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차 순례
칠월 첫날은 정기고사 마지막 날이었다. 학생들은 나흘간 시험을 치르느라 지쳤을 테다. 모두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밀린 잠을 푹 자고 싶을 것이다. 교사들은 서술형 문항 채점을 비롯해 평가 마무리 업무가 남아 있다. 그렇다고 그 일을 오후에 학교 남아 처리할 동료는 없을 테다. 주말을 보내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면 정한 평가 일정에 따라 차질 없이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주간 계획엔 금요일 오후에 비가 오지 않으면 대암산이나 용제봉을 오르고 싶었는데 장맛비가 내려 마음을 돌렸다. 비가 와 어디 길을 나설 형편이 못 되면 시립도서관에 들림이 관행이었다. 낮에까지 도서관에 박혀 서책과 씨름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렇다고 딱히 들릴 데 없어 반송시장으로 향하고 싶었다. 시장 골목 안쪽 허름한 칼국수집이 몇 군데 있지만 들리지 않았다.
칼국수로 점심을 들고 싶었지만 그럴 사정 아니었다. 목로주점처럼 길쭉한 나무의자가 놓인 칼국수집은 소탈하고 서민적이라 내가 들리기 알맞은 데다. 그런데 그런 칼국수집을 찾아가지 않음은 반주를 팔지 않아서다. 나는 막걸리를 곁들여 판다면 몇 차례 들렸을 텐데 아직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주말이나 저녁시간 친구와 소주를 한 잔 나눌 때면 족발집이나 횟집은 가끔 들리기는 했다.
낮 시간대는 반송시장에서 곡차를 들 만한 곳은 딱 한 군데다. 소박한 상차림이 나오는 밥집이다.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주인아주머니의 손맛이 괜찮은지 손님들이 꾸준히 찾는다. 좁은 실내 탁자라곤 고작 네 개다. 손님들이 식당으로 찾아와 밥을 먹고 가기도 하고 바깥으로 배달 나가는 데도 더러 있었다. 노점에서 과일이나 생선을 파는 상인들이 단골로 밥을 시켜 먹는 듯하였다.
내가 그 식당을 개척함은 밥을 먹기 위함이 아니었다. 밥이야 집에서 해결함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바깥에서 식당을 배회해야 함은 곡차를 한 잔 들고 싶을 때다. 동네 슈퍼에서 곡차를 사서 집으로 가져가 들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럴 형편이 못 된다. 집사람은 내가 식탁에서 잔을 비우는 것을 눈치 주어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바깥 식당을 전전하며 곡차를 들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남들이 커피나 녹차를 듦이 생활화 되다시피 나는 여건만 되면 곡차를 즐겨 든다. 커피나 녹차는 내가 한 달 가도 한두 잔 들까 말까다. 곡차는 근무 중에는 생각이 없고 퇴근 후나 주말이면 들더라도 넘치게는 들지 않는다. 대작이 마주 앉은 경우가 없지는 않으나 혼자서도 즐겨 드는 편이다. 곡차를 들 때면 기름진 안주가 필요 없고 적정 양을 비우면 배가 불러서도 더 마실 수가 없다.
오전에 시험이 끝나자 학생들은 썰물처럼 교정을 빠져나갔다.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속에 나는 학생들 뒤이어 교문을 나서 충혼탑 사거리에서 반송시장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반송시장은 내가 사는 아파트와 그리 멀지 않은 데다. 가는 도중 비가 후줄근히 쏟아져 어깨와 바짓단이 좀 젖었다. 시장 골목 그 식당으로 들었더니 점심시간이 지나선지 테이블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종전에도 몇 차례 들린 밥집으로 계란말이나 부추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한두 병은 들었다. 점심때가 지나서인지 주인 아낙(할머니?)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한테는 집으로 가는 길에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피할 수 있는 고마운 공간이었다. 주인장은 금방 끓인 장어국이 있다면서 한 대접 차릴 낌새였다. 나는 장어국밥도 좋다만 곡차부터 먼저 차려 내십사고 수정 제안을 했다.
식당으로 들 때 세차던 빗소리는 끊어졌다 이어지길 거듭했다. 주인이 밑반찬과 함께 차려낸 특미 장어국 상차림에서 밥공기는 그대로 남겼다. 곡차만 한 병 비우고 두 병째였을 때 몇몇 지기에게 안부 문자를 넣었더니 인근지역 초등학교 교장으로 나간 친구가 가장 먼저 회신을 보내왔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다 곡차를 한 병 더 시켜 잔을 채우고 비우다 일어서도 장맛비는 계속 내렸다. 16.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