비닐멀칭도 하지 않고 잡초를 제초제 없이 손으로 뽑으니 굉장히 좋은 점도 있습니다. 우리가 잡초로 여기는 풀들은 인간의 기준으로 정한 겁니다. 내가 먹으려고 심지 않은 것을 모두 잡초로 여기지요. 그런데 뜻하지 않게 냉이, 쑥을 밭에서 찾게 되고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꽃씨가 꽃을 피우는 좋은 점을 알게 된 것입니다.
땅콩 모종 덕분에 뜻하지 않게 새를 불러들이고 두더지의 존재도 알게 되었습니다. “땅콩이 맛있기는 한가봐. 두더지까지 오네.” “새에 두더지에 우리 먹을 거 하나도 안 남겠다. 그래도 그렇게 먹으러 오는 거 보면 사람 몸에도 땅콩이 좋다는 뜻이겠지.”
약초 유래를 보면 동물이 먹는 모습을 보고 약효가 있겠다 싶어 사람이 먹었더니 효과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새도 두더지도 너무나 좋아하는 땅콩도 한약재 명이 있습니다. ‘낙화생’(落花生)입니다. 이름 그대로라면 ‘떨어진 꽃이 살아난 것’입니다.
◇떨어진 꽃이 살아난 땅콩, 장수에 좋은 작물
꽃이 떨어져서 땅콩이 되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시적인 표현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땅콩 꽃이 떨어지고 나면 씨방줄기라는 것이 생겨서 그것이 땅속으로 들어가서 땅콩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 땅콩 줄기가 땅을 향해 자라는 것이 보이면 흙을 조금 더 덮어주면 좋습니다.
‘만세과’(萬歲果), ‘장생과’(長生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 것을 보면 땅콩은 장수를 위해서도 먹기 좋은 작물입니다. 또한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함유되어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줍니다. 속껍질은 지혈작용이 있어서 약하게 출혈이 있을 때는 속껍질을 까지 않고 먹으면 좋습니다. 『진남본초』에는 땅콩의 줄기와 잎을 타박상 치료할 때 외용제로 쓴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름 성분이 많아 변비에도 좋습니다. 반대로 그 기름 성분이 설사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 있겠지요. 또한 기름 성분 때문에 오래 묵히면 산패해 독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요즘엔 ‘하루견과’라 하여 하루에 먹으면 좋은 양의 견과류를 담아 파는 제품이 많습니다. 화학 영양제 한 움큼보다는 견과류 한 움큼을 더 권장할 만합니다. 하지만 보관이 잘못되거나 수입되는 과정에서 산패되기 쉬운 견과류로 구성되었다면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땅콩은 7~8월쯤 꽃이 핍니다. 새와 두더지와 조금씩 나누어 먹은 다음, 가을에 수확해서 껍질을 까지 않고 두었다가 겨울 동안 조금씩 볶아서 먹으려 합니다. 작년 겨울 알약 먹듯이 하루에 땅콩을 서너 개를 먹었습니다. 제게는 자연이 주는 아주 좋은 영양제입니다.
권해진 래소한의원장, <우리동네한의사>저자
출처 한의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