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에 관한 한 할말이 많은 사람이다.
얼마 전까지 두주불사형의 술꾼 노릇을 하여 아내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
‘밥은 바빠서 못 먹겠고, 죽은 죽어도 못 먹겠고, 술만 수울술 넘어간다.’는
각설이 타령의 한 구절을 읊조리며 거의 매일 줄기차게 마셔댔던 것이다.
나의 음주 습관은 군대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군대에서 배워 사회에 나와서까지 즐겨 사용한 주법은 ‘놓털카’와 ‘찡떼오’이다.
‘놓털카’는 한 번 든 술잔을 ‘놓’지도 말고, ‘털’지도 말고, 마신 뒤에 ‘카’하는 소리도 내지 말라는 주법이다.
그리고 ‘찡떼오’는 ‘찡’그리지도 말고, 술잔에서 입을 ‘떼’지도 말고, 술잔을 ‘오’랫동안 들고 있지도 말라는 주법이다.
나는 독한 소주를 즐겨 마셨다.
나는 겨울에 마시는 차디찬 소주 맛을 잊을 수 없다.
예로부터 밥은 따뜻한 것이 좋고, 국은 뜨거운 것이 좋으며, 술은 찬 것이 좋다지 않은가.
그래서 술먹기는 겨울같이 하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겨울철에는 소주가 제일이다.
옛날에 추운 북쪽 지방에서는 소주류,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는 막걸리를 더 즐겨 마셨다는 걸 보면 겨울 술은 역시 소주인 것이다.
소주는 원래 천천히, 조금씩 마시는 것이 좋다.
그래야 술도 덜 취하고 오래 마실 수 있다.
나는 회사에서 알아 주는 술꾼이었다.
‘놓털카’다 ‘찡떼오’다 해괴망측한 주법을 동원하여 소주를 물 마시듯 했으니,
그런 나를 보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회사에서 술 마실 건수를 잘 만들었다.
회사 동료들에게 갖가지 구실을 붙여 술을 사게 하는 데는 거의 이골이 나 있었다.
집들이, 송별식, 환영식은 물론이고,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술을 사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새옷을 사입고 출근한 동료에게는 ‘착복주’,
새차를 구입한 동료에게는 ‘승차주’,
이발을 한 동료에게는 ‘벌초주’,
새 구두로 바꾼 동료에게는 ‘착화주’,
와이셔츠 단추가 떨어진 동료에게는 ‘단추주’,
허리띠를 바꾼 동료에게는 ‘혁띠주’,
상사에게 꾸중을 들은 동료에게는 ‘화풀이주’…… 이런 식이었다.
이렇게 여러 구실을 붙여 술을 얻어마시며 흥청망청 지내다 보니 나는 실수도 많은 편이었다.
특히 만취하여 ‘필름’이 끊긴 날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기도 했다.
내 옛날 직장은 강남 고속 버스 터미널에서 가까웠다.
터미널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5분 거리였다.
따라서 나는 날마다 출퇴근 시간에, 지방에 내려가기 위해 고속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아, 나는 언제 시골에 내려가 보나…….
고향이 서울이라서 내려갈 시골도 없지만…….’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나는 퇴근 후 회사 동료들과 어울려, 터미널 건너편 지하 상가에서 술을 마셨는데 그날도 만취했다.
완전히 필름이 끊겨 버린 것이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한참 뒤였다.
나는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워 부스스 눈을 떴는데, 뜻밖에도 고속 버스 운전 기사였다.
그는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빨리 내리라는 것이었다.
“여, 여기가 어디죠?”
“어디긴…… 포항이지.”
“예? 포항이오?”
나는 깜짝 놀랐다.
서울에서 술을 마셨는데 엉뚱하게도 포항이라니……?
나는 운전 기사에게 떠밀려 내린 뒤 고속 버스를 쳐다보았다.
심야에 운행하는 우등 고속 버스였다.
아마도 나는 취중에 차표를 끊어 마침내 시골로 내려온 모양이었다.
‘왜 하필 포항에 왔지?’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낮에 사무실에서 친구와 통화한 일이 생각났다.
그 친구는 포항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내게 술 한 잔 살 테니 언제 한번 포항에 내려오라고 말했던 것이다.
아무리 취중이라도 술 한 잔 얻어먹겠다고 머나먼 포항 땅까지 내려오다니…….
나는 문득 ‘주당칠계(酒黨七戒)’가 떠올랐다.
그것은 술꾼의 일곱 가지 불문율인데,
그 첫째가 청탁불문(淸濁不問)이었다.
술 마시는데 청주, 탁주를 가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둘째는 주야불문(晝夜不問), 술 마시는데 밤낮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고,
셋째는 현외불문(現外不問), 술 마시는데 현금, 외상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또한 넷째는 생사불문(生死不問), 술 마시는데 삶과 죽음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고,
다섯째는 주석불문(酒席不問), 술 마시는데 술집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섯째는 남녀노소 불문(男女老少不問), 술 마시는데 상대를 가리지 말라는 것이고,
마지막 일곱째는 원근불문(遠近不問), 술 마시는데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결국 술꾼의 일곱 번째 불문율을 지킨 셈이었다.
술을 마시기 위해 포항까지 불원천리하고 달려갔으니 말이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술꾼에는 여러 유형이 있었다.
술만 마시면 나타나는 버릇에 따라 분류해 보면 술꾼도 가지가지였다.
먼저 ‘앵무새형’이 있었다.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져서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형이었다.
이런 형은 중언부언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피곤할 따름이었다.
그 다음은 ‘매미형’이 있었다.
이것은 술만 마시면 노래를 부르는 형인데, 대개 2차는 노래방으로 갔다.
또 ‘천하 장사형’이 있었다.
술만 마시면 천하 장사나 된 듯 큰 소리로 호령하며 아무에게나 싸움을 거는 형이었다.
이 밖에도 술만 마시면 큰 소리로 웃어제치는 ‘파안대소형’,
술만 마시면 춤을 추는 ‘빙글빙글형’,
술만 마시면 무조건 뛰는 ‘스프린터형’,
술만 마시면 우는‘으악새형’,
술만 마시면 도망치는 ‘뺑소니형’,
술만 마시면 옆사람의 허벅지를 꼬집는 ‘애교형’,
술만 마시면 자는 ‘취침형’이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취침형’이었다.
마흔을 넘기면서 나는 주량이 소주 한 병으로 줄어들었다.
한 병이 넘으면 인사불성의 만취 상태에 빠져드니, 겁이 나서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되었다.
기막힌 것은, 이제는 소주 반 병만 마셔도 잠이 쏟아진다는 사실이다.
마치 수면제를 복용한 것처럼 깊이 잠들어 버리는 것이다.
처음 그 증상이 나타난 것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이었다.
휴가를 다녀와서 회사 직원들과 술자리를 벌였는데, 이상하게도 술을 마실수록 계속 하품이 나왔다.
“부장님, 피곤하신가 봐요. 일찍 들어가시죠?”
부하 직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나는 하품을 손바닥으로 막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무슨 소리야? 끝까지 마셔야지. 나 언제 일찍 집에 들어가는 거 봤어?”
나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내 앞의 잔을 단숨에 비워 버렸다.
사실, 그날 그 부하 직원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그랬으면 그 뒤에 황당한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나는 직원들과 2차까지 하고 술집 앞에서 헤어졌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밤 12시였다.
나는 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선 국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택시를 잡으려면 국도까지 걸어나가야 한다.
그런데 나는 쏟아지는 졸음 때문에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다리가 풀리고 눈이 감겼다.
나는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타이탄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타이탄 짐칸에 올라가 큰 대자로 누워 버렸다.
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한참 뒤였다.
타이탄은 나를 태운 채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타이탄 운전 기사는 짐칸에 누운 나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안양까지 가서야 차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술은 나를 계속 잠들게 했고, 웃지 못할 해프닝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은 이른바 ‘전철 사건’이다.
내가 ‘전철 사건’이라고 명명한 것은 전철 안에서 벌어진 해프닝이기 때문이다.
고속 버스 터미널 근처에 있던 회사에서 서울 시내에 있는 회사로 옮긴 직후였다.
나는 직원들과 술 한 잔을 걸치고 시청역에서 2호선 전철에 몸을 실었다.
1차만 끝낸 뒤라서 겨우 8시밖에 되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라서 그런지 전철 안은 몹시 붐볐다.
나는 시청역에서부터 계속 서서 가다가 신촌역에 와서야 겨우 빈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다.
내가 내려야 할 곳은 구로공단역이었고, 2호선은 순환선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수마(睡魔)가 나를 덮쳤다. 나는 정신없이 잠 속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졸린 눈을 비비고 쳐다보니 전철 차장이었다.
“빨리 내리세요. 전동차 차고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전철 안을 둘러보았다. 모두 내리고 나만 혼자 남아 있었다.
나는 허둥지둥 전동차에서 내리며 시계를 보았다. 12시 30분이었다.
나는 기절할 듯이 놀랐다. 순환선 전철을 타고 무려 4시간 30분 동안 곯아떨어져 있었다니!
전철역 구내 스피커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오늘 전철 운행이 모두 끝났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철 사건’ 이후 나는 2호선을 기피하게 되었다.
끔찍한 경험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대신 나는 1호선 전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시흥역에서 내려 15분쯤 걸으면 집이기 때문에 수원행 전철을 타면 된다.
그 동안 걷는 것이 귀찮아, 2호선 구로공단역에서 내려 집 앞까지 가는 버스를 탔던 것이다.
1호선으로 퇴근하기 시작한 지 일 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그
날 나는 직원들과 회식을 마치고 밤 9시 30분쯤 시청역에서 수원행 전철을 탔다.
마침 빈자리가 있어 앉았는데, 앉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잠들지 않으려고 허벅지를 꼬집었지만 소용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전동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다음 역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다음 역은 종각! 종각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나는 까무러칠 듯이 놀랐다.
분명히 시청역에서 수원행을 탔는데 다음이 종각역이라니! 그러나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전동차가 수원까지 갔다가 청량리로 되돌아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도 모르고 또 전철 안에서 잠에 취해 있었다니…….
나는 다음 역에서 내릴 생각도 잊은 채, 자동으로 열리는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요즘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글만 쓰는 프리랜서가 되어 너무너무 편하다.
생각해 보라. 퇴근 시간에 1호선 전철을 탔다가 한번 잠들면 이제는 천안까지 갈 것이 아닌가?
상상만 해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첫댓글 반가워서 "하늘이여"님께 이 글을 올리지마는.어찌 그리 술에대해 통탈을 하셨든가요? 그분같지 않으시길 빌며.정모날에 대화도 못해보고 헤여진 아쉬움이 큽니다. 요즘에 봄 날씨치고는 예측불허 이라서 정신없네요.요즘 아우님에 모습을 볼수가없어서 ? 아무튼 늘 멋찐 니날되시길...파이팅
동감합니다. 부산지하철도 같은 상황이 여러번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