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은 "도저희 무서워서 못살아요. 정이 떨어져서 못살아요."하더니 막상 "정이 떨어지고 무서워서 못산다는데 저가 어찌합니까?"라며 화끈하게 협의 이혼을 해주고 자기 아버지와 함께 책보따리만을 들고 집을 나서는 남편이였던 미남 전도사를 보며 자기 엄마처럼 함께 울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은 그것이 아니였을까?
전도사는 망덕을 향하여 장재리 들판길을 가면서 속으로 결심했다.
"하나님은 없다. 만일 하나님이 진짜로 계신다면 나를 이토록 비참하게 망하게 할 수가 있나? 나는 이제는 절대로 전도사는 하지 않을것이다."
"내가 망덕이라는 곳에서 망해가지고 가는구나"
27세의 젊은 전도사
귀공자로 자란 그는 연약한 온실의 회초와 같았다.
망덕에 개척하는 교회를 지으라고 위에서 연일 재촉해도 못이 한개에 얼마인지 세멘트가 한 포대에 얼마인지도 모른다.
"돈은 걱정말고 교회를 지으시요."라고 건자재와 목재 공장을 하는 장로님이 말해도 건축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이런 사건이 발생 한 것이다.
교인들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전도사는 아버지와 떠나온다.
떠나오는 길에 망덕에서 미용실을 경영하는 아내를 두고 있는 성결신학교 4학년으로 다니는 30세의 전도사님을 방문하였다.
그는 이미 능력을 받고 부흥사로 활동하는 전도사님이다.
목회는 하지않으나 부흥사로 방학때 중심으로 전국을 다닌다.
전도사는 그 부흥사에게 "나는 이제 전도사는 안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저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 수가 있습니까?"
부흥사는 "아닙니다. 전도사님을 연단시켜서 더 귀하게 쓰시려고 일어난 일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요."
라고 한다.
전도사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없습니다."
허망하였다.
전도사도 허망하였고, 전도사 아버지도 허망하였다.
전도사 아버지는 아들을 위로하려고 애를 쓰셨다.
진월면 망덕에서 버스를 타고 광양읍에 내렸다.
작은 수퍼에 들려 라면을 끌여달라고 해서 전도사는 아버지와 나누어 먹으면서 아버지가 " 보아라 이 작은 가게 주인 아주머니를 ,
이렇게 작은 가게를 하면서도 저토록 참하게 생기지 않았느냐? 너의 각시였던 희정이보다 몇배가 더 나아보이지 않으냐?
너도 저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신다.
구멍가게를 하는 그 아주머니는 늘신하고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전도사도 아버지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광양읍교회 양승억 목사님 사택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말씀 드렸다.
물론 전도사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말씀을 드렸다.
양승억 목사님이 그를 그 교회로 파송해주신 분이다.
그 목사님은 " 공전도사님 6개월만 집에서 자숙하고 쉬십시요. 6개월후에 다시금 교회를 소개하여 드릴테니 그때부터 다시금 목회 하십시요."라고 하신다.
전도사는 "아닙니다. 저같은 죄인은 다시금 목회 안할 것입니다."
광양에서 기차를 타고 덕양 역전에서 내렸다.
캄캄한 밤이였다.
덕양 역전앞에서 고향 마을 아주머니가 주막집을 하고 있었다.
전도사 아버지는 목이 출출하여서 "아들아 우리 주막에 들어가서 나는 막걸리 한잔 하고 너는 밥을 좀 먹어라."
주막집 아주머니는 전도사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눈치를 채었는 것 같다.
얼마전 온 마을이 떠들썩하게 부자집 딸에게로 장가간다고 야단을 치더니,
두달도 안되어서 파혼이 되엇구나?
그렇게 여기면서도 노련한 장사꾼 다웁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전도사와 아버지는 걸어서 6키로의 길을 아들은 책보따리와 아버지는 술에 약간 취한채 챗동이를 메고서 터덜 터덜 고향으로 가고 있었다.
이때처럼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로 되어진적이 없을만큼 가까와졌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로하려고 온갖 마음을 다 쓰셨다.
"아들아 놀음했다고 쳐버려라." 결혼 비용이 약 100만원 들었다. (76년말이니, 지금은 5천만원쯤 가치나감)
"아들아 "
"예.아버지"
"아들아,"
"예, 아버지"
"나가 잘못이다. 니 신학대학교 돈 안들이고 보낼려고 한 것이 죄다."
"아들아 나가 다락논벰이라도 팔아서 너가 그토록 가고싶어하는 신학대학교 꼭 보래줄란다."
태산 공도식
첫댓글 잘보고가요
감사합니다 *^*
잘보고감니다\\\
감사드려요^*^
잘 읽고 감니다
고맙습니다 *^*