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와 요강바위
임두환
아파트를 나서니 산수유와 매화향이 코끝을 스민다. 좌우를 둘러보니 백목련이 터질 듯 부풀고 개나리도 뒤질세라 노랑 입술을 내밀고 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코로나로 울적함에 젖어 있었다.
기분도 그렇지 않고 내친김에 아내와 함께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순창군 적성면 채계산의 출렁다리였다. 채계산은 강천산, 회문산과 함께 순창군의 3대 명산이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 고향이 순창군 팔덕면으로 회문산은 몇 번이었지만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강천산은 철을 잊지 않고 달려간다.
얼마 전이었다. 아내는 고향이 순창인데 채계산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기회는 이때라 싶어 채계산 출렁다리를 찾았다. 채계산은 적성 강변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여인이 비녀를 꼽고 누워있는 모습이라 해서 ‘월하미인月下美人’이라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출렁다리 입구에는
“WELCOME! 채계산 출렁다리, 월하미인月下美人”
이라고 새겨진 홍보 판이 우리를 반겼다.
채계산을 한자로 풀어보니 미녀 채釵, 미녀 계笄를 넣은 이름이었다. 출렁다리를 오르는 길은 다섯 코스로, 우리는 완만하다는 2코스를 택했다. 출렁다리까지 오르는데, 538계단으로 여간 힘 드는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고 길다는 출렁다리는 붉은 색깔로 단장되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출렁다리에 입구에는 한옥 정자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한 카트 찰칵〜, 추억거리를 담았다. 270m 길이의 출렁다리는 곡선으로 아래가 내려다보이도록 설치해 놓았다. 아내는 고소공포증이 있는지 어지럽다며 내 팔을 꽉 잡고서 어찌할 바 몰라 했다. 적성 강 굽이치는 전경을 내려다보니 가슴이 뻥 뚫리고, 구름 위를 날듯 무아지경이었다. 어더벤처 조망대에서 송대봉을 오르는 95계단에는 많은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좋은 약을 먹는 것 보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게 낫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는 게 더 좋다.”
“역경을 이겨내고 핀 꽃이 제일 아름다운 꽃이다.”
가 지금도 뇌리에 남는다.
채계산은 많은 산 중에도 특별함이 돋보였다. 수 만권의 책을 쌓아 놓은 형상이어서 ‘책여산冊如山’ 적성 강을 품고 있다 하여 ‘적성산赤城山’ 화산 옹 바위 전설을 간직하고 있어서 ‘화산華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괴암 괴석으로 이루어진 희한한 산이었다. 집채만 한 바위가 비스듬히 세워진 칼바위가 있는가 하면, 크고 작은 구들장 바위가 책을 쌓아 올린 듯 수천 개가 포개져 있다. 그뿐 아니다. 소나무가 우거진 바위틈 사이로 춘란과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거대한 정원을 보는 듯 했다.
채계산을 뒤로하고, TV프로에 ‘세상에 이런 일이’ 방영되었던 요강 바위를 찾았다. 내비게이션에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614를 찍었다. 용궐산 하늘길 앞 섬진강 상류에 위치한 요강 바위는 말 그대로 요강과 흡사했다. 순창의 명물로 무게 15t, 높이 2m, 폭 3m로 포트 홀에 장정 3〜4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큰 바위였다. 이 큰 요강 바위 같은 형상은 ‘1억 년 정도 물살이 지나야 포토 홀이 생긴다.’는 안내문의 내용이었다.
지난 어느 해였다. 20여 명의 장정들이 중장비를 끌고 와서 15t이나 되는 요강 바위를 몰래 뽑아가 버렸다. 도둑들은 요강바위를 경기도 어느 야산에 숨겨 놓고 사려는 사람을 물색했다. 바위 값은 놀랍게도 10억 원을 능가했다. 수백 년 세월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해 온 요강 바위가 사라지자, 동계면 장구목 주민들은 분개하여 바위를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야산에 숨겨진 바위를 찾아내어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도둑들이 시치미를 떼는 바람에 법정 공방까지 벌이는 등, 눈물겨운 노력 끝에 요강 바위를 돌려받았다. 그동안 요강 바위는 전주지방검찰청 남원지청 마당에 운반되어 있었다. 주민들이 남원에서 장구목까지 옮기려 하니, 중장비와 인건비가 무려 5백만 원이었다. 그러자 장구목에 사는 12가구가 돈을 거출하여 운반비를 마련하여 잃어버린 지 4년 만에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용궐산 하늘길 앞, 섬진강 상류에 놓여 진 요강 바위에 어안이 벙벙했다. 엄청난 크기의 요강 바위 모습을 갖추려면 1억 년의 세월을 거쳐야 한다는데, 자연의 신비로움을 어떻게 형용해야 할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동안 가보고 싶던 채계산 출렁다리와 전설에 얽힌 요강 바위를 들러서 돌아오는 길이 개운했다.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할 때면 여행길에 나서는 것도 최선의 방법이라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