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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점심이 되기 전, 해가 중천에 오르기 시작할 때 헐몬공작이 왕을 찾았다. 그는 한잠도 못 잔 얼굴이었다.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날카로운 얼굴은 눈 밑의 다크써클이 그 피곤함을 더해 더욱 음산하고 푸석푸석했다.
쫓기는 토끼처럼 그는 나약해 보인다.
“무슨 일이야?”
가드미온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투였다. 누님의 저택에 자객이 들었다는 사실마저도 마치 자기와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재재거리는 새장만 손가락으로 툭툭 건들며 간혹 웃음을 짓는다.
그의 그런 답답한 모습에 헐몬공작은 머리가 터질 정도로 화가 치밀었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메마른 입술을 적시고 말했다.
“큰일이 생겼습니다 전하.”
큰일? 가드미온의 얼굴에 궁금증이 어린다. 그는 새와 장난치는 것을 뒤로 미루고 곧 소파에 앉았다.
마음이 급한 헐몬은 풀썩, 소리를 내며 건너편 소파에 앉고 초조한 두 손을 맞잡으며 어떻게 하면 이 불행을
조금 더 극대화시켜 왕에게 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득해 보였다.
가드미온은 자애롭고 온화한 왕처럼 뭐든 지 말해보라는 얼굴이었다. 이에 헐몬공작은 곧 속사포처럼 쏟아 부었다.
“그게.. 혹시 데스칸테 공작에 있었던 자객사건을 아십니까?”
가드미온은 곧 그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는 척을 한다. 손바닥 보듯 훤히 아는 그 일을.
그의 느린 태도에 분통이 터진 헐몬은 곧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사건의 범인은… 황송하게도 왕비전하이십니다.”
왕비라는 말에 가드미온은 눈썹을 한번 동그랗게 뜨곤 ‘그래서?’라는 눈으로 헐몬공작을 바라봤다.
헐몬공작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오만하고 건방진 데스칸테를 벌하자고 모인 몇몇 동지들도 그에게 등을 돌린 터.
그렇게 믿음직스럽던 시몬도 연락이 두절되었다. 아무리 바보 같은 왕이라지만 그래도 왕은 왕이다.
그라도 헐몬공작의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 헐몬공작은 흥미를 잃은 눈의 가드미온에게 말했다.
너무나도 간절하게
“헌데 제 사병을 빌려가셔서.. 잘못하면 왕비전하 대신에 제가 범인으로 몰릴 판입니다.”
헐몬공작은 마른입을 다셨다. 하지만 가드미온은 여전히 ‘그래서?’ 라는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생긋 웃고 하는 말이 고작.
“아니라고 말해. 그는 신사니까 믿어줄 거야.”
속이 터진다. 이런 미련한 놈을 보았나! 몰라도 너무 모른다. 비앙카의 복수를 해야 한다며 스스로
데스칸테 공작은 쳐내야 한다고 한 것이 누군데!! 이렇게도 왕이 야속할까.
헐몬은 더 이상 그에게 기댈 곳은 없다고 여겼다. 그리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왕에게 물었다.
더 이상 믿을 곳이 없어진 그의 목소리는 더욱 힘이 없었다.
“혹시... 데스칸테 공작이 상세문제로 전하를 알현한적이 있사옵니까?”
떨리는 목소리. 가드미온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응. 덧붙이자면 누구의 생각이냐고 묻길래. 난 헐몬경의 생각을 따랐다고 말했어.
사실 먼저 제안한 건 헐몬경이었으니까. 틀린 말도 아니지.”
가드미온은 헐몬공작을 끝까지 응시하며 말했다. 그리고 즐겼다. 그의 말이 시작되고 끝남과 동시에
점점 더 절망으로 빠져드는 헐몬공작의 얼굴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눈썹이 구겨지고 미간도 찌푸려지고 메마른 아랫입술과 그곳에서 새어 나오는 허탈한 한숨까지 모두.
그러다 갑자기 그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의 얼굴은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일그러졌다.
애써 분노를 삼킨듯한 목소리로 헐몬공작은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 대답하셨습니까?!”
“사실이잖아.”
“만약 전하의 말로 데스칸테 공작이 저를 불쾌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하셨습니까?”
헐몬의 그 말에 가드미온은 피식 웃었다. 한쪽 입 꼬리를 올린 그의 미소는 냉소적인 후안을 연상시켰다.
곧 그는 그 미소를 버리고 곧 팔자눈썹을 하곤 안타까운 듯 헐몬공작을 바라봤다.
“난 바보잖아.”
그리고 다시 웃음. 교활한 웃음. 승리자의 웃음. 멍한 헐몬공작은 그런 가드미온을 바라보며 그 어떤 말도 잇지 못했다.
가드미온의 한쪽 입 꼬리가 올라가고 마저 다른 입 꼬리가 올라가며 그가 웃는 얼굴.
평소엔 바보 같다고 생각하던 실팍한 계집 같은 웃음. 그러다 뚝, 가드미온은 웃음을 거두었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가주겠어? 지금 급하게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그는 더 이상 바보가 아니었다. 똑바로 헐몬공작을 응시하며 말한 그는 날카로운 얼굴이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에 얼떨떨한 헐몬공작은 어떤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머물렀다. 저게 왕인가?
내 멋대로 조종하던 허수아비가 맞나? 온갖 감정이 교차했다 하지만 헐몬공작이 왕에게 할 말은 없었다.
아니 차마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승리감에 도취된 가드미온은 곧 소파에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통쾌하다.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고 적을 없애는 건 짜릿한 쾌감이다.
이제 후안만 움직여주면 5년동안 가드미온을 이용해 정사를 마음대로 주무르던 헐몬공작도 이별이다.
◈
“꼭 가야 하는 거야?”
브리가 투정을 부린다.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 후안이 특히 약한 표정이다.
“그래.”
하지만 그도 오늘만큼은 단호하다. 거울 속의 매무새를 가다듬은 후안은 침대에 누운 브리를 바라봤다.
하마터면, 아기가 유산될 뻔 했으니 그녀의 안정과 휴식은 그에게나 브리에게나 중요한 것이고 그랬기에
브리는 당연히 후안이 오늘도 곁에 있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어제처럼 그녀를 꼭 끌어안아주고 뜨거운 수프는
호호 불어주며 잠을 잘 때는 팔베개를 해줄 것이라고.
하지만 후안은 일어나고 늦은 아침을 먹더니 또 나간다고 한참 준비 중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쁘길래?
“나도 아프고.. 후안도 다쳤잖아. 후안, 옆에 있어줘. 응?”
간절한 그녀의 부탁. 화장대 위 올려진 모자를 푹 눌러쓴 후안은 곧 브리를 바라봤다.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브리.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늘 헐몬공작을 좀 만나야 해. 푹 쉬고 있어.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
짧게 말했다. 하지만 애정이 어린 달콤한 어조로. 그때, 끼익 하며 문이 열리더니 알렉스의 모습을 한
알리시아가 들어왔다. 브리를 보고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후안을 다시 응시한 알리시아.
“나가지.”
셔츠의 단추를 마저 여미며 후안은 곧 걸었다. 곧 쿠션에 기댄 브리는 알리시아를 바라봤다.
브리의 시선을 확인하고 어색하게 웃는 알리시아. 브리는 또다시 묘한 기분이 그녀를 감싸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질투라고 정의하는 그 감정을. 후안은 또 브리를 두고 나가려고 한다 다른 여자와 함께!
평소라면 알리시아니까, 당연히 하고 넘겼겠지만 오늘은 특별하다.
그 험한 일을 겪은 지 겨우 만 하루이고 아이를 잃을 뻔 했다는 엄청난 충격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다.
후안이 있어야 해! 브리는 말했다.
“아픈 날 두고 가겠다는 거야? 하마터면 우리 아이를 또 잃어버릴 뻔 했는데도?”
그녀의 말에 후안이 우뚝 멈췄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알리시아는 괜히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조금
주눅이 든 모습으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마치 자신이 친 장난 때문에 부모님이 언성을 높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어린 아이 같은 모습. 그녀는 힐끗 브리를 바라봤다. 브리는 커다란 다갈색 눈을 부라리며 후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안도 브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브리의 어울리지 않는 그 도끼눈을 보고 있다.
곧 체념한 어투로 후안이 말한다.
“정말 많이 아픈 것 같군. 일찍 돌아올게. 한숨 자던지 해.”
그리고 다시 등을 돌렸다. 브리는 곧 침대에 앉았다. 의사는 절대 일어나지 말고 누워서 시중을 받으며 편히
쉬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 말을 기억하고 되새기기엔 지금 너무 급했다.
“그럼 나도 데려가! 준비할게!”
그러더니 이제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폼을 잡는다. 후안은 곧 짧게 한숨을 쉬고, 또야? 라는 얼굴로
브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억지 부리지 마. 네가 갈 곳이 아냐. 그러니까, 남자들의 일이라고.”
남자들의 일? 브리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발끈한 그녀는 알리시아가 눈앞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외쳤다.
“그럼 알리시아는 되고? 알리시아가 가는데 내가 안 될게 뭐야? 난 데스칸테 공작부인이야!
남편 가는 곳에 따라간다는데 무슨 문제야?”
“아프잖아! 쉬어. 그리고 푹 자. 너 지금 굉장히 이상해.”
후안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러나 브리도 질 수 없었다.
“안 이상해! 후안이 이상해!”
브리는 흘깃 알리시아를 바라봤다. 그리곤 다시 후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길드모임에 한번도 데려가지 않았잖아. 그런데 후안은 알리시아는 꼭 데려가지?”
“길드? 알리시아만 같이 가는 게 아니야 반 루앙도..”
“그렇다면 왜 나는 데려가지 않아? 말해 봐! 내가 못 갈게 뭐야? 왜 나를 빼고 항상 둘이 어딜 가는 거야?!”
갑작스런 길드의 언급에 후안은 어이가 빠진 얼굴로 브리를 바라본다.
왜 갑자기 그녀가 그러는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임신 히스테리?
그렇다면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후안은 다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알리시아에게 어서 가자는 듯 눈짓한다.
알리시아는 불안한 얼굴로 브리를 바라보더니 죄진 사람처럼 마른입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는 민감하다. 특히 임신한 여자는. 브리는 곧 그 둘 사이에 신호가 오갔다는 생각에 소리쳤다.
“알리시아는 되는데 왜 나는 안돼?! 곁에 있던지 아니면 나를 데려가!! 내가 이렇게 아픈데도, 이렇게
싫다고 하는데 왜 또 알리시아랑 같이 나가는 거야?! 옆에 있어줘. 나 아프단 말야.”
점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곧 브리의 도끼눈은 후안이 아닌 알리시아를 향했다.
저 아네트와 똑같이 생긴 여자아이. 착하다 생각했지만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다. 브리는 알고 있다.
후안이 저택에 들어오지 않을 때, 브리와 같이 있지 않을 땐 항상 저 여자아이와 함께다.
그저 밑에서 거두는 아이라는 이유로. 일을 배우는 아이라는 이유로. 불안하다. 분통이 터진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도 저 아이가 내가 갈 수 없는 곳, 후안이 내겐 허락하지 않는 동행을 함께 한다는 게
못내 짜증이 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말았다. 알리시아와 함께 후안이 나갔다.
또 브리는 갈 수 없는 곳엘 후안과 함께 하겠지. 분하다!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아기를 위해서
이 모든 화를 참아야겠지만 아직 마음을 조절하기에 스물 한 살은 너무 어렸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곧 투명한 눈물이 서럽게 흐른다. 불안이 다가왔다. 아네트. 그 사악한 아네트를
닮은 알리시아. 마른 팔이 눈물을 쓰윽 훔쳤다. 후안이 밉다.
◈
그로부터 두달 뒤. 델프라의 광장엔 몇 년 만의 공개처형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흥미 있는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모여들었고 높은 단 위에는 날렵한 단두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최후의 날이 될 오늘. 하늘은 야속하게도 너무나도 화창하고 맑다.
“어머 이게 웬일이래요?”
끝에 레이스가 달린 천으로 머리카락을 감싼, 겁이 많은 커다란 눈의 부인들은 서로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곧 이어질 공포스러운 장면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수다의 주된 내용은 그 완벽해 보였던 데 헐몬공작의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인즉 그가 사병을 시켜 후안 데 데스칸테 공작에게 자객을 보냈는데 그 자객 때문에 공작이
크게 다치고 아기를 갖은 공주가 유산을 할 뻔했다. 허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 욕심 많은 헐몬공작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그 잘못을 왕비가 시켰다면서 자신의 딸인 왕비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려고까지 했다. 결국 그 죄는 천하에 드러나 왕에게 재판을 받은 그는 사형을 선고 받았고.
뻔뻔한 그는 끝까지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면서 외쳤단다.
이 일에 왕이 어떻게 개입이 되어있고, 누구의 시나리오인지 백성들은 알 리 없었다.
그저, 자신의 딸에게 그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려고 하고. 한때 온 백성의 사랑을 받았던 그 착하고
아름다운 공주님을 해하려고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중죄인이었다.
하필이면 같은 공작과 왕비를 그리고 왕의 누이이자 백성들의 사랑을 받던 공주를 건드리다니,
그의 경솔함에 혀를 차는 사내들도 없잖아 있었다.
어쨌든 처형장엔 루엥의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잔뜩 모였다.
그때, 단두대에 가까운 앞쪽에서부터 백성들의 야유소리가 들려왔다. 공기와 함께 온 광장에 퍼지는
그 소리는 오늘 최후를 맞을 헐몬공작의 등장을 알렸다. 정말 죄인처럼. 두 손이 결박된 채 새하얀 죄수 복을 입고
등장한 그는 신발도 신지 못한 초라한 몰골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군중들을 막은 병사들 앞에 쭈그려 앉아 그들의 무릎 사이로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죄인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 어린 아이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죄인을 향한 백성들의 썩은 과일이나, 음식찌꺼기 혹은 돌멩이 같은 물건들이 헐몬공작의 힘없는 몸뚱이를
가격하고 곧 그는 단두대 앞에 무릎이 꿇려졌다. 그리고 곧 상체가 눕혀지고.
철컥 하는 병사의 칼을 뽑는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뜨겁게 쏟아지는 햇볕에 반짝인 날이 선 칼이 줄을 갈랐다.
휘리릭 소리가 끝 날쯤 데구르르 소리가 그 뒤를 이었고, 끈적하고 기분 나쁜 붉은 액체가 단위에 뿌려졌다.
◈
얼마 전에 22살이 된 브리는 오랜만에 외출준비를 했다.
연노랑 빛의 풍부한 레이스의 드레스를 입은 브리는 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했다.
두 달 전의 아픔은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와 브리는 건강해졌고. 다쳤던 에르웬의 상처도 점점
회복이 되어가 종종 브리의 침실을 찾아와 빨랫감을 가져다 놓는 둥, 몸이 찌뿌드드해 안되겠다며
벌써부터 팔을 걷어 부치며, 다시 집안일을 시작하고 마님을 제대로 모셔야 한다며 야단이다.
물론 의사를 포함 여러 하인들 그리고 브리가 말리는 통에 그녀의 바램은 무산되곤 하지만.
마지막으로 외출 전 풍성하게 올린 머리와, 그 위에 쓴 오트밀색의 레이스 장식용 모자의 모양을 다듬던 브리는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문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긋 미소를 짓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쁘네, 알리시아.”
몸이 낫고, 아이가 안전해졌다고 의사가 말한 건 오래된 이야기였지만 이미 첫아이를 잃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후안은 절대 브리가 침대에서 벗어나는걸 두고 보지 못했다. 겨우 침대를 벗어나 저택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허가가 떨어진 것은 고작 3주 전. 드디어 후안이 브리가 볼에도 살이 오르고 팔도 꽤 튼튼해졌다는 것을 인정한 그 날이다.
물론 그 전에도 후안이 없을 땐 당연히 이곳 저곳을 다니거나 정원에서 일광욕을 하는 둥 시간을 보냈지만
저녁에 야식을 먹으러 식당에 갈 수 없다는 것과 (후안은 둘만 있을 때 하녀들이 곁에서 얼쩡거리는걸 무척 싫어했다.)
후안이 돌아올 저녁시간이 되면 괜히 초조해지는 것을 생각하면 여간 불편했다.
그리고 일주일이나 외출을 허락해달라고 조른 결과. 오늘, 알리시아를 대동한다는 조건하에
아기 옷이나 새로 나온 드레스 (물론 향수가 화장품은 아기에게 해롭기 때문에 금지였다.)를 구경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브리가 좋아하는 쉬농의 케이크를 맛볼 수 있는 것도 포함하여.
“전.. 좀 어색해요.”
알리시아는 멋쩍은 듯 말했다. 브리가 날 때부터 화려한 드레스와 모자와 함께하고 그리고 코르셋과 어깨가
파인 드레스와 함께한 사춘기를 보냈던 반면, 철들기 무렵부터 사내 옷을 입고 살았는데 하늘하늘 거리며
어깨가 드러나는 드레스와 숨도 쉬지 못하게 하는 코르셋은 여간 불편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흔들거리는 높이 묶인 머리카락과 그것을 단단히 여민 장식도.
“아냐, 귀엽기만 해.”
브리는 짧게 답했다. 그녀는 오랜만의 외출에 들떠있는지 평소라면 정말 예쁘다며 알리시아의 기분을
달래주었겠지만 곧 그녀의 고민은 밀어버리고 헤겔 거리의 어떤 가게들을 갈 것인 지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알리시아로써는 브리가 자기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게 다행으로 여겨졌다.
브리는 두 달 전 후안에게 알리시아만 왜 길드에 데려가냐며 기를 쓰고 소리를 쳤던 일을 잊은 것 같았다.
알리시아는 그의 말에 무려 몇 주나 마님에게 미움을 샀으면 큰일이라고 전전긍긍해 했기에 후안의 마님을
모시고 외출을 하라는 명에 혹시 마님이 자신에게 까다롭게 굴거나 정말 미움을 사서 나와 동행하는 게
죽도록 싫다고 말할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브리는 여전했다.
알리시아에게 자신의 예쁜 드레스를 한 벌 또 빌려주고, 알리시아가 망가뜨렸던 구두와 비슷한 보라색의 스트립슈즈도 빌려주었다.
물론, 남자의 모습을 한 알리시아와 돌아다니면 브리가 오해를 받을 것이라는 브리를 위한 후안의 배려였지만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알리시아는 그저 마님이 감사했다.
“아기가 꽤 건강하게 자라는 것 같지? 봐, 나 팔에도 살이 붙고 얼굴에도 살이 붙었어.”
복도를 걷던 브리가 말한다. 알리시아를 바라보며 브리는 싱긋 웃어 보였다.
“전하께서 많이 좋아하세요. 마님께서 많이 좋아지셨다고.. 벌써부터 아이가 기다려진다고 종종 반 루앙님께 말하기도 하세요.”
알리시아의 말에 브리는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이미 알리시아에겐 두 번 애무하던 장면을 들킨 기억이 있지만
다른 사람의 입에서 후안의 애정을 전해 들으면 괜시리 연애편지를 들킨 것처럼 쑥스러워졌다.
이미 부부인데.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건 하나의 정의처럼 당연한 것인데도 말이다.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린 브리는 응접실을 스쳐 나가며 말했다.
“그럴 거야, 사실 내가 열 일곱 살 때 첫아이가 생겼는데 태어나기 한달 전에 사산이 되었었거든.
난 그때 철이 없어서 후안 때문이라고 괜히 그이 탓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이도 많이 기다렸을 거야.
그래서 슬펐겠지. 후안이나 나나 그땐 무척 어렸으니까. 왠지 사명감이 느껴져.
이번은 꼭 건강한 아이를 낳아야 할 것 같아. 아니 그래야 해. 휴, 알리시아 난 내가 많이 뚱뚱해졌으면 좋겠어.
그럼 힘도 생겨서 아이도 쑥쑥 잘 낳을 탠데.”
“하지만 마님이 뚱뚱해지시면 전하께서 싫어하실 탠데요? 저도 날씬하고 예쁜 마님이 좋아요.
물론 마님께서는 뚱뚱해지셔도 아름다우시겠지만.”
알리시아의 말에 브리가 쿡 웃으며 말했다.
“그건 후안이 참아야지. 난 꼭 건강한 아이를 낳을 거니까. 후후 칭찬 고마워 알리시아.”
말을 마친 브리는 다시 배시시 웃었다. 곧 현관을 지나 밖으로 나온 브리는 대리석 계단 위에 섰다.
장미나무들을 가로질러 갈색의 마차가 등장한다. 일렬로 선 하녀들이 허리 숙여 마중을 하고
브리와 알리시아는 곧 차례로 마차에 올랐다.
※
이번편은 조금 잔잔~했지요?
하지만 다음편! 스토리가 중반으로 치닫는 만큼 사건이 하나 터질겁니다.
왕기대해주시면 안되구요! 살~짝 아주 살짝만기대해주세요 -_-*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후안이 중심인 바깥일의 비중이 조금 줄어들고 1부처럼 집안의 사건이 조금 부각될거에요.
아아, 앞으로 브리의 감정이 정말 중요한데 제가 잘 표현할지 걱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오타! 문법오류! 지적해주세요 ^ ^ 흐흐 그럼 전 이만 삼순이보러
<- 헤이믹키님이 만들어주신 (정말감사드려요♡) '나비보호구역' 베너에요 카페 많이 놀러오세요♡
첫댓글 오오♥ 브리에게 또 무슨일이 생기는걸까요[두근두근] 아아 - 후안이 브리에게 매달리는모습이 갑자기 보고싶 . <=
일생기죠 생기죠 지금 쓰고있어요!!ㅎㅎㅎㅎ 후안이 메달리는거 보고싶으시단분이 또 계시네요 음 짧은 장면이라도 넣어드릴게요♡ 댓글감사합니다 ^^
아정말 두근두근내가 2번째라니조회수도 15악 그래도 브리와 알리시아가 계속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흐흐 축하드려요♡ 브리와 알리시아의 사이는 음 뭐라 말씀드릴수없네요 그저 지켜봐주세요 ^^ 댓글감사드려요. 님도 짱이에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뇨 미안하긴요~ 글쓰는 저한텐 가장 필요한 역할이지요! ㅎㅎ 사실 제가 또 칠칠해서 두어번봐선 잘 못찾아내요. 흑흑 아무리 지적해주셔도 버릇떄문인지 테를 써야하는데 태를 써서 걱정이에요 빨리 고쳐야할탠데 -_; 긴장감이 들어가야할텐데 하면서 쓴편이라 다행이네요 ㅎㅎ 댓글감사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도 요즘 삼순이봐요.♡그리고 삼순이만큼이나 델프라 소설도 재밌어요.^.^♡알리시아에 대한 마음이 아주 많이 바뀌었어요, 첨엔 좀...후안을 좋아하니까 제가 막 경계<;했는데 이제 알리시아도 브리를 많이 존경하니까 뭐..얘는 제쳐두고~비앙카를 결단내야죠 뭐.흐흣.그리고 헐몬공작은 비앙카의 아버지 아닌가요?비앙카의 아버지를 죽이면 비앙카가 가드미온 많이 싫어할텐데 가드미온 정말 바보된건가요ㅠㅠ<얘가.ㅋㅋ 어쨌든 저번 편에 이렇게 주절하는 것도 없이 옘창 짧게 적었어요.하..여름이라 정말 힘빠져요. 진짜로 어쨌든!!재밌었어요 건필하세요~
지금 제 삶의 낙인 삼순이처럼 재밌다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ㅠ_ㅠ 가드미온도 뭐 다 속셈이 있겠죠~ 이녀석 머리가 보통이 아니니까 흐흐 ㅎㅎ 여름 날 더우면 정말 기운빠지고 힘빠지고 힘들죠 날씨 정말 힘든데 몸 건강히 챙기시길 바래요♡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댓글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 오늘 날씨구립니다-_-..이런 날씨는 노땡큐인데ㅋㅋ그나저나 요번편은 폭풍전야라고나 할까요? 임신하면 아무래도 정말 예민해지겠죠? 이해할수 있지만 그래도 전 착한 브리가 좋네요! 하지만 누가 나한테 착하다고하면 묘한 압박감이 든달까? 그래서 전 착하다란 말을 별로 즐기지[?]않는답니다ㅋㅋㅋ그냥 그렇게 지낼뿐이지요ㅋㅋㅋ 그리고 후안이 바깥일이 줄어들수록 전 좋답니다♡
오늘 저희동네 날씨는 좋았어요! 선선하고 다만 더운건 여전 ㄱ-;; 폭풍전야. 20편에서 의외의 인물과 마주칠거니까 음 어쩌면 그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저도 착한브리가 좋지만 갈등조성을 위해선 브리가 임신히스테리를 좀 부려줘야... -_-* ㅎㅎㅎ 1부에서처럼 집안의 일이 중심이 될거에요. 흐흐 댓글감사합니다♡
으음.. 싫어하실 탠데요 에서 탠 오타네요 ;ㅂ;♡ 다시봐도 재밌어요 ㅋㅋ. 우리 후안씨 브리한테 관심보이는 남자 하나 나타나서 질투하는모습좀 보고싶어욤 ㅋㅋ♡ (삼순이 아까 봤답니다 ㅎㅎ)
앗 지적감사해요!ㅎㅎ 후안의 질투를 원하시는분들이 꽤 계시네요. 남자주인공의 질투도 꽤 재밌는 부분이기도하죠, 조만간 작은 장면이라도 꼭 넣을게요. 댓글감사해요잉♡
이번편도 너무 재밌어요ㅋㅋ 근데 제가 며칠있다가 뉴질랜드에 가게되서 몇일동안(몇주가 될수도 있어요ㅜ)은 델프라의 상인 못볼지도 몰라요ㅜㅜ어떡해. ..........
뉴질랜드! 영어 연수인가요? 몇주라니 ㅠ_ㅠ 보고싶을거에요.. 아마 님 돌아오실땐 이 소설 끝났을지도-_-; 아이스크림 한통사와서 먹으면서 밀린거 착착 읽는것도 꽤 재미있죠 잘 다녀오세요♡
다음편에는 브리의 출산소식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히히 ... 브리 후안 영원히 러브모드 영원히 가는거죠! 음화하하 !!! 그런데 가드미온 너무 귀여운 것 같아요.
다음편은 음 조금 빨라요!ㅎㅎ 언제라고 말씀드릴순 없지만 ㅠㅠ 조만간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음 비앙카 떄버리고 어서 프롬님한테 드려야겠네요 가드미온 ㅋㅋㅋ 댓글감사해요 ^^
음.... 브리와 알라시아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굉장히 기대된다는.... ^^ 건필하길 바래요!!
오오 월애씨♡ 월애씨도 건필!!! 댓글감사해요 ^^
으히히 .. 가드미온 , 멋있게 혈몬공작을 날려버렸네요 ~ ㅎㅎ 그래도 비앙카는 아직 살아있다는 -_-;; 브리의 아이는 딸일지.. 아들일지.. 궁금해요 ㅎㅎ 그때까지 아무런 사고 없기를.. 그리고 학원에서 영어단어 시험 가장 못봤어요 ㅠㅠ 집으로 전화왔다는 ㅠㅠ 영어를 젤로 못해서..ㅠㅠ 흐흑 ㅠㅠ;;
가드미온이 제일 사랑하는게 비앙카니까 쉽게 죽진 않을거에유 -_-* 브리의 이번 아이는 꼭 출산될거니까 걱정마세요 ^^♡ 헐 학원이 너무 냉정하다 못봤다고 집까지 전화하다니 ;;; 기운내세요 ㅠㅠㅠ 토닥토닥..
신부 화장도 아니고 신랑화장이 ㅋㅋㅋㅋ 와 결혼식 재밌었겠네요 음 부페도 가셨을라나?ㅎㅎ 피곤한 와중에도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텍스티콘때문에 헐몬공작의 헐이 굉장히 웃기게 나오는데 재밌네요 ㅋㅋㅋㅋ 음 가드미온이 헐몬공작을 죽이는거에 대해서 좀 더 쓰려다가 냅뒀는데 좀 더 필요할것같네요. 20편에 더 집어넣겠습니다. 알리시아가 나중에 사악해질지 아닐지는 보시면 아시겠죠?ㅎㅎ 댓글감사해요 망가님!ㅎㅎ♡
허우허우허우허우>ㅃ<..<상태 안좋다...ㄱ- ..;; 호호 ;; 이번편도 너무재밌어요 ㅇ+ㅇ 빨리 ㅜㅜ 빨리 후안이 비앙까를 죽이고 깐드미온을.....죽이러 ㄷㄷ.. 하하 약 5편전부터 이 둘이 죽기를 저는 원했죠.. >ㅅ<앙~♥ 헐몬공작죽고나면 비앙까도 자살을 하면 좋구요!ㅇㅂㅇ..알리시아는 브리랑 친해지면 좋겠.. 아네트는 음.. 가여운 마리를 놔두고 바람을 피워서! 시몬(?) 한테 버림받는..뭐 그런 스토리를 원해요!-ㅁ-....
아아 후안이 더이상 살인하기를 원하진 않아요 하지만 넣으면 재밌겠지요 -_-* (사악해!ㅋㅋ) 지금 비앙카와 가드미온이 죽어버리면 아마 소설이 이대로 시시하게 끝나버릴거에요 ㅠ_ㅠ 흐흐 마지막에 말씀해주신 조연들의 최후(?)는 완결까지 지켜봐주시면 아시게될거에요 댓글감사합니다 ^^
지금 막 조선왕족실록 34편 수정하고 있는 도중 인소닷이 생각나서 들렸는데 제가 읽기만하고 댓글을 안았더군요. 결국 .. 몬경 굿바이되었군요. 좀 더 잔인하게 죽여주시죠 ㅜ . 가드미온 너무 귀여워요 _ (빠짐) 이제 비앙카 차례인가요 브리의 출산 +0+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직 몇 편은 지나야 되겠죠 호호. 그래도 몬 경이 죽은 것 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오늘 재밌게 읽다갑니다 가시연님 수고하셨어용
음 저 위에 프롬님 댓글있는데 ㅎㅎ 뭐 하나 더 달아주시면 저야 좋지라!!ㅋㅋㅋ 저번 후안의 내장 너무 잔인하다고 하신분들이 계셔서 걍 깔끔하게 단두대로 정했어요 ㅎㅎ 프롬님을 위해 비앙카를 처리해서 어서 드려야겠네요 가드미온을 ㅋㅋ 근데 조금 걸릴거에요 ㅠ_ㅠ 어쩜 비앙카를 처리안하고 드릴지도 -_-* 조선왕족실록 많이 기대하고 있다는거 아시죠♡ 브리의 출산은 한 2~3편은 더 기다려주셔야 할 것같아요. 감사합니다♡
>_< 어머!! 후안 너무 다정해지는 듯한 필이..>_<..ㅎㅎ 가드미온 슬슬 가면을 벗을려는듯..ㅎㅎ
ㅎㅎ그렇죠 점점 이제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답니다. 댓글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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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님!! 너무 오랫만이에요 ㅠㅠ 잘 계셨어요? 우와우와 진짜 반가워요. 정지 푸셧다니 다행 이제 자주 볼수있는건가요?♡
으아 이제 다음주 월욜날이 개학이네요 방학숙제땜에 계속 못왔어요`죄송해요ㅠㅜ 으아 여튼.....건필입니다 히제이님
벌써 개학이라니 아쉬우시겠어요. 그래도 잊지않고 찾아뵈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하루되세요 ^^
왕기대되는뎅기대되욤>_<
오 꼬마악녀님 오랫만이에요♡♡♡♡ 본까 쭈욱 달아주셨네요 흐흐 뭐하셨어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