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고요한 삼매에 끄달리지 마라 又
竊知에 日來 以此大事因緣으로 為念하여 勇猛精進하니 純一無雜이라하니 不勝喜躍이라. 能二六時中 熾然作為之際에 必得相應也未아. 寤寐二邊에 得一如也未아. 如未이면 切不可一向沈空趣寂이니 古人이 喚作黑山下鬼家活計라. 盡未來際無有透脫之期리라.
편지에서 그대가 “요즈음 이 일대사인연으로 화두를 삼아 용맹정진하니 아무런 다른 생각이 없다.”라는 사실을 은근히 알게 되니, 참으로 기쁨을 참을 수 없습니다.
스물네 시간의 삶 속에서 열심히 살아갈 때 반드시 화두와 마음이 맞아 떨어질 수 있습니까? 깨어 있을 때와 잠잘 때의 화두 드는 경계가 똑같이 여여하십니까?
아직 그렇지 못하다면 절대로 공적한 경계에 빠져 그저 거기에 매달려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옛 어른께서 “깜깜한 산밑에 있는 귀신들의 살림살이로서 영원히 빠져나올 기약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昨接來書하고 私慮左右 必已耽著靜勝三昧리니 及詢直閣公하여 乃知果如所料니라. 大凡 涉世有餘之士는 久膠 於塵勞中이라. 忽然 得人指令 向靜默處做工夫하여 乍得胸中이 無事하면 便認着하여 以為究竟安樂하고 殊不知似石壓草로다. 雖暫覺絕消息이더라도 奈何根株猶在이며 寧有證徹寂滅之期리오.
어제 온 편지를 보고서 저는 그대가 ‘틀림없이 정승삼매(靜勝三昧)에 빠졌다’는 사실을 걱정했습니다. 직각공(直閣公)에게 물어보니 과연 짐작하는 대로 였습니다.
대개 세간의 풍파를 두루 겪은 사람들은 오래 번뇌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고요한 곳에서 공부하라는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 언뜻 가슴속에 아무 일도 없는 경계를 갖게 됩니다. 그러면 바로 이것으로 마지막 편안하고 즐거운 곳으로 삼고 있기에, 이 경계가 돌로 눌러 놓은 풀과 같은 줄은 조금도 알지 못합니다.
잠깐 소식이 끊긴 것을 알았더라도 번뇌의 뿌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기서 어찌 적멸(寂滅)을 사무치게 증득할 기약이 있겠습니까.
要得真正寂滅이 現前이면 必須於熾然生滅之中에 驀地一跳에 跳出하라. 不動一絲毫하고 便攪長河하여 為酥酪하며 變大地하여 作黃金하며 臨機縱奪하되 殺活自由하고 利他自利에 無施不可하라. 先聖이 喚作無盡藏陀羅尼門이며 無盡藏神通遊戲門이며 無盡藏如意解脫門이라하니 豈非真大丈夫之能事也리오.
진정한 적멸이 눈앞에 나타나려면 반드시 타오르며 일어났다 사라지는 번뇌 속에서 훌쩍 이 경계를 한번 뛰어넘어야만 합니다. 있는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긴 강을 저어서 맛 좋은 우유를 만들고 온 땅을 황금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상대에 맞추어서 주고 빼앗되 죽이고 살리는 것이 자유로워 나와 남도 이로워서 베풀지 못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옛 성현들은 이것을 무진장다나리문(無盡藏陀羅尼門)이라 부르고, 무진장신통유의문(無盡藏神通遊戲門)이라 부릅니다. 어찌 참된 대장부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然이나 亦非使然이라 皆吾心之常分耳라. 願컨대 左右는 快着精彩하여 決期於此어다. 廓徹大悟하면 胸中皎然이 如百千日月이라. 十方世界를 一念明了하되 無一絲毫頭異想해야 始得與究竟相應이라. 果能如是면 豈獨於生死路上에 得力이리오. 異日에 再秉鈞軸이면 致君於堯舜之上이 如指諸掌耳리라.
그러나 또한 이것도 새롭게 무엇을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우리 마음속에서 늘 지니고 있는 일입니다. 정말 그대는 정신을 바짝 차려 이것을 반드시 기약하셔야만 합니다. 확 뚫어 크게 깨달으면 가슴속이 환해져 백 개 천 개의 해와 달과 같습니다. 시방세계를 한 생각에 분명히 알되 한 터럭이라도 다른 생각이 없어야 비로소 마침내 도와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과연 이와 같을 수만 있다면 어찌 유독 삶과 죽음의 문제에만 힘을 얻겠습니까. 다시 뒷날 그대가 공직에 발탁되면 그대의 임금님을 요순(堯舜) 위에 올려놓는 것이 마치 손바닥 가리키듯 쉬울 것입니다.
☞ 고요한 경계라도 무엇이든 집착하면 안 된다. 화두를 챙기는 사람은 오로지 화두에 몰입할 뿐 다른 경계는 다 분별과 망상이다. 화두에 몰입할 때 이 자리에서 온갖 다라니와 신통과 해탈이 나온다.
주
又: 이 편지의 줄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공부하지 않고 따로 조용한 곳을 찾아 공부해야 한다고 고집 피우지 말라는 내용이다. 때와 곳은 앞의 편지와 같다.
竊 훔질 절
熾 성할 치
寤寐 오매
정승삼매(靜勝三昧)는 고요히 아무 생각도 없이 앉아 있어야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로 여기서 쓰이고 있다.
출처: 禪 스승의 편지, 대혜 종고 『서장』, 원순 옮김
첫댓글 우리의 삶이 바로 화두가 되어 하는 일들에 정성을 다해 할 때, 그것이 진정한 화두라는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는 일들이 재미있어야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
즐거운 하루 되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서장은 어려워요. 오늘 이 말씀도 무엇을 이르시는지, 아시겠습니까?
한번 말씀들 하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