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3대 통신’ 과점체제 허문다
[비상경제민생회의]
尹, ‘경쟁 강화 특단조치’ 지시
“은행 예대마진 축소할 필요
통신업계 요금 부담 낮춰야”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과점 체제인 은행과 통신업계의 실질적인 경쟁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만들어 보고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이른바 ‘경쟁 무풍지대’로 불리던 5대 은행과 3대 통신사의 과점 체제를 허물기 위해 신규 시장참여자의 시장 진입을 열어주는 방안까지 열어두고 경쟁 환경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금융권과 통신 분야는 서비스의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정부의 특허에 의해 과점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며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이같이 지시했다고 최상목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밝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과점 체제에 따른 이윤이 기업들에 귀속되고 소비자 효용은 개선되지 않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하게 독려해왔다”고 말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금융권을 향해 “은행 산업의 과점 폐해가 크다. 금융부담 완화를 위해 은행이 (소비자 금융부담 완화를 위해) 예대마진을 축소하고, 또 취약 차주를 보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통신비 문제에 대해선 “통신요금 선택권 확대와 통신시장 경쟁 촉진을 강화하라”며 “통신요금 구간을 세분화해 국민의 통신요금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사실상 과점하고 있는 통신업계에서 경쟁을 유도해 소비자 편익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신한은행,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깨고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열어두고 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실질적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개선책 마련이 안 될 경우엔 신규 시장 진입을 위한 새로운 은행을 만들도록 관련 길을 열어주는 방향이 추진될 수도 있다”고 했다. 통신시장 경쟁 촉진을 위해 제4이동통신사의 시장 진입을 유도하는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독과점 체제의 폐해를 해소하는 방안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尹 “경쟁시켜 금융-통신비 경감”… 신규은행-제4이통사 선정 추진
정부, 은행-통신 과점 손본다
경쟁 촉진서 새 은행 인가까지 검토
제 4이통 후보군은 게임사 등 거론
투자 자본 댈 기업 나타날지가 변수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직접 은행·통신업계의 과점 폐해를 언급하며 경쟁시스템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것은 최근 경기 침체 상황 속에서 이 같은 폐쇄적인 경쟁 체제가 서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담합 구조를 혁파하고 완전 경쟁을 유도해야 시중은행의 고금리나 높은 통신 요금 문제가 해소돼 그 편익이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경쟁 촉진부터 새 은행 인가까지 모두 검토
윤 대통령은 특히 5대 시중은행의 과점 체제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상목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회의에서 금융·통신 비용 경감 필요성을 특히 강조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은행 지배구조 개선은 관료 출신 공무원들이 실행에 주저할 수 있는 만큼 대통령이 직접 문제를 언급한 것”이라며 “과점 체제를 개선해 시장에 경쟁을 촉진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은행 과점 체제를 허무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예대마진 축소 외에도 예대금리 차 공시, 대환대출 및 예금 비교 추천 플랫폼 등을 통해 기존 금융사 간 경쟁을 강화하거나 금융-정보기술(IT) 간 장벽 완화를 통해 유효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 등을 언급했다.
이런 대통령실의 의지에 따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경쟁 체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인터넷은행 등 15곳의 일반은행이 영업을 하고 있지만 예금과 대출은 일부 주요 은행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전체 일반은행의 원화대출금 1429조7300억 원 가운데 4대 시중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79.8%에 이른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은행들이 높은 수익을 내는 원인을 살펴보면서 결국 경쟁이 불충분한 것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됐고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다른 참여자들도 시장에 들어와 경쟁하는 방안을 검토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새로운 은행의 인가부터 기존 은행 간 경쟁 강화, 금융 서비스 플랫폼 강화 등 방안을 두루 살펴본다는 계획이다. 우선 인가 단위를 세분화하는 ‘스몰 라이선스’를 통해 중소형 은행을 만들어 금융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방안이 거론된다. 서민금융이나 소상공인 전문은행 등이 기존 은행과 경쟁하는 형태다.
다만 기존 판도를 뒤흔드는 규모의 은행이 새로 등장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은행업은 초기 투자 자본이 굉장히 큰 산업”이라며 “정부가 실제로 새로 허가를 내준다고 해도 신규 은행이 등장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 제4 이통사 선정도 재추진
정부는 통신 분야에서도 20년 이상 굳어진 3사 중심의 시장을 개혁해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통신 서비스의 품질과 요금제 개선을 위한 건전한 경쟁이 촉진돼야 한다”면서 소비자 선택권 확대와 경쟁 촉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통신 3사가 5세대(5G) 서비스 투자나 중간 요금제 출시에 미온적이었다는 판단하에 “이번엔 제4 이동통신 사업자를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8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과거 통신 3사도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땐 정부 지원을 많이 받았다”며 “국민 편익을 위해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업체에 여러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안팎에서선 국내 대형 플랫폼 업체와 게임사, 전자상거래 업체 등이 제4 이동통신사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ICT 업계에선 중소 사업자가 도전했던 과거 사례와 달리 이번엔 재무 건전성을 갖춘 대기업이 뛰어들면 제4 이동통신사 선정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자금력을 갖춘 후보를 찾지 못해 새 통신사 선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앞서 정부가 주파수 할당을 통해 새로운 통신 사업자를 선정하려는 시도는 2010년부터 7차례 모두 무산됐다. 이에 정부는 새 사업자를 선정하는 대신 저가 요금제 중심의 알뜰폰(MVNO) 활성화로 정책을 선회했지만 이 시장에서도 통신 3사의 계열사가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과점 구조는 계속 유지됐다.
장관석 기자, 김도형 기자, 신규진 기자, 지민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