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소속감을 느낄 때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갖게 된다. 본절에서 의인과 악인, 또는 하느님을 섬기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두부 자르듯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그들이 누리는 권리와 더불어 책임의식을 가지게 되는 가의 여부로 말씀하고 있다. 의인을 하느님을 섬기는 자로 동일시한 것은 무신론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반박할 여지를 준다. 그러나 이것의 의미는 우리 존재의 근원에 관한 것이다. 즉 우리가 생명의 근원에 대해 소속감을 느낄 때, 책임 의식을 동시에 가지게 됨을 의미한다. 또한 그런 책임 의식은 결과적으로 더 행복한 삶으로 인도 되게 한다는 뜻이다. 생명의 근원에 대해 아무런 책임 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책임 의식이 부재하므로 행동에 제약을 느끼지 않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그 결과는 재난과 불행이 찾아 온다. 말라기는 그것이 현실로 입증된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우리는 단지 도덕적 의무감만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도덕적 책임감이 우리에게 행복과 생명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이해할수록 기꺼이 그리스도의 정신이 우리 안에 스며들게 된다. 그래서 그것을 보다 빨리 깨닫고 실천하는 자가 선각자인 것이다. 사람들이 책임을 느끼지 않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각자인 우리가 그들도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우는 것이 우리의 책임인 동시에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권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조직은 단지 충동적 행동의 결과가 재난과 불행으로 다가온다는 심판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 아니다. 만일 심판의 소식만을 전한다면 그것은 너희가 우리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해로운 영향을 주었으니 보복을 받아 마땅하다는 감정의 해소에 불과한 것이다. 보다 중요하고 근원적인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정신대로 살아갈 때, 더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말로만 하느님을 믿으면 복이 온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정신대로 살아갈 때 구성원들 사이가 좋아져 정신적으로 더욱 행복해질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더욱 풍요로워 진다는 것도 입증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단지 현 사회제도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자본주의적 구조보다 훨씬 더 생산성에 있어도 효율적임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참그리스도인 조직의 구성원들은 사회 제도와 생산성 그리고 각 분야에 대한 연구가 부지런히 선행되어야 한다.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힘만이 사회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적 이론의 모순과 단점을 찾아내고 그것의 실천적 수정안을 제시할 수 있고, 또 결과가 실제로 그렇게 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열강은 당연히 이 방식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말라기의 오늘 본문이 진정한 의미에서 성취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