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군 수뇌부 인사 때 일이다.
군 최고위직 유력 후보였던 육군 대장이 2002년 대선 때 특정 정당과 가까웠다는 첩보가 청와대에 입수됐다.
청와대가 이 장성 발탁을 없던 일로 하기 직전 기무사령부가 동향 정보를 보고했다.
평일은 물론 주말,휴가 때 그의 개인 약속과 골프까지 행적이 소상히 담긴 몇십 쪽 보고서였다.
거기엔 문제 된 정당과 접촉한 낌새가 없었다.
그는 평소 껄끄러워했던 기무사 동향 보고 덕에 군 최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다.
2013년 정기인사에선 장경욱 기무사령관이 1년 만에 교체됐다.
그는 직속상관이었던 김관진 국방장관이 "자기 사람만 챙기는 편중 인사를 했다"고 비판했다.
그의 후임엔 박근혜 대통령 동생 지민씨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이재수 장군이 임명됐다.
그도 1년 만에 물러나면서 기무사령관은 헌 정부 들어 수난의 자리, 바람을 타는 자리가 됐다.
기무사는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조선경비대 정보처에 만든 특별조사과에서 출발했다.
특별조사대, 육군본부 특무대로 개편됐고 6.25를 계기로 조직이 커졌다.
1977년 출범한 보안사는 12.12대 신군부 권력 장악에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무소불위 권력기고나이 됐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불법 사찰 폭로로 큰 파문이 일면서 이름이 국군기무사령부로 바뀌었다.
'機務'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비밀을 지켜야 할 중요한 일'이라는 뜻이다.
구한말 '통리기무아문'과 갑오개혁 때 정치, 군사 사무를 관장한 '국군기무처'에서 따왔다.
1993년 김영삼 정부 들어 기무사는 사조직 출신 사령관이 교체되고 장성, 요원 규모가 크게 줄어드는 태풍을 맞았다.
하지만 1년여 지나 기무사 장성 숫자는 사실상 원위치됐다.
그 뒤로도 역대 정권이 기무사 개혁'을 입버릇처럼 내세웠지만 비리와 잡음은 그치지 않았다.
방위사업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정부 합동 수사단이 무기 중계상에게 군사 기밀을 빼내 건넨
기무사 군무원들을 잇달아 구속했다.
군으로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다.
기무사는 군의 눈과 귀다.
기밀 유출 방지와 방첩, 테러 정보 수집, 매부 동향 파악이 주임무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이버 보안도 둥요한 임무로 떠올랐다.
사령관이 새로 부임할 때마다 개혁을 강조하지만 4000명 넘는 규모는 달라진 게 없다.
신성한 '기무'가 뇌물 수금 수단이 되고 있다.
기무사가 밑바닥부터 변하지 않으면 '국군비리사령부'가 되고 말 것이다. 유용원 논설위원.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