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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김민석
창조과학에서 말하는 얘기들은 대체 언제부터 나온 거야?
20세기 초에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라는 사람이 ‘홍수지질학’이란 걸 들고 나오면서부터일 거야.
그 사람 책에 나오는 내용이 지금의 창조과학, 그러니까 젊은지구론의 기반이 됐거든.
근데 문제는 이 사람이 제7일 안식일교회의 열성적인 신자였단 점.
일단, 이분의 이론이 그 안식일교회의 성경 해석을 베이스로 깔고 있다고 하더라고.
...
문자 그대로의 6일 창조, 그리고 노아 홍수로 화석이 모두 생겼다는 홍수지질학.
이 두 가지가 안식일교회에서 중요하게 믿어지던 거였다.
‘맥크리디 프라이스’는 안식일교회 교리를 수호하려고 사명감으로 책들을 써나간 사람이다.
안식일교회의 창세기 해석은 엘렌 화이트라는 사람이 환상으로 받은 메시지대로 정해진 것이고,
그 배경이라 할 만한 것은 ‘어셔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의 제임스 어셔라는 주교가 천지창조부터 그리스도의 탄생까지 연대를 정리해
기원전 4004년을 천지창조로 계산한 것이다.
이 사람 시대엔 과학자들도 이런 젊은지구 연대를 믿었고, 지질학도 딱 홍수지질학 정도였다.
그런데 18세기가 되며 유럽에 광산 회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지층 연구가 엄청나게 이뤄지면서, 지질학적 지식이 쏟아졌다.
결국 19세기 와서 지질학자들은 지구가 최소 수백만 년 이상 됐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안식일교회는 ‘문자 그대로’의 성경 해석을 사수하는 대표적인 곳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성경 해석 방식이 젊은지구론자들에게 거의 그대로 이식된 것이다.
하지, 워필드, 바빙크 같은 개혁주의 신학을 정립해온 대가들은 창조의 6일을 문자적으로 보지 않았고...
과학 발전 이전 사람인 아우구스티누스도 6일을 24시간으로 안 봤고...
6일 창조를 믿은 칼뱅도 성경을 과학책으로 보는 태도엔 반대하고, 당대 천문학을 존중했다.
성경의 문자적 의미에 최대한 가까워지려면
당시 고대 근동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과 본문의 문법 구조를 파악하고 읽어야 한다.
그러나 ‘문자 겉보기 해석’은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주장하게 된다.
그리고 세대주의는 성경 예언에 나오는 숫자나 문자들을 보이는 그대로 해석하며,
극단적인 사람들은 그런 성경 예언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이나 시기를 도출하기도 한다.
과학 지식이나 미래의 타임라인을 알려주는 게 성경의 본 목적이 아니다.
...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믿은 게 모리스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윈 시대 직후 과학자나 성직자 중에 젊은지구론 주장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던 시기에
엘라자 로드, 데이비드 로드라는 형제가 거의 유일하게 홍수지질학과 지구 나이 6천년을 주장하는 책을 썼는데,
이 사람들부터 이미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믿는 이들이었다.
또 데이비드 로드가 쓴 책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대표적인 대학, 배틀크릭 대학에서 지질학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그 배틀크릭 대학을 나온 안식일교회의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가 홍수지질학을 제대로 정리한 사람이고,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 책인 ‘새로운 지질학’을 읽고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고 한 사람이 바로 헨리 모리스다.
당시 미국의 모리스와 같은 홍수지질학자들 대부분이 임박한 종말을 기대한 전천년설자들이었다.
종말론은 세대주의식으로, 기계적 문자주의로 읽어내던 그 렌즈로 창세기를 보면, 창조과학식의 해석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현대 과학이니 진화론이니 하는 거 결국 신은 없단 얘기 아냐?
현대 과학이나 진화론은 신이 있냐 없냐를 판단할 수가 없음.
과학은 자연의 영역을 탐구하는 거지, 자연 너머의 존재를 탐구하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진화생물학자도, 과학으로는 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고 한 거야.
진화론은 무신론, 창조과학은 기독교. 이런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거 같은데,
과학 쪽에선, 전투적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이 대중적 영향력이 커서 그런 거 같고,
기독교 내에선 창조과학이 일반 성도들에게 대중강연을 공격적으로 펼쳐와서 그런 듯.
하지만 진화 이론이 신은 없다는 결론을 내려주지는 못함.
도킨스 같은 입장은 사실상 과학을 넘어선, 일종의 세계관이고 믿음임.
하나님은 완전하시지만,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때론 어설프고
때론 틀리기도 한다.
하지만 틀리더라도
수 없이 틀리고 또 틀리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찾아 나아가는 이들이 결국엔 더 온전한 걸 보게 되지 않을까?
창세기가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지,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창세기 저자가 무엇에 초점을 두고 기록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
고대 히브리인이었던 창세기 저자의 초점은 ‘창조의 목적’에 있었다.
즉 세부적인 창조 과정과 구조를 규명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창조를 행하신 목적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있었다는 말이지.
그래서 창조 기사를 보면, 먼저 하나님만이 ‘왕’이시란 사실을 드러내고 있어.
하나님께서 강력한 권세를 가진 왕처럼 명령하시고, 실행 보고와 평가 보고가 뒤따르는 패턴이 보이니?
갈등과 투쟁으로 이뤄지는 고대 근동의 다른 창조 신화들과는 달리, 여기엔 갈등도, 라이벌도 없어.
오직 말씀만으로 창조하는 왕이신 하나님의 독보적인 권세와 주권을 보여주고 있는 거야.
그리고 창조 사역의 마지막에 위치한 피조물을 통해, 그분의 목적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목적이 바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셔서 이 피조세계를 선하게 다스리시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소명을 의미해.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를 드러내는 대리 통치자.
하나님을 향한 온 만물의 찬양을 비추는 제사장.
즉, 왕과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소명이 여기 담겨 있는 거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은 창조가 144시간 걸렸고, 우주는 6천 년 되었고, 뭐 그런 걸 설명하려 쓰인 게 아니라...
이 세상을 오직 말씀으로만 창조하신 주권자가 누구신지,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우리가 누구인지, 바로 거기에 초점을 두고 쓰인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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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입장에 대한 분류 방식
6가지 분류
(1) 자연주의적 진화(naturalistic evolution): 철학적 자연주의/무신론
(2) 무목적적 진화(nonteleological evolution): 이신론
(3) 계획적 진화(planned evolution): 급진적 유신 진화론
(4) 통제적 진화(directed evolution): 온건한 유신 진화론
(5) 오랜 지구 창조론(old-earth creationism): 창조론적 입장
(6) 젊은 지구 창조론(young-earth creationism): 창조 과학적 입장
5가지 분류
(1) 자연주의적 진화론(naturalistic evolution): 과학적 무신론
(2) 즉성적 창조론(giat creationism): 창조 과학적 입장
(3) 이신론적 진화론(deistic evolution): 이신론적 입장
(4) 유신론적 진화론(theitic evolution): 복음주의적 입장, 과정신학적 입장, 자유주의적 입장
(5)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 복음주의적 입장
- 하등 생물, 생명, 지구 및 우주의 출현을 포괄하지 못하는 분류.
3가지 분류
(1) 즉각적 창조론, 즉성적 창조론, 젊은 지구론
- 창세기 1장의 ‘욤’은 문자적 24시간이다.
- 노아의 홍수는 전 지구적이다.
- 우주, 지구, 인류, 생물, 기타 피조물의 연대는 6,000~10,000년 사이이다.
- 인간(아담)은 신체와 영혼이 모두 하나님의 특별 창조에 의해 산출되었다.
(2) 점진적 창조론, 오랜 지구론
- 창세기 1장의 욤은 긴 시대를 나타낸다.
- 노아의 홍수는 역사적 사건이고 큰 범위의 격변이었지만, 지구 전체를 덮는 것은 아니었다.
- 우주의 연대는 138억년 가량인데, 그 형성은 big bang 이론에 의해 이해할 수 있다.
- 지구의 연대는 46억년 가량이다.
- 생물학적 진화론은 과학적으로나 신학적(성경적)으로 맞지 않는다.
- 인간의 출현은 최소 30,000년이지만 하나님의 특별 창조에 의해 이루어졌다.
(3) 진화적 창조론, 유신 진화론
- 창세기 1장의 욤 및 관련 내용은 과학적 진술이 아니다
- 노아의 홍수는 역사적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국지적이다.
- 우주의 연대는 138억년 정도로서, 그 형성은 big bang이론을 따른다.
- 지구의 연대는 46억년 가량이다.
- 생물학적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있다.
- 인간의 출현은 인류학의 증거에 따라 창세기의 교훈을 다소 조정해야 한다.
창세기 1, 2장의 장르
신화인가?
창세기 1, 2장이 신화냐 묻는다면 답변은 예와 아니오가 동시에 된다. 만일 신화를 근거 없이 꾸민 이야기나 동화로 정의한다면 창조 기사는 신화가 아니다. 그러나 만일 우주와 신/신들에 관한 초경험적 현상을 묘사하는 범주의 글로 이해한다면 일리가 있다.
역사인가?
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하나님께서 우주와 생명체를 창조하시고 그 이후의 발전에 관해 묘사한다는 점에서 “역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현대적 개념에서의 역사, 즉 일어난 일을 사건의 전후 관계에 따라 정확히 묘사한다는 의미에서의 역사는 아니다. (구조상으로 여러 문학적인 장치가 나타난다. 창조 기사에는 상징적이고 비유적 표현이 많다.)
신학인가?
창조 기사가 신적 사안을 다루고 하나님에 대한 진리 및 피조계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신학적”이다. 그러나 창세기 기사는 하나님에 대한 체계적 진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 창조 기사는 어떤 하나의 장르에만 속한다고 판정을 내릴 수 없다. 창세기 1, 2장은 여러 장르의 집합으로 간주할 수 있다. 창세기 1, 2장은 역사적 기술이되 문학적 수단을 동원하여 신학적 설명을 시도한 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과 과학 사이의 몇 가지 유형론
Hugh Ross의 견해
① 분리 모델: 과학과 성경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 불가지론자인 Stephen Jay Gould 및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입장
② 갈등 모델: 과학과 성경은 직접적으로 충돌된다
-> 무신론자인 Richard Dawkins의 입장
③ 상보 모델: 과학과 성경은 상호 간 보완이 된다
-> 과학자 편에서는 ASA 회원들, 신학자 편에서는 John H Walton, Peter Enns 등
④ 통합 모델: 과학과 성경은 건설적으로 통합이 될 수 있다
-> 16세기 개신교도들의 입장; 종교개혁자들의 입장; Hugh Ross의 입장
Richard T Wright의 견해
① 조화주의: 성경은 자연계에 대한 필수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이 두 가지 정보 출처는 적절히 이해될 때 상호 조화될 것이라는 신념
② 대체주의: 성경이 과학적 진리를 포함하며, 성경이 무오하고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 과학은 전통적 과학 보다 더욱 믿을만하다는 견해.
③ 구획주의: 과학과 종교는 완전히 다른 영역을 다룬다는 신념에 기초하여 성경은 과학의 안내서가 아니므로 성경과 과학이 만날 수 있는 공통의 장소는 없다고 주장함
④ 보완주의: 성경과 과학은 서로 다른 질문, 설명, 방법, 목적에 관계하기 때문에 기원 및 자연계에 대하 포괄적 지식을 위해서는 성경적 진리와 과학적 지식이 모두 필요하다는 입장
Del Ratzdch의 견해
① 무관론: 성경은 과학에 대해 내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a. 성경에는 과학적으로 적실한 자료가 없다
b. 성경에 과학적으로 적실한 자료가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과학에 끌어들이는 것은 부당하다
② 연관론: 성경은 우리가 추출해 낼 수 있는 바 과학적으로 적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a. 첫째 부류의 그리스도인들
성경을 될 수 있는 대로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
b. 둘째 부류의 그리스도인들
성경은 문자적이되 비특정적인 형태의 과학적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
c. 셋째 부류의 그리스도인들
성경은 과학적으로 적절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지만
이 정보는 간접적/은유적이기만 하다고 주장하는 이들
특별 계시인 성경만이 진리를 담고 있는가?
① 그렇지 않다.
- 물론 성경은 여러 가지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
- 그러나 성경 이외의 자료[자연]에서도 얼마든지 진리를 찾을 수 있다
-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가 특별 계시의 영역 [성경]과 일반 계시의 영역 [과학] 모두에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준다
② 진리는 그 주장 내용에 따라 두 종류를 대별할 수 있다
- 영적 / 신앙적 진리
- 일반적 / 학문적 진리
③ 영적 신앙적 진리의 예: 성경 곧 특별 계시에 포함됨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보유하고 있다
-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다
- 부부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반영한다
④ 일반적 학문적 진리: 자연과 역사 곧 일반 계시를 통해 드러남
-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 이다.
- 금은 왕수에 녹는다
- 줄리어스 시이저는 주전 49년에 루비콘 강을 건넜다
⑤ 진리의 종류와 출처
- 영적 신앙적 진리는 주로 성경 [특별 계시]에서 발견된다
- 일반적 학문적 진리는 주로 성경 이외의 각종 자료 [일반 계시]에서 발견된다
성경과 과학 사이에 충돌이나 모순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사실과 해석 사이를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 성경의 사실과 과학의 사실 사이에는 모순이나 충돌이 있을 수 없다.
- 성경의 사실과 과학의 해석 사이, 성경의 해석과 과학의 사실 사이
그리고 성경의 해석과 과학의 해석 사이에는 모순이나 충돌이 나타날 수 있다.
- 그러므로 모순이 발견될 때 우리는 우리의 성경 해석이 정확한가?
또 우리의 과학적 해석이 타당한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창세기의 기록 목적과 과학적 진술의 가능성
① 창조 기사에서 과학적 진술 – 과학적 묘사나 과학적 주장 – 의 가능성을 용인하는 정도는 창세기의 기록 목적이 무엇인지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
a. 만일 창세기의 기록 목적이 철두철미하게 ‘비 과학적’인 것이라면, 창조 기사에서는 결코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표현이나 묘사를 찾고자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b. 반대로 창세기의 기록 목적이 비록 부차적으로나마 오늘날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과학적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이라면, 창조 기사에서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표현이나 묘사를 찾는 일은 참으로 합당한 노력이 될 것이다.
첫 번째 입장: 전적으로 비과학적인 목적의 천명
① 설명
창세기가 기록된 목적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과학적 탐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모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② 주창 내용
a. 첫째 유형: 창조 기사는 이방 세계의 그릇된 신학을 반박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그는 그 영적 싸움을 더 조장하여 그때껏 많은 이들을 사로잡고 있던 예로부터의 종교적 관념의 세력을 타파하고자 자신의 펜을 잡은 것이다. 그는 물리적 우주의 구조, 세력, 과정 및 시간적, 공간적 차원들을 이해하기 위한 현대 과학적 시도로부터의 이슈들과 씨름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주적, 생물학적 진화 관련의 현대적 토론이 연루된 이슈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종교적인 데 있었다.” - John H. Stek
b. 둘째 유형: 창조 기사는 우주를 성전으로 보는 기능적 관점에서 기록되었다
“창세기 1장은 성전으로서의 우주에 초점을 맞춘 창조 기사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모든 기능이 갖춰지고 하나님이 그 가운데 거하시는 우주 성전의 창조에 대한 묘사이다. 그 대신 이 책에서는 창세기 1장이 결코 물질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려고 의도하지 않으며, 원 저자와 청중도 텍스트를 그런 식으로 보지 않았다고 제안해 왔다.” - 존 H 왈튼
c. 셋째 유형: 창조 기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히브리 세계관을 가르치기 위해 쓰였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함께 고대 히브리 민족의 세계관적 진술을 구성한다고 제안할 계제에 일렀다. 이러한 세계관적 이해는 창조-진화에 관한 갈등을 끝내 주는데, 왜냐하면 이제 창세기 1장은 현행 과학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세기 1장과 현행의 과학적 사고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이 없다.” - Richard F Carlson and Tremper Longman Ⅲ
두 번째 입장: 비과학적 목적의 주도성 및 과학적 목적의 부차성
① 설명
창세기가 기록된 주된 목적은 신학적인 것이지만,
부차적으로 과학적 목적 또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창세기와 과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창세기 1-11장은 세계관 이야기에 있어서 반대편으로부터의 대안을 제시한다.” - C John Collins
셋째 입장: 비과학적 목적 및 과학적 목적의 동시적 강조
① 설명
창세기가 기록된 목적이 비과학적이라는 것 [이방 세계의 그릇된 신학 반박; 우주를 성전으로 보는 기능적 관점의 제공; 히브리 세계관의 제시]을 인정하지만 이와 동시에 과학적 목적 또한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성경 독자들은 창세기가 참으로 그러한 메시지 [이방 신들에 대한 비판]을 전달한다는 것에 동의하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만이 창세기의 전부라고 말하는 것은 지지하기 힘들다 창세기에 있는 창조 기사의 목적이 본질적으로 근동 지방의 창조 신화에 대한 논박에만 국한된다고 말하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그들 주위의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이 세계와 그들 자신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전혀 (혹은 거의) 관심이 없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성경은 그것이 기록된 당시 살아 있던 세대에 대해서 뿐만 아니고 모든 세대에 대해서 계시가 된다고 공언한다.”
“우리는 성경의 창조 텍스트 – 창세기와 기타 본문 – 가 자연의 책에 대한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이후의 세대에 점진적으로 명료해지게 될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리라 예기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창조 텍스트]은 모세 세대의 이방 창조 신화에 대해서뿐만이 아니고 모든 세대를 통틀어 비신자들에 의해 전파될 왜곡된 자연사적 설명에 대해서도 논박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 Hugh Ross
넷째 입장: 창조 과학적 목적의 부각
① 설명: 비록 창세기가 기록된 것이 비과학적 목적과 연관된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주된 목적을 창조 과학의 구성을 위한 자료 제공에서 찾는다.
”이 책은... 창조의 개념이 지속되는 자연주의적 진화 과정의 개념과 모든 면에서 똑같이 과학적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쓰였다... 그러므로 창조 과학은 절대로 타당한 과학적 연구의 영역이다. 창조 과학은 진화 모델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과학적 모델이다. 실상 우리는 창조 모델이 더 나은 과학적 모델임을 보일 수 있다고 믿는 바이다...“
- Henry M Mo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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