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한인현은
깜둥이와 흰둥이를 반복하면서 살았다.
고향이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낀 원산이었기에,
여름이면 눈과 치아만 흰 깜둥이로 살았던 것이다.
그의 가슴 속에는 늘,
명사십리 갈마반도의 푸른 파도와 하얀 모래와 붉은 해당화가 일렁거렸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발령 받은 곳이 가남초교였다.
지금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길목이다.
그러다 전쟁이 터졌다.
무작정 피난행렬을 따라 부산으로 갔다.
가족과도 모두 헤어진 한인현은
고향생각이 나면 고향의 바람과 햇살을 닮은 송정리 해수욕장을 거닐었다.
어느 날,
종일토록 해변을 거닐던 그의 눈에 조그만 오두막집이 들어왔다.
어부의 집이리라.
물이라도 한 모금 얻어 마실까 하면서 오두막집을 들어섰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문을 여니 엄마를 기다리다 지친 아기가 혼자서 잠들어 있었다.
그는 바가지를 찾아 두멍<큰 물항아리>에서 물 한 바가지를 떠서 단숨에 마셨다.
그 맛이 기막혔다.
그리고 오두막을 나서자
저만치서 한 여인이 굴바구니를 이고서 달려오고 있었다.
굴을 캐던 여인이었다.
아무도 찾을 리 없는 오두막에 낯선 남자가 접근하자 기겁을 하고 달려 온 것이다.
사연을 전해들은 여인은 그에게 풋고추에다 보리밥에다 까지 대접해주었다.
순간,
그에게는 유년시절 명사십리의 추억과 송정리의 풍경이 오버랩되었다.
가방에서 노트를 꺼낸 그는 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 노래에
스르르 팔을 베고 잠이 듭니다...
그의 시를 본 친구 이흥렬은 무엇엔가 감전된 듯이 흥분했다.
그리고서 단숨에 곡을 붙이니 이게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노래 '섬집아기'가 되었다.
한국인의 원초적인 감성을 제대로 살린 애틋한 노래다.
지금 섬집아기 연고권을 놓고 여러 지역이 싸움중이다.
10여 년 전에는 제주에서 섬집아기 시비를 세우기로 했다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노래비는 말이 안 된다는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그 외에도 유명 작품이나 지역의 연고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사례가 많다.
심청을 놓고 출생지로 추정되는 전라도 곡성군과 인당수인 백령도가 다투고 있고,
논개의 연고권을 놓고도 적장을 안고 장렬하게 죽은 진주시와 출생지인 장수군이 다투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로 영험하다는 팔공산 갓바위는
대구 동구청과 경산시가 다투고 있다.
그러다가 경산시가 승리하여 갓바위 축제를 벌이자
동구청은 갓방구 축제로 맞서고 있다.
지금은 문화 컨텐츠 시대,
연고권만 주장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하나의 컨텐츠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철학과 비전,
문학과 상상력이 결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상품화 할 수 있는 마케팅 능력이 결합되어야 한다.
영국에서는 있지도 않은 쥴리엣의 가묘를 만들어 놓고 관광객을 끌고 있으며,
덴마크에서는 바닷가에다 안델센의 동화에 나오는 인어공주상을 만들어 놓고
관광객을 유혹하고 하고 있다.
안동 도산서원 쯤에다 세계적인 '담론장'을 하나 만들고 싶다.
알다시피 도산서원은 퇴계선생의 고향이자 유성룡, 김성일과 같은 유학자를 길러낸 곳이다.
조선조 최고의 두 석학 퇴계와 율곡은 도산서원에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율곡이 그의 외갓집 강릉을 가는 도중에 안동에 들러 짧으면 2, 3일 길면 보름 동안 머물면서
문학과 철학과 인생을 논의하던 곳이다.
이 정도의 배경이 있으면 스위스 다보스 포럼과 같이,
세계적인 문제를 논의하는 공간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21세기의 경쟁력은 무형의 자신인 것이다.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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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작사가가 누군지도 모르고 노래많이 불렸네요..
친손주 녀석 어릴때 이노래만 부르면 유모차에서 잘 자더라구요...
그랬지요...참 노래란 논리 이전의 원초적 삼성의 세계!
님의 말씀에 깊은 동감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이원적 적자논리 정리되고 재조명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