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 이사야 12:1-6】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말씀 나눔】
전쟁을 겪으신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습니다. 총소리가 그친 지 수십 년이 지났고, 지금은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분들은 자동차 배기음 하나에도 몸이 움찔합니다. 전쟁은 분명히 끝났습니다. 위험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몸이 아직 그걸 못 믿는 겁니다. 몸의 시계가 아직 그 시절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의학에서는 이걸 외상 후 스트레스라고 부르지만, 저는 이게 비단 전쟁을 겪은 분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12장을 열면서, 저는 이미 끝난 전쟁인데, 몸은 아직 그 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어긋남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딱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1장부터 11장까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낱낱이 드러내셨습니다. 앗수르라는 무서운 제국을 심판의 막대기로 들어 쓰셨습니다. 그런데 그 앗수르마저 교만해져서 자기 힘으로 이겼다고 떠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앗수르마저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1장에서, 심판 너머에 있는 회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9장과 10장을 읽어보시면 네 번이나 반복되는 무서운 후렴구가 있었습니다.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 손을 여전히 펴시리라."
그럴지라도, 그럴지라도, 그럴지라도, 그럴지라도. 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그 말을, 왜 네 번이나 들어야 했을까요? 그 긴장이 채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12장 말씀이 바로 뒤에 옵니다.
그런데 1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우리말 성경은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라고 옮겼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형태에는 “주의 진노가 돌아서게 하시고 나를 위로해 주십시오”라는 간구로 읽을 수 있는 여지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에는 묘한 긴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면서도 여전히 그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는 사람의 노래입니다.
이 한 절 안에 믿음의 두 모습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돌이키시고 위로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 그 위로를 구하며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붙드신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자녀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심을 고백하면서도 아픈 몸을 붙들고 낫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앞날을 아신다고 믿으면서도 내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모든 염려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직 다 보이지 않는데도,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라는 말씀을 먼저 붙드는 것입니다.
현실은 아직 그 자리에 있는데, 믿음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사야의 노래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자리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고 합니다.
2절입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우리는 보통 상황이 좋아져야, 문제가 풀려야 노래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을 먼저 확인하고, 그다음에 감사하고, 그다음에 노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고백을 자세히 보십시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구원이란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해결해 주시는 사건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나의 힘이시고, 하나님 자신이 나의 노래이시며, 하나님 자신이 나의 구원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가 풀려야만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눈앞의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어도, 나를 붙드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알기에 노래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이사야만의 것이 아닙니다.
훗날 하박국이라는 선지자도 똑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하박국 3장 19절을 보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우리에 양 한 마리 남지 않은 자리에서, 하박국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상황은 하나도 안 풀렸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라는 것 하나로 노래합니다.
이사야도, 하박국도 같은 말을 합니다. 문제가 풀린 다음에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라는 사실 하나를 붙잡고 문제가 풀리기 전에 이미 노래한다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하나 있습니다.
1절과 2절은 계속 "내가"였습니다. 나의 구원, 나의 힘, 나의 노래.
그런데 3절에서 갑자기 "너희가"로 바뀝니다. 한 사람의 고백이 여럿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우물입니다. 우물은 혼자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물을 길어 마셔도 우물은 마르지 않습니다. 다음 사람이 와도 여전히 물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물은 목숨입니다. 그런데 그 목숨을 살리는 물이,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길어도 마르지 않는 우물에서 나옵니다. 한 사람이 붙잡은 그 신뢰, 그 노래가 혼자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그렇습니다. 목장에서 한 사람이 “이번 주에 하나님이 이렇게 붙들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할 때, 그 은혜는 그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누군가가 다시 하나님을 붙듭니다. 한 사람의 ‘나의 구원’이 공동체의 ‘우리의 구원’으로 넓어집니다.
4절부터 6절까지, 노래는 완전히 다른 규모로 커집니다.
4~5절을 보면,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왜 온 땅입니까? 왜 만국입니까?
이건 갑자기 나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앞 11장 12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이미 열방을 향해 기치를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시려고 열방이 보는 앞에 깃발을 드신 겁니다. 그 열방이 이제 12장에 와서, 구경만 하는 자리에서 직접 들어야 할 자리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 열방이 들어야 할 내용이 무엇입니까?
앞서 함께 본 10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앗수르 왕은 자기가 정복한 것이 자기 손의 힘이라고, 자기 신들의 능력이라고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정확히 그 반대를 선포합니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은 앗수르의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한 분이시라고 선언합니다. 앗수르가 자기 신을 자랑했던 그 열방에게도, 참으로 이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이 누구신지 알려져야 합니다.
마지막 6절입니다.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이 이름은 지금까지 이사야서에서 죄를 폭로하시고 교만을 무너뜨리시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자주 연결되었습니다.
그런데 12장 마지막에서 그 거룩함이 놀라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섭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우리를 떨게 하셨던 그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제 우리를 떠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으로 노래됩니다.
거룩하신 분이 어떻게 죄 많은 우리 가운데 계실 수 있는지, 오늘 본문은 그 답을 다 말하지 않습니다. 그 답은 훨씬 뒤에, 이사야 53장에 가서야 나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12장의 사람들은 아직 그 답을 다 알지 못한 채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 가운데 거하실 수 있는 길을 그리스도께서 여셨습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시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하신 그분 때문에, 진노가 위로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새벽, 우리는 이스라엘과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몸의 시계가 아직 좋은 소식을 다 못 따라간 자리, 여전히 무릎 꿇고 구하는 자리입니다. 전쟁은 끝났는데, 몸은 아직 그걸 못 믿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힘이시고 노래시고 구원이십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우리에 양이 한 마리도 없어도, 주 여호와가 나의 힘이시라는 것 하나를 붙잡고 이미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혼자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물에서 함께 길어 마시는 것처럼, 한 사람이 붙잡은 그 은혜는 목장에서 나눌 때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눌 때 그 은혜가 진짜였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우리끼리만 알고 있을 수 없습니다.
앗수르가 자기 신을 자랑하던 그 만국에게, 참으로 이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이 누구신지 전해져야 합니다.
이사야 12장의 백성들은 거룩하신 분이 어떻게 죄 많은 백성 가운데 계실 수 있는지 그 답을 다 알지 못한 채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그 사실 하나로 노래할 수 있습니다
새벽에 나와 앉으신 여러분, 아직 현실이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다 따라오지 못한 것 같은 자리에서도 오늘 이 말씀을 붙들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여전히 무릎 꿇고 구해야 할 일이 있고,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주께서 전에는 노하셨으나 이제는 우리를 안위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무엇인가를 주셔서만이 아니라, 여호와 자신이 우리의 구원이시고 힘이시며 노래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된 다음이 아니라, 아직 기다리고 구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두려움 없이 노래하며, 그 구원의 기쁨을 우리의 가정과 목장과 삶의 자리로 흘려보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시깨묵】
① 어제와 오늘, 나는 "다 끝났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던 순간이 있었는가?
② 어제와 오늘, 나는 상황이 풀리기를 기다렸다가 감사하려 했는가, 아니면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힘으로 삼아 먼저 감사했는가?
③ 어제와 오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어주신 구체적인 순간은 언제였는가?
④ 어제와 오늘, 내가 받은 은혜를 나 혼자 붙잡고 있었는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나누었는가?
⑤ 어제와 오늘, 나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누군가에게 말로 전한 적이 있는가?
⑥ 어제와 오늘, 나는 하나님을 여전히 두려운 심판자로만 느꼈는가, 아니면 나와 함께 계신 분으로 느꼈는가?
⑦ 오늘 하루, 이 말씀을 붙잡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다르게 살아보겠는가?
【추천 찬송가】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은혜의 찬양】
하나님이시여: https://youtu.be/-TjFnvLibco?si=iT6OzJErZvXIs0oG
【새벽예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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