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훈(42)이란 이름을 떠올릴 때, ‘어루만지다’란 우리말이 슬그머니 포개진다. 그는 지난 세기의 마지막 10년과 새천년의 처음 10년을 사랑의 노래로 물들인 뮤지션이다. ‘미소 속에 비친 그대(1990)’의 애끓는 사랑으로 출발해 ‘보이지 않는 사랑(1991)’의 숨막히는 그리움을 지나 ‘아이 빌리브(I Believe·2001)’의 따스한 배려에 이르기까지. 그는 사랑이 건넬 수 있는 온갖 꼴의 어루만짐을 노래해왔다.
그렇게 올해로 꼬박 스무 해가 쌓였다.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그가 다시 한번 사랑의 멜로디를 묶었다. 그의 20주년 기념 앨범 ‘신승훈 베스트 콜렉션 앤 트리뷰트(Best Collection & Tribute)’가 1일 발매됐다. 이번 음반은 두 장의 CD로 구성됐다. 첫째 장은 신곡 ‘유 아 소 뷰티풀(You are so beautiful)’을 비롯해 ‘그 후로 오랫동안’ ‘가을빛 추억’등 히트곡 12곡이 담겼고, 둘째 장은 2AM(‘널 위한 이별)’·싸이(‘비상’)·클래지콰이(‘엄마야’) 등 후배 가수 7팀이 부른 헌정 앨범으로 꾸려졌다.
# 20주년, 음악적 마인드가 바뀌다
애당초 그는 데뷔 20주년을 떠들썩하게 기념할 필요는 없다는 쪽이었다. “어쩐지 뒷방에 물러앉는 느낌이 들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한번쯤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마음을 틀었단다. 특히 후배들이 자신의 노래를 새롭게 해석한 걸 듣고선 “음악적 태도를 바꾸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20년간 불렀던 노래를 다시 녹음하면서 잊고 있던 감성을 새롭게 발견했어요. 변화해왔던 제 음악 스타일을 되짚어 볼 수도 있었고요.”
자신의 곡을 대부분 직접 작사·작곡해온 그는 그간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건네는 데엔 인색했다. 하지만 이번 헌정 앨범에선 힙합 버전의 ‘로미오&줄리엣’, R&B 스타일의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등 기존 신승훈표 음악을 파격적으로 뒤집은 음악이 잔뜩 담겼다.
“후배들이 제 노래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해석한 걸 들으면서 정말 놀랐어요. 제 음악적 마인드가 바뀌었을 정도니까요. 이제는 후배들에게 좋은 곡들을 많이 건네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 신승훈 vs 신승훈
90년대를 사춘기로 살아온 이들은 안다. 신승훈표 발라드의 중독성을. 그 중독성이 얼마나 지독했던지 새천년에 들어와서도 좀체 씻기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대중들 사이에서 “신승훈 음악은 매번 발라드”란 푸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즈음 그가 꺼내든 카드는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2000)’이었다. 여섯 번 연속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던 기존 발라드의 틀을 깨고 파격적인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인 것이다.
“저는 곡을 직접 쓰는 싱어 송 라이터잖아요. 가수 신승훈만 기억하는데 작곡가 신승훈에 대한 관심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실제로 20년간 발라드뿐 아니라 여러 장르의 음악을 선보여 왔거든요.”
맨 처음 가수가 됐을 때 그의 목표는 ‘1등 하자. 1억 벌자’였다. 그 목표를 몇 십 곱절이나 이루고 나자 슬슬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택한 게 일본 진출이다. 2004년 무작정 일본 시장에 뛰어든 그는 6년 새 ‘아티스트 한류’란 말로 대표되는 뮤지션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는 “일본 활동을 통해 신인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 또 다른 신승훈의 1집 앨범
그는 현재까지 모두 10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누적 앨범 판매량 1700만장, 수상경력 700여회. 그의 말마따나 “한국에서 가수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셈이다. 그러나 데뷔 20주년은 그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 그는 “음악시장이 아무리 열악해도 열심히 앨범 내면서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겠다. 그게 20년차 선배 가수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10집을 발표했으니 11집부터는 또 다른 신승훈의 1집이 될 거에요. 음악적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죠.”
20주년의 문턱에서 새로운 1집을 꿈꾸는 그, 우리 대중음악사에 ‘전설 속의 누군가’로 남을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