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소개할게요
“내 친구는 병원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그림자예요. 이 병실, 저 병실을 소리 없이 돌아다니고, 이따금 어린아이를 안고 멀리 떠나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꿈의 나라로 데려가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내 친구를 싫어하고, 무서워하고, 칭찬 한 번 해 주지 않아요. 나만 빼고요. 오직 나만 내 친구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내 친구가 누구냐고요?”
삶과 죽음, 그 경계에 서 있는 소년이 있습니다. 소년은 벌써 이 년째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병원을 집처럼 여기며 생활합니다. 소년을 옭아매는 병마는 시간이 지나도 떠날 줄을 모릅니다. 이런 소년의 병실을 매일 밤 찾아오는 건 바로, 모두가 무서워하는 죽음입니다. 처음에는 소년도 조금 무서웠지만, 이제는 죽음이 무섭지 않습니다. 죽음은 생각만큼 못되고 무섭게 생기지 않았거든요. 죽음과 마주한 소년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반겨 주지 않는 죽음, 아무도 친구가 되어 주지 않는 죽음에 대해 말이지요.
고마워, 네가 있어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해
2008년 캐나다 총독상 아동문학 삽화 부문 수상작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끔찍하고, 무섭고, 슬픈 것으로 여겨지는 죽음. 그래서 죽음은 어린이 문학에서는 흔히 다루지 않는 어려운 주제입니다. 하지만 죽음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반드시 겪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게다가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인터넷과 뉴스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자살, 살인과 같은 이름으로 죽음을 무분별하게 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요?
『마주 보면 무섭지 않아』는 장애, 사고, 부모님의 이혼, 유괴 등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어린이의 이야기를, 어린이의 시선에서 섬세하고 감동적으로 그려 내는 작가 질 티보의 작품입니다. 난치병으로 병원에서 지내는 소년의 순수한 눈에 비친 죽음은 낯설고 무섭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일상의 가장 가까운 데 있다고 느끼며, 그 만남에 대해 시적이면서도 섬세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선과 색에 대한 깊고 세심한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재해석한 그림 작가 자니스 나도는 작품에 포근한 느낌을 더하였습니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08년 캐나다 총독상을 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작품에 주로 쓰인 어두운색은 죽음을 나타내지만, 그 모습만큼은 따스하고 포근한 엄마처럼 보입니다. 곧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는 소년은 생명의 온기를 지닌 듯한 붉은색으로 표현되어, 소년이 품은 삶에 대한 확신을 보여 줍니다. 또한 생기와 우정, 희망이 담긴 밝은색이 작품 전체를 감싸 주어 평온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단 한 번도 칭찬받아 본 적이 없는 죽음, 꿈의 나라로 사람들을 데려다 준 뒤 슬퍼하는 죽음, 해님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죽음……. 소년은 밤마다 찾아오는 죽음의 모습을 바라보며 점차 생명과 죽음, 다시 말해 자연의 순환이라는 큰 수레바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닫게 됩니다.
죽음은 끝이자, 새로운 시작입니다. 죽음이 있어 새 생명이 탄생하고, 새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위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소년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오롯이 이해하게 되자, 소년은 자신이 살아 있는 순간순간이 모두 고맙고 기쁩니다. 이로써 소년은 모두가 무서워하는 죽음에 새로운 빛을 비추어 준 것입니다. 죽음 또한 소년에게 마음을 담은 선물을 건넵니다. 그건 다름 아닌, 해가 떠오르는 내일을 맞이해 뛰놀 수 있는 생명입니다.
죽음을 통해 생명과 삶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죽음을 바라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또한 생명의 소중함과 살아 숨 쉬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도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